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벌레 이야기가 주된 화이니 더러움에 주의해주세요.
ep7.
고생도 사서
3일 차가 되었다. 가이드 언니가 아침 6시부터 우리를 깨우고 아침밥을 먹였다. 그리고 모두 멍하니 밥을 먹으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오늘의 일정을 읊어주었다.
오늘은 점심 먹고 샤워실 들릴 예정이야. 그니까 다들 샤워용품 미리 빼놔~
그늘 하나 없이 따가운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에 우리 몸을 내맡겼던 2일 차. 우리는 꽤나 땀을 흘렸었다. 그러나 세면대와 샤워기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채 차에 실어온 생수로 세수와 이닦기를 해결하며 몽골의 여정을 적응해나갔다. 샤워는 물티슈로 대신했었다. 드릅지만 어쩔 수 없던 환경이었다.
2일 만에 샤워라니~호홓ㅎ
다들 땀과 모래 바람을 뒤집어쓴 몸을 씻을 생각에 상쾌한 기분으로 푸르공에 올라탔다. 오늘도 푸르공은 뻥 뚫린 오지를 힘차게 달리며 하루의 시작을 열어주었다.
몇 시간이 흐른 걸까?
아침 6시 기상은 너무 오랜만이라 앉자마자 쓰러지듯 자버렸다. 침을 한 바가지 흘린 걸 보아하니 꿀잠을 잔 것은 분명했다. 여긴 어딜까 벌써 도착한 것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둘러보니 그러한 것 같다. 이름 모를 동네 목욕탕 앞에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 반, 현지인들 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충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어련히 눈치챈 뒤 나는 급 분주해지기 시작하였다.
화장실 어딨어??
이상하게 자다 일어날 때면 화장실 가고 싶어 미친다. 매~우 급했던 나는 푸르공 문을 열자마자 발 빠르게 화장실을 갔다 온 두 친구를 황급히 붙잡았다. 손짓을 하며 저쪽 뒤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근데 질색팔색한 이 표정은 뭘까..? 왜왜 대체 뭔데
근데 OO아, 진짜 급해? 안 급하면 가지마..ㅠㅠ
엄.. 바지에 싸기엔 내 나이가..? 일단 작은 일이 너무 급했기에 후다닥 친구가 알려준 곳으로 달려갔다. 골목 안~쪽에 푸세식 화장실로 추측되는 오두막이 보였다. 조금 음산하다만 외간상은 큰 문제없는데? 안도와 함께 그 안을 들어갔다.
아니 이거 맞아?안에서 밖 풍경이 왜케 잘 보여?
끼익- 공포스러운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니 진짜가 펼쳐졌다. 오만 냄새가 나의 코를 찔러주며 환영해주었고, 눈앞에 놓인 나무 판 사이사이는 볼일 보며 자연을 감상하라는 듯 크게 벌어져있었다. 심심할 때의 무료함까지 신경 써주는 미친 섬세함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를 내주는 무심함까지. 완벽했다. 진짜 똥통으로 빠질까 봐 밖에 사람 있을까 봐 발끝 세운 미어캣으로 빙의해서 볼일을 해결했다.
핳.. 벌써 기 빨린다..^^
오금이 저리고 후각을 잃을 뻔한 화장실을 갔다 온 후 친구들과 그늘에서 깨끗한 공기로 코와 심신을 정화시키고 있을 때 우리 차례가 찾아왔다. 건조한 더위라 찝찝함은 덜 했지만 여름에 하루 동안 샤워를 2-3번 할 정도로 옷에 땀 차는 걸 싫어하기에 유독 더 이 자리가 반가웠다. 흠 얼마나 상쾌할까~
이곳에서의 목욕탕은 공간이 분리되어있었고 한 방마다 최대 4~6명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목욕'탕'의 개념이 아닌 그저 방마다 샤워기 딱 하나 있는 샤워만 하는 공간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우리 6명은 같은 방에 들어가 한꺼번에 씻기로 했다.
처음 맛보는 냉수마찰물을 틀자마자 모두 환호성을 내뿜었다. 상쾌하다 못해 아팠다. 평소에 찬물로 씻는 것과 차원이 다른 냉수마찰이었다. 물이 닿자마자 온몸이 닭 피부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
정신 차리자. 지금 안 씻으면 오늘, 내일 당장 샤워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기회가 생기면 샤워를 하는 것이 베스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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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렇게 빠르고 소름 끼쳤던 샤워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눈 한 번 딱 감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뭘까 상쾌하지 않고 감기 걸릴 것 같은 이 느낌은.. 모두 달달 떨으며 휴게실에서 몸을 녹인 후 밥을 먹고 본격적인 관광명소로 떠났다.
3일 차의 관광명소는 욜링암이라는 곳이었다. 동양의 융프라우라고 불리운다. 햇빛의 따가움이 느껴졌던 어제의 장소와 달리 산들로 둘러싸여 시원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욜링암 합격쓰~
풍경이 진짜 미친 곳풍경이 michin 욜링암에서 시간을 즐긴 후, 새로운 게르에 도착했다. 여행 동안 점심은 현지식을 사 먹고 아침과 저녁은 대부분 가이드언니가 게르에서 한국식으로 해주었는데 이 날 처음으로 몽골 현지식으로 저녁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날을 끝으로 현지식 저녁밥은 먹어볼 수 없었다.
음식을 오이, 나물 빼고 가리는 편이 아니라 늘 여행 갈 때마다 잘 먹는다. 몽골도 예외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더 열외 하고자 한다.
염소고기님! 축하합니다~바로 그 주인공은 염소였다. 다신 보고 싶진 않는 친구이지만 주인공답게 몽골 여행에서 잊을만하면 등장해주었다. 양고기도 특유의 잡내가 꽤 났었지만 염소고기는 명성 높은 양 잡내의 콧대를 한 번에 뭉그트려주었다. 자연에서 뛰놀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질김도 상상초월이었다.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게 예의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먹어보기로 하였다. 심지어 직접 차려준 정성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친구가 챙겨 온 비장의 핵불닭소스덕에 내 나름대로 정성을 보답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정도면 그냥 불닭 고기인데??
원래 매운 걸 잘 먹어 고기를 불닭 소스에 절여 먹는 맵부심도 친구들에게 뽐내주었다.
뼈째로 들어 불닭소스에 파묻힌 질긴 염소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운전자 게게가 나에게만 고기 몇 점을 더 올려주었다. 한국어를 못하는 게게가 보기에 가장 맛있게 잘 먹어 보이는 이에게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한 것 같았다. 분명 고마운데 왜 고통스러울까..흐륵ㄹㄱ
그래도 마음이 고마워 몇 입 더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포기해 버렸다. 그래도 정성에 대한 나의 최선이었다.
염소고기를 먹고 난 후에는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이를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입에 염소 냄새가 진동해 마치 만두를 먹고 난 후처럼 내 입 속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염소가 되었다.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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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큰 일은 없는데 자잘하게 기 빨리는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오늘은 남쪽 지역의 핵심인 고비사막으로 떠난다. 인생의 첫 사막이라 너무 설렜다. 이때도 지금도 내게 사막은 미지의 세계다.
이제는 오프로드만이 존재한다. 오프로드가 울~퉁불~퉁의 수준이 아닌 울!퉁!불!!퉁!!!!의 수준으로 심해진다. 우리는 흔들리는 푸르공 안에서도 잠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벨트가 맨 뒤 좌석들은 싹 다 고장이 나있었는데도 잠 앞에선 굴하지 않았다. 사알짝 많이 다리를 벌려 무게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팁이다. 잠을 자다가 차가 과감하게 기울어져 바로 깼다. 생존본능에 재빠르게 게게를 보았다.
이 기울기 뭐야.. 정상 맞아???
게게를 보니 핸들을 미친 듯이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1초 만에 다시 우리를 제 각도로 돌려놓았다. 정말이지 몽골 여행에서 자유여행은 내가 운전의 만렙이다! 몽골 지형에 천재적으로 빠삭하다!가 아니면 진짜 비추한다. 엄청나게 울퉁불퉁한 오지에서 운전을 잘못하면 차가 뒤집히기 쉬운 환경이었다.
미친 오프로드를 건너갈수록 사막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사막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시원하게 쏴악 내리쳤다.
시원하다~~~ 오늘 샤워 끝~~^^
아.. 근데 오늘 사막에 올라타서 샌드보딩 타야 하는데..
가이드 언니는 쨍쨍한 날에 사막 등반을 하면 등 다 까지고 발바닥 다 데인다면서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사막에서는 게르가 아닌 오두막 같은 숙소에서 지냈다. 그리고 전기가 가능하고 데이터까지 터지는 매우 귀중한 숙소였다. 아 이전 에피에서는 언급을 못했다만 오지 게르에 가면 데이터 안 터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핸드폰 충천을 거의 못했다. 이렇게 큰 게하에 와야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력부족으로 드라이기도 사용 못하고 하루에 딱 1시간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충전이 가능한 것에 감사하자
소나기가 그치질 않자 그냥 낙타를 먼저 타고 사막을 가기로 했다. 낙타를 사막에서 탈 줄 알고 기대했는데 사막 근처에서 타게 되어 매우 아쉽지만~! 어찌하리~
낙타와 인생 첫 만남은 이러했다. 말 크기에서 살짝 더 큰 크기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엄청 커서 무서웠고 눈도 엄청 커서 나를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 정도로 무서웠다. 그냥 무서웠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낙타에 올라탔다. 나의 낙타 친구는 이중 가장 활발한 친구였다. 자꾸 옆 낙타에게 달라붙는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 무섭다..ㅠㅠ
예..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던 나의 낙타 친구는 길을 가다 폭포수 같은 소변도 보고 분수 같은 침도 뱉었다. 낙타 침은 냄새가 정말 고약하기로 유명하다. 운 좋게 나는 침을 비껴 같지만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낙타 침에 희생당했다. 내가 그런 건 아닌데 뭔가 미안한 이 기분은 뭘까..
풍경이 진짜 미친 곳 2비가 그치고 고비사막으로 드디어 향했다. 등반 시작 전부터 생각보다 작네~ 하며 미친 오만함도 비추어보았다. 샌드보딩을 탈 보드의 줄을 몸에 이고 비에 젖어 질퍽해진 땅에 발을 내디뎠다. 미쳤다. 수억 개의 모래알이 내 발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기울기가 더 거세진다. 분명 앞으로 가고 있는데 진전이 없다. 분명 발을 내디뎠는데 발목이 미친 듯이 꺾인다.
1시간쯤 진전 없어 보이는 사막길을 쉴 새 없이 걷다 들이 누워버렸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라고 느낄 때쯤 할머니가 나를 지나쳐갔다.
I'm 75!!!!
백발 할머니가 만세를 하면서 사막을 화이팅 넘치게 걷는다. 할머니도 저렇게 힘내시는데 우리도 좀만 버텨보즈악!!!!
고비사막이젠 정말 종아리와 허벅지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 네 발로 사정없이 걸었다. 그러다 정신 차려보니 정상에 도착하였다. 사막 위 전경은 고통을 감수할만하였다. 오버 안 보태고 생각 이상으로 아름답다 느껴졌다. 진짜 미지의 세계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근데 두 번은 못햐...
마지막은 사막을 함께 등반한 샌드 보딩으로 장식하였다. 올라오는 건 한 시간, 내려오는 건 30초. 시간상의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그 30초는 얼굴이 뜯길 정도록 엄청난 속력으로 샌드보딩을 즐길 수 있었다. 속력이 너무 쎄 온몸이 후끈해지는 경험을 처음 하였다. 몽골 와서 처음 경험해본 것들이 많다. 온몸이 뜨거웠던 만큼 진짜 스릴 하나는 최고였다.
보드까지 타고 숙소에 딱 도착하니 다들 하나같이 너덜너덜해졌다. 없는 체력을 끌어다 모아 빡세게 놀은 우리들을 위해 가이드 언니는 닭볶음탕을 깜짝 선물해주었다. 센스 넘치는 우리 가이드 언니는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몇 년 공부하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닭볶음탕을 종종 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가이드언니의 손맛이 장난 아니었다. 우리 대학교 학식보다 맛있는 언니의 요리.. 그냥 이건 밥 두 그릇 먹으라는 거죠?
그렇게 모든 동행들이 두 그릇을 뚝딱하였다. 이날은 샤워실은 없고 세면실만 있어서 세면실에서 손발얼굴 구석구석을 열심히 닦은 후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핸드폰도 하면서 이젠 제발 좀 쉬자~
푸드덕. ㅎ
뭔 소리여
OO아. 너 방금 푸드덕 소리 들었지?
이 날은 6명씩 들어가는 게르와 달리 3명씩 숙소를 나눴었다. 그리고 나의 룸메는 몽골 동행친구들 중 가장 친했던 2살 언니랑 같은 방이었다. 저번 에피에서도 언급했듯 모든 곤충 중 나방류를 극혐 한다. 몽골여행에서도 작은 바선생이 나오면 내가 대신 처리해주었다. 하지만 여기 바퀴는 푸드덕거리지 않는 걸..?ㅠㅠ 푸드덕의 정체는 극혐 나선생이었다.
이제 진짜 몽골여행이 시작인 것인가? 초대도 안한 나선생이 말도 없이 우리 숙소에 놀러 온 것이다.
일단 소리지르기공교롭게 우리보다 나방을 덜 극혐하는 다른 한 친구는 잠시 연락하러 나갔었다. 선택은 없었다. 나방류를 극혐하는 언니와 내가 말도 없이 놀러 온 3마리의 나선생을 잡아내기 시작하였다. 급한 마음에 아무 물건을 막 잡은 것은 물티슈였는데 이번 1차 나방 사건을 계기로 몽골여행의 최고 벌레잡이로 선정되었다. 나의 물티슈 칭찬해~
나방들은 불을 켜면 이리 날고 저리 날며 난리를 치기 때문에 모든 불을 끄고 각자 핸드폰 후레쉬만을 의지하며 하나씩 잡았었다. 둘이서 등을 맞대고 오로지 푸드득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방찾이를 하는 도중 소리를 따라 이동하다가 서로의 얼굴에 후레쉬를 비춰 놀라 자빠졌던 재밌는 추억거리도 있었다. 서로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었는데 진짜 재밌었다. 전화를 마친 친구도 무슨 일이길래 난리 났냐고 물었었다.
무단 침입한 나방스앵님들 덕분에 언니와의 추억하나 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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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을 오기 전, 관광지를 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무료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루가 알찰지 몰랐다. 시간도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 채 이제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도 적응이 된듯하였다. 그렇게 5일 차를 맞이하였다.
사막에 온 후부터 머리를 주채 할 수 없는 오프로드는 하루가 시작하였음을 자각하게 하였다. 아까 적응했다는 말 취소ㅎ. 분명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머리는 헤드뱅이를 하고 엉덩방이를 미친 듯이 찍었다. 이제 눈앞에 손잡이는 살기 위해 잡기 시작하였다. 멀미가 정말 심한 나인걸 알기에 매 아침마다 멀미약을 챙겨 먹고 푸르공에 올라탔지만 점점 더 격해지는 오프로드덕에 나의 멀미가 슬슬 시작되고 말았다.
눈뜨고 이성을 잃은 자
그래도 아직 심각한 멀미는 아니라 다행이다. 오늘의 일정은 숙소 도착 후 바양작을 관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돋보기로 빛을 모아 쬐는 것 같은 더위로 5일 차의 일정은 노을이 질 녘에 바양작으로 떠나기로 했다.
드디어 몽골에서 무료한 시간에 갇혀버린 우리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가장 즐기고 싶었던 게 바로 드넓은 초원에서 여유가 넘치다 못해 무료한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기에, 시간은 넘치는데 데이터가 안 터져할 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무료함을 원 없이 즐기기로 하였다.
10장도 안 읽고 덮은 셜록홈즈찜질방 같은 게르 내부보다 비교도 안되게 시원했던 게르 뒤편 그늘에서 돗자리를 펴 좋아하는 노래도 들었다가, 책도 읽었다가..?
게르 안에 있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나와 각자의 방식으로 무료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몽골여행 갬셩무료한 시간이 정말 무료하다고 느낄 때쯤, 드디어 가이드 언니가 바양작을 가자는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양작의 매력
바양작은 차강소바라가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노을과 함께 봐서인지 조금 그을린듯한 분위기가 겸비된 곳이었다. 역시 모든 빛 중에서 가장 예쁜 빛은 노을이 질 녘의 빛인 것 같다. 뭘 찍어도 예쁘군하
노을이 질 즘에는 바양작의 진가를 더 느낄 수 있게 해줬다. 노을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전경 때문이지 몰라도 동행친구들 중 반절이 몽골여행 베스트 장소로 뽑아주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 드디어 몽골여행 중 첫 샤워실이 있음을 확인하고 고민도 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그렇게 더위에 매우 취약한 나는 언니와 함께 첫 타자로 들어갔는데..
나방 몇십 마리들이 샤워실 조명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순간 우리가 나방넘들의 파티에 침입한 건가 싶었다. 진정한 주객전도 아닌가
그렇게 언니와 나, 그리고 나방넘들과의 2차 대결이 시작되었다.
일단 빛의 속도로 들어가서 문을 바로 잠근 후 샤워실 안을 탐색하였다. 다행히 안에는 한 마리만 우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대답 대신 빠른 처리 후 맘 편히 씻기 시작하였다. 물이 뜨뜻하진 않지만 이 정도의 온도는 감사하다. 엊그제 냉수마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지금 뿜어져 나오는 물이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아주 상쾌하고 기분 좋게 씻고 눈누난나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리고 나가기 위해 불투명한 샤워실의 유리창과 마주하였다.
왁!!!!!!!!
아까보다 더 모여든 수십 마리의 나방들이 광란의 댄스파티를 하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냥 여기서 잘까? 그것도 나쁘진 않는데? 멍소리를 지껄여봐도 진짜 여기서 잘 수 없고.. 에라이~ 숨을 크게 고르고 문을 열어 돌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몽골여행의 팁은 에라이~ 마인드면 어떻게든 적응한다. 에라이~옘뱡
언니, 하나 둘 셋 하면 문 연다? 진짜 연다?? 진짜 진짜 연다?? 내 뒤에 숨어욕!!!
하나.. 둘.. ㅅ..!!!
문을 활짝 여는 순간 봄에 벚꽃이 우리를 스쳐 지나듯, 날뛰며 노는 몇몇 나방들은 우리의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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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당황스러우면 정신을 잃기 마련이다.
그 순간 너무 짜증 나기보다는 너무 어이없고 웃겨 어두컴컴한 샤워실 밖 초원 한복판에서 몇 분을 언니와 실성하며 웃다 게르에 들어갔다. 살면서 언제 나방들이 발광하면서 놀고 있는 자리를 온몸으로 스쳐가며 뚫는 경험을 해볼까라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언니와 몽골에서의 원치 않은 두 번째 추억 겟..?
내일은 어떠한 흥미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힘든데 재밌다. 기대된다 내일이.
epilogue.
여행기를 역행해서 써 내려가니 이전의 여행일수록 잊혀진 감정과 추억들을 재발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좋다. 쓰는 동안 행복하고 재밌다. 이렇게 글로 쓸만한 썰들이 많다니. 그리고 새삼 현실에서 짜증을 내고도 남을 상황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이고 웃으며 즐겼다니. 내가 이곳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벌레가 없음에 감사함을 느꼈고 변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눈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그저 현실과 정반대인 해방감에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그저 돈을 써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왜 나는 내일을, 아니 당장 앞을 한치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함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저기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한다. 낮이 되고 밤이 된다. 그런데 무엇이 일어났는가.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밖에 난 아무것도 아니다. 매일매일이 똑같다. 서로 바뀌어도 상관없다.
-삶의 한가운데 p135-
어차피 매일이 똑같은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개인마다 책임져야 할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게 현실에서는 익숙함이라는 안정감을 얻고 매일을 뻔하게 살았으니 짧은 여행에서 만큼은 내일을 뻔하지 않게 사는 게 삶의 생동감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전에는 공포를 느꼈으나, 이제는 나와 삶을 연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평안함을 느낀다. 무한한 적막감이 나에게 입을 벌리고 있다. 엄청난 무기력이, 어떤 환멸이나 권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무관심이 나를 채우고 있다.
-삶의 한가운데 p26-
몽골여행 전과 똑같이 현재의 나는 앞뒤가 구분되지 않는 나날들을 보내며 하루하루가 흘러져 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슷하면서 많이 다른 듯하다.
나에게 인생의 노잼시기가 다시금 찾아왔다.
몇 년을 열정 속에 살다가 갑자기 작년 하반기 때부터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죄책감에 몸과 머리를 계속 움직였지만 내가 이것을 왜 하고 있는지 무슨 목표가 있는지 나도 나의 감정을 모르기 시작하였다. 취업 준비 중에도 가고 싶은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가 목표하고 있는 직종에도 딱히 간절함이 없었다.
그래서 취업을 더 빨리하고자 하였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정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인생의 환멸 혹은 권태에서 비롯한 감정과 결이 다른 이야기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은 '불안감' 하나를 없앴기에 주변에서는 얼굴이 평온해 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살짝은 무기력한 노잼 시기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인생에 노잼시기가 찾아왔을 때는 목표를 만들어 이를 이겨내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는 콘서트나 여행 이외 대학이란 꿈 등 며칠 혹은 몇 달 또는 그 이상의 인내 속에서 기대와 설렘을 내게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목표가 없어서 이런 걸까?
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상황상 지금 당장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들과 계획들은 너무나도 많다. 다른 공부도, 경험도, 여행도.
청춘의 즐거운 훈기가 나를 스쳐지나 갔다.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유희, 잃어버린 어리석음들. 경박함과 대담함이 동반된 일정의 도취가 나를 거리로 내몰았다.
-삶의 한가운데 p114-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이 원인에 대한 또 다른 답을 이 구절에서 찾은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뺏아긴 것은 서로 바뀌어도 상관없는 하루하루의 지루함이 아닌, 잃어버린 유희, 잃어버린 어리석음이었다.
사소한 일상의 재미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일을 할 땐 업무 얘기 외엔 할 얘기가 없다. 아니 사실하고 싶지도 않다.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면 밥만 먹고 쫓기듯 헤어졌어야 했고, 혼자이든 누군가와 함께든 야외활동이라도 할 때면 그저 그 순간에만 일시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놀면 뭐하나 그 공간에 함께 공존하는 사람들이 같이 행복하질 않는데. 지금 당장 해외나 여행을 나가도 코로나 이전의 생동감과 활기참은 찾아볼 수도 없는데. 나만 논다고 진짜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돼버리니 지금 당장의 여행에 대한 욕심도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요즘 중학교 친구들과 만날 때면 이 소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인생은 역시 나사 빠진 채로 살아야 재밌어
최근 대학교 때 꽤 친했던 친구가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나이가 들면서 연락이 갑작스레 온다면?
1. 보험가입/다단계
2. 신천지
3. 결혼
뭐 대충 이 셋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경계를 곤두세우려고 하였다. 그래도 혹시 설마 하고 만났는데 후에 신밍아웃을 하며 신천지 이야기를 유도하려고 하였다. 사실 연락 올 때부터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넌지시 '진짜면 후기 들고 오겠음-' 했는데 진짜라니. 지인 중 신천지를 있었다니. 그리고 설마가 진짜라닠ㅋㅋ 삼삼하고 재미없는, 미래가 컴컴해 보이는 우리들의 스물 중반 이 시기에 이 썰을 친구들에게 풀어주니 술안주감으로 아주 제격이었다.
여행에서도 내가 여행이 참 재밌다라고 느낄 때가 별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마주하고 해결했을 때 그런 감정이 매번 들었었다. 학생신분일 때도 중간중간 친구들과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비생산적인 놀이를 할 때 인생이 나름 재밌다고 느꼈다. 중학생 시절엔 방학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유희, 잃어버린 어리석음.
이를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경박함과 대담함을 다시 가지려고 한다. 진지한 거 말고 그냥 해맑게. 완벽한 것말고 조금은 부질없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 말고 그냥 순간에 흘러가는 유희를 놓치지 않으며 즐기게. 대단한 거 말고 그냥 소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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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매주 목요일마다
한 달에 1명의 여행자씩
짧고 간결하게
정보성이 아닌 '이야기'를 중점으로
여정의 길을 늘 갈망하는 이들에게 재미난 에피소드로, 일상의 지루한 틈을 타 짧은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모여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 주는 동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의 이야기들을 모아, 지금 바로 move or action!
https://maily.so/moa.travel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