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몽골] 쓸데없는 것에 열정 쏟기

몽골의 고비사막과 홉스골 사이에서

by greenee



ep8.

쓸데없는 것에 열정 쏟기


6일 차, 평소와 다른 고통이 휘몰아친 아침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어김없이 오전 8시부터 오프로드를 열심히 달렸고 그러고 한 두어시간 지났을 쯤이었을 때었다.


일행1: 화장실.. 급해ㅇ..ㅕ
일행2: 토..나올 것 같아ㅇ..ㅕ
오프로드 제발 그만...

누구는 화장실이, 나는 구역질이 나오기 직전 간절한 절규의 속삭임으로 가득 찼던 푸르공은 동서남북 방향이 구분되지도 않는 어느 광활한 초원 위 덩그러니 멈춰 섰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오프로드는 탈 때마다 새로웠고 날이 갈수록 차 안에 있어야 할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 모를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몽골여행 중반부에 이러서야 이곳에서 첫 자연화장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길 위에 놓여진 시간이 반절인 몽골 여행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필수 사항이었다. 처음에는 6살 이후 오랜만에 경험하는 자연감에 민망함이 사무쳤지만 지난 푸세식 화장실을 생각하니 자연 화장실이 반갑게 느껴졌다.


어차피 엄청 넓은 황무지이기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예 없고 먼 곳은 사람이 눈꼽만치도 보이지도 않아 민망함도 잠시였다.


이렇게 또 자연생활에 익숙해지구나~




또다시 열심히 달리고 달려 숙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바양작을 이은 두 번째 무료함의 시간이었다.


어디 갈만한 메인 관광지가 있던 것도 딱히 아니었고 그저 대망의 홉스골을 가기 위한 길에 들린 곳이기에 갑작스러운 무료함이 아닌 예정된 유한한 무료함을 건네 받은 것이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무료함의 시간을 달래야 하나

벌써 느껴지는 무료함의 열기를 지나쳐 이곳의 숙소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바양작의 환경과 많이 달라 보였다. 몽골여행 중 best 3에 드는 시설로 즐길 것들도, 다양한 여행객들도 많은 곳이었다.


대부분의 게르 숙소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황무지에 4-5개의 게르만 떡하니 있는 곳이었다면, 이곳에는 마을처럼 여러 게르마을이 존재하였다. 옆에 게르 마을은 밤이 되면 여행객들끼리 파티를 열었다. 그곳은 밤이 되면 함께 가기로 기약한 후 우리는 가이드 언니가 기적처럼 내어준 트럼프 카드로 무료한 시간을 즐겨 보기로 하였다.


게임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다들 심심함에도 목말라 있었지만 모래바람으로 고생을 한 우리의 목도 건조함에 말라있었다.


우리 게르 뒷편에 바로 공용 식당이 있길래 이곳에서 게임도 할 겸 목도 축일 겸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갔다.


식당 안을 탐색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음료 냉장고였다. 그리고 그 속엔 여러 탄산음료, 맥주와 더불어 시원한 물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예이~~~

약 여행 일주일 차만에 처음 경험해보는 무언가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모두가 음료 냉장고에 쏟살 같이 달려가 하나같이 꺼내 든 것은 탄산도 맥주도 아닌 2L짜리 생수였다.


시원해.. 슈벙 물이 시원하다고ㅜㅠㅜ

우리나라에서는 흔하디 흔한 [시원한 물]이 몽골 여행에서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이상하게 어느 식당을 가도 '시원한 물 주세요' 하면 물 대신 늘 환타를 내어주셨다. 더 신기한 것은 식당이든 산 밑 매점이든 어딜 가도 시원한 물은 없고 환타만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환타 중에서 꼭 파인애플맛 아님 오렌지맛이었다.



너의 정체가 대체 뭐냐


이거다~
'시원한 물 한입 먹기' 내기로 조커 뽑기 기릿?

그렇게 몽골여행의 중반부를 달려서야 마셔보는 시원한 물을 맛보기 위해 우리 모두 게임에 집중하였다.


천진난만하게 행복한 우리들

물 하나에 세상 행복한 우리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거덜난 나까지도 시원한 물을 탐하며 눈을 부리나케 뜨고 카드게임에 임하였다.


그리고 뭔데 이리 게임이 이길듯 말듯 쫄깃함까지 겸비한 것인지;


승산이 보일 때면 의자에 올라타 환호를 지르며 난리가 났었다.


여기 매점 주인의 아이들인 몽골 애기들도 어린 자기들보다 더 해맑은 우리가 꽤나 신기했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우리 곁을 맴돌았다.



그리고 첫승자의 왕관은 나에게로 써졌다.


눈물의 물맛

물을 한입 시원하게 털어먹는 순간 온몸에 혈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푸르공 뒷트렁크에 뒹글 거리던, 햇빛에 오래 방치되어 미지근 하다못해 약간 뜨뜻 찝찝했던 물맛이 아니라니. 나.. 물 한잔에 우니?


한국에서는 이런 게임을 한다면 쳐다도 안 봤을 터인데 우리는 이 사소한 물 한입에 목숨 걸고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였다.


그렇게 2L 생수를 모두 비워서야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치열했던 게임으로 수분을 채우고 나서는 몽골의 귀여운 아이들과 유한한 무료함의 시간을 채워갔다.


DSC03670-2.jpg 그림 같은 엉긴사원 숙소 앞 전경
DSC03671.jpg 몽골 최애 사진 중 하나


몽골 아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신기했던 풍경 속, 어미말과 조랑말.


귀여운 몽골아이들과 찰칵


몽골 애기들과 바디랭귀지로 대화도 해보고


눈치없이 애기들 노는 데 끼기


피구 시합에 은근슬쩍 끼어 함께 놀기도 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유희의 순간들은 무료할뻔한 하루를 어린아이와 같은 동심으로 채워주었다.



자기 전, 게르 밖에서 돗자리를 펴고 다같이 노래를 들으며 맥주 한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료함의 절정을 찍은 밤 분위기를 만끽하며 하늘 위를 올려다 보았다. 보름달에 가려져 은은한 빛만 내뿜는 별들 눈에 들어온다. 마음 속에 숨겨진 동심의 빛이 오늘의 나를 밝혀줬듯이



자유와 선택의 폭이 넓어진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는 것 중요하지만,

가끔은 피터팬이 돼보아도 좋은 것 같아.







epilogue.

동심의 가치. 나는 동심의 가치를 단순 추억의 감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날처럼 속세에 물들어 잊혀지낸 순수함의 감정을 떠오르게 해 주고, 때로는 냉혹한 세상으로부터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이렇게 어영부영 법적인 어른의 명표를 달고 진짜 사회를 하나씩 알가기 시작하면서, 한낱의 추억인 줄만 알았던 동심의 몽글몽글한 감정과 순수했던 뛰놀음만은 그때 그 시절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진짜 어른이 돼갈수록 내 기억 속 동심의 가치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듯 나는 나만의 어릴 적 동심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생각을 변함없이 지니고 사는 데에는 시골의 할머니 댁과 경주에서의 짧은 추억이 큰 역할을 도왔다.



할머니 댁에서 본 반딧불이


첫 번째 나이대가 비슷한 사촌들과 나의 어릴 적, 우리는 이곳에 모이기만 하면 온 동네를 뛰노며 동심의 흔적을 곳곳에 새겨갔다.


봄이 되면,

땅에는 푸릇한 풀들과 알록달록한 꽃이, 그 위에는 잠자리와 나비들이 우리 곁을 맴돌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넘어지고 싸우기도 하였다. 때로는 마당 앞에 새롭게 피어난 풀잎과 꽃잎을 따 돌멩이로 빻다보면 우리만의 푸릇한 봄 지나갔다.


여름이 되면,

징그럽게도 많은 여치들이 마당에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여치는 공포스러웠지만 시냇가의 물고기와 개구리를 보러 가는 길은 흥미로운 일과였다. 시냇가로 가는 길에 오디나무가 있으면 오디도 따먹고 옥수수밭을 가르며 뛰놀다 갑자기 마주한 거대한 나무에 겁에 질리 우리들만의 시원한 여름을 지나갔다.


가을이 되면,

마당에는 분홍빛 코스모스와 풋사과 같은 대추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선선한 날이 좋아 40분 떨어진 초등학교를 무턱대고 걸어 다녔다. 아무도 없는 학교 구령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가끔 가을비가 내리면 우산을 던지고 시원한 빗물에 몸을 맡기며 우리들만 감성적인 가을을 지나갔다.


겨울이 되면,

할머니댁 앞 얕은 시냇가 물이 얼기 시작하였다. 어린이들은 시냇가로 내려가자마자 돌을 던져 물이 꽝꽝 얼렸는지 확인하였다. 스케이트화도 없이 각자의 신발만으로 서로를 가로질러가며 놀았다. 그리고 어둑한 밤이 되면 게임을 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의자를 이어 우리만의 아지트에서 우리들만의 따뜻한 겨울을 지나갔다.


그리고 매일같이 새벽에 옹기종기 아이들끼리 모여 냄새 풀풀 풍기는 라면을 집어 어른들 몰래 끓여먹으면 입이 짧았던 어린 나도 단숨에 라면 한 그릇을 먹어 해치웠다.



시간이 흐르고 시냇물의 물도 줄고 반갑지 않았던 벌레들도 줄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어 시시한 놀이에 더 이상 흥미를 붙이지지 못하였다. 더불어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우리의 시선은 각자의 핸드폰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동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경주

두 번째 아빠의 출장과 함께 얼떨결에 시작된 이곳과의 짧았던 인연은, 동심의 낭만들이 담긴 추억의 잔향기로 배어졌다.


아파트로 동네를 채운 서울의 전 집과 달랐던 우리 집 뒤 기찻길을 거닐 때면 환상 같던 지브리 주인공이 되어버렸고, 달고나를 먹기 위해 골목 가득히 채운 수두룩한 문방구들을 탐방하며 고른 허름한 문방구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가끔씩은 동네를 벗어나 가족끼리 갔던 바다 절벽에 걸쳐진 화덕피자집에서 창밖 너머 구경하던 외국인 요리사 아저씨의 화려한 손기술은 두 남매의 작은 마술쇼였고, 바닷바람을 가로지르며 뛰노는 우리를 보며 피자를 기다리는 일은 부모님만의 낭만에 일조하였다.




추억이 된 그 시절의 동심을, 그저 어렸기 때문에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훨씬 아름답게 느끼지는 감정이라고 가볍게 칭하고 싶지 않다. 곳곳에서 나는 나만의 동심의 체취는 변함없이 그 향기를 잃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 향기를 잃지 않았음에, 2019년 몽골 고비사막과 홉스골 그 사이에서 터무니 없는 것에 열정을 쏟을 줄 아는 하루를 흘러 보낼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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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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