여행추억을 끄적이는 일은 너무나 행복하다.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만으로 글과 사진을 그려내는 이 순간이 요 근래 유일하게 잡생각과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쓰고 싶을 때마다 쓰려했던 게 이렇게 빨라질지는 몰랐다만..^^;;
현생은 한숨만 나오는 걸요..나 우니,,?
ep2.
평범함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낭만을 잃지 않길
[ep.1]에서 다뤘듯 눈물을 머금고 출발한 쿠바여행은 쿠바공항 밖을 나서기 전까지 정말 우당탕탕ㅇ-! 그 자체였다. 비행기 표 하나 잃은 것도 억울한데 여행을 떠나기 2주일 전, 갑작스레 바이러스 문제로 나라가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분위기를 더듬어 봤을 때 확진자는 아직 열댓 명에 지나치지 않았지만 메르스 때보다 훨씬 심각한 분위기였다.
나 여행 가도 되는거야..?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불안감이 한층 올라갔지만, 환불이 아~예 불가능한 비행기표였기에 어찌 됐든 간에 여행 일정을 진행해야 했었다. 더불어 여행 경비를 위해 단기 알바까지 추가로 더 하느냐 떠나는 직전까지 온전히 설렘을 즐길 새도 없었다. 그렇게 알바를 끝마치자마자 짐을 부랴부랴 싸고 다음 날 저녁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으로 무장을 한 채 정신없는 쿠바 여정이 시작되었다.
쿠바까지의 여정은 지금까지 나의 여행 중 가장 하늘에 오래 떠있었던 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동차, 비행기, 배 심지어 가끔은 기차까지 모든 것에 멀미가 가능한 위대한 저질 기관지를 가진 자였다.
합리적인 가격 + 미국 LA 1일의 레이오버가 가능한 비행기 경로로, 무려 장시간 경유를 2번이나 하는 개고생을 자처한 것이다. 비행기 이동만 2일이나 걸리는 엄청난 대장정이었기에 마지막 아바나로 오는 비행기에서 멀미가 제대로 시작됐고 빌빌 거리는 몸을 이끌고 겨우 아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 드디어 도착
숙소 가자마자 두 발 뻗고 잠이나 자자..
그리고 이제는 정말 즐길 일만 남았다!!!!!
비행기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딛자마자 이제 고생은 정말 끝인 줄만 알았는데 쿠바에 도착해서까지 예상치 못한 문제로 빌빌 거리는 나의 몸을 더 피곤하게 하였다.
이상하게 나와 동행인 엄마의 입국심사는 남들 10분이면 끝나는 것을 몇 배나 걸린 것이다. 후에 쿠바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의 얘기를 들어봐도 나 같은 케이스는 없었다.
대강 여행이 끝나고 나서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니, 원래 한국인들이 쿠바를 갈 때 가장 대중적인 경로가 멕시코 혹은 캐나다 경유가 가장 많다. 미국 경유 + 파나마 경유가 흔하지 않았기에 당시 비행기에 동양인은 나와 엄마 둘 뿐이었다. 더불어 당시 코로나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등 아시아 쪽만 전파됐을 시기였기에 확실치 않지만 우리를 약간 이상하게 본 것 같았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다리라. 일로 와라. 여권을 줘라. 그리고 여기서 또 기다려라. 이것만 30분이 넘도록 반복하였다.
우리가 탔던 비행기의 승객들은 이미 다 입국을 하고 우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심지어 새로 내린 승객들까지 입국심사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하염없이 입국심사대 앞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때까지는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하길래 '정말 쿠바는 나랑 연이 아닌가 보다.. 돌아가라면 진짜 한국 돌아가야겠다'라는 심정으로 무한 대기를 하였다. 그렇게 또 몇십 분을 흘려 보냈을 쯤 드디어 일로오라면서 새침한 표정과 함께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그렇게 힘겹게 아바나를 맞이하였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아바나에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지만 멀미 뒷폭풍으로 열손가락, 열발가락 다 따고 잠을 자느냐 첫날은 완전히 날려버렸다. 체끼와 멀미가 다 가시고 잠에서 드디어 깼을 때 방 안에는 재즈 소리로 가득 채워있었다. 침대 앞에 작은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온 얕은 불빛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 시작부터 맘에 든다.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운 새벽이겠지만 나는 고요함 속에 잔잔한 흥겨움이 느껴졌다. 아직 아바나의 첫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음에도 오로지 청각만으로 이들만의 밤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다. 머릿속에 그려진 그들이 모습이 꽤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흘러 나오는 음악들은 쿠바 색을 더 도드라지게 하였다. 청각으로 그려낸 첫인상은 이곳에 어렵사리 온 나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미소와 함께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다른 소리로 무언가가 나를 깨웠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재즈소리 대신 닭들이 번갈아가며 미친 듯이 우는 소리가 이 새벽을 채워주었다. 닭들이 박자에 맞춰 울길래 아침이 벌써 찾아온 건가? 정말 많이 잤구나.. 싶었는데 시간을 보니 꼴랑 2시간밖에 안 지나있다. 닭들이 새벽 3시에 목놓아 우는 건 또 처음이라 너무 웃겨 녹음까지 하며 생생한 현장을 담았었다. 쿠바의 닭들도 이 정도면 나랑 비행기 같이 타고 시차 바뀐 거 아니냐며..?
하여튼 개인의 취향으로 개성이 깃든 이곳의 첫인상은 아주 맘에 든다.
아바나의 말레꼰에서
14시간의 시차로 뒤바뀐 쿠바에서의 2일 차,
1일 차 때 비행기 멀미로 인해 날린 아바나의 낭만 맛집을 오늘은 꼭 보리라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쿠바 음식도 먹어보고 시장도 들리고 문명과도 드디어 만나보면서 아바나를 가볍게 돌아본 뒤 일찍이 숙소로 들어왔다.
좀만 자고 노을맛집 또 즐겨줘야지~
아바나하면 말레꼰 노을할 정도로 유명한 노을 맛집에서 어찌 노을을 안보고 하루를 끝낼 수는 없었다.
노을이 지는 타이밍에 알람을 맞춰두고 그렇게 깊은 단잠에 빠졌다.
진동과 시끄러운 알람음의 지저분한 섞임이 내 귀와 침대를 흔든다. 잠에 취했던 건지 알람 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인지 알림은 나를 깨우지 못하고 자기 할 일을 끝냈다.
그렇게 30분을 더 자고 너무나도 개운하게 일어났을 때 이미 창문 너머에는 어둠만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개운하게 깨면 뭔가 항상 예상했던 시간을 한참 지나있다. 예를 들면 늦잠이라던가.. 늦잠이라던가?
노을이 진짜 정말 져버렸나? 아니 내일 히론으로 넘어가는데 정말 노을도 못 보고 넘어간다고?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었지만 이미 해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물론 내일 당장 히론을 넘어가도 쿠바의 마지막 3일은 아바나 일정이라 노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그래도 고작 30분 때문에 노을을 놓쳤다니.. 허탈함에 공허한 하늘 아래 복잡한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을은 짧고 순간이구나. 그래서 특별한 것일까?
순간의 특별함을 놓쳐 벙찐 채 멍하니 바라 본 전경은 참으로 평범했다. 나의 숙소는 아바나의 전경이 나름대로 보이는 5층의 숙소였다.
저녁시간 대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 빨래를 걷는 사람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등 여행 전 우리의 모습이 물씬 기억나는 익숙한 평범함이었다. 그리고 그 익숙함 사이에서 말레꼰 앞을 지나다가다 가는 길을 멈춰세우고 돌계단 위에 걸터앉은 사람이 보였다.
쿠바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레꼰. 매일 보는 풍경일지라도 유난히 노을의 빛이 눈에 비치는 날일 때면 멈춰설 줄 아는 모습에 어쩌면 낭만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번 남모르게 스쳐지나갔고 있지 않았을까를 깨달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그냥 내가 그걸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닌 그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눈 앞은 이미 전보다 더욱 진해진 어둠이 펼쳤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을 바라본 나는 인생이 내 멋대로 안 돌아가도 스쳐가는 순간의 낭만만은 잃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 다짐은 나의 정신없는 삶에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꽤나 큰 역할을 해주었다.
epilogue.
글을 써내려다보니 문뜩 생각이 나 오랜만에 노인과 바다를 꺼내 들었다. 노인의 배고픔이 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 노인을 위해주는 소년을 보니 참 예쁘다. 너무나도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오간다. 소소함이 힐링이 되어준다.
이 책을 들고 떠난 쿠바가 생각이 난다.
쿠바의 노을이 생생하다.
쿠바의 노을을 보며 인생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었다
그냥 지금 바라보고 있는 노을처럼 잠깐 동안 가장 아름다운 색을 비추고 여운을 진하게 남기는 노을처럼 정말 인생 거지같아도 이 짧은 낭만만큼은 온전히 느끼면서 살자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지친 마음속 여운을 되새겼다.
히론에서의 아침
지금 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낭만이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 과거의 낭만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간 빛이 보이겠지.. 그간 버티다보면 빛이 정말 보였으니까
그 어두운 터널을 내 나름대로 내 템포대로 걷고 있는데
내 터널이 끝이 없는 터널이라 누군가 소리친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다른 터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내가 쿠바에서 노을을 보고 다짐했던 그 말을 새겨놓고 버텨왔지만 지금 이 어두운 터널에서만큼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안다. 이 터널이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거. 근데 지금은 그게 희망이 되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나는 이 터널을 지나는 가운데 내 스스로가 포기만 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자책하지만 않았으면 할 뿐이다.
짧은 터널을 걸어온 누군가 나의 긴 터널을 무시하고 속으로 비웃는 이를 보았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피드백이라 치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이도 보았다. 근데 스스로에게만큼은 질책보다 그 잘못된 터널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음에 수고 많았다고 위로를 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것이 많다.
나 혼자 백날 자존감을 올려봤자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지 않으면 그 마음이 애써 용쓰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근데 애써 용쓰는 것처럼 보여도 어련히 맘껏 판단해도 다 됐고 내 자신을 나만큼은 품어주련다. 나한테 만큼은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련다.
터널이 빨리 끝나던 안 끝나던 내 스스로 자책하지만 말자.
터널이 끝났을 때 그 낭만을 다시 즐길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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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매주 목요일마다
한 달에 1명의 여행자씩
짧고 간결하게
정보성이 아닌 '이야기'를 중점으로
여정의 길을 늘 갈망하는 이들에게 재미난 에피소드로, 일상의 지루한 틈을 타 짧은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모여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 주는 동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의 이야기들을 모아, 지금 바로 move or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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