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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매화노루발 미소

소녀의 기도

by 이주형

매화노루발 미소

소녀의 기도


산의 뜻에 따라

까치수염이

세상 괄시와 천시에

마음 꺾인 이들을

정중히 고개 숙여

맞이합니다


잘 왔다고

포기하지 않고

와줘서 고맙다고


그 말이 이정표가

되어 길을 안내합니다

이정표에 노루 길이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상처 가득한 노루도

이 길로 지나갔다고

노루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노루가 찾던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을 찾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도 그랬다며

고개 꺾인 이들에게

길을 내어줍니다


소나무를 지나 온 6월 바람에서

매화 향이 납니다, 향 너머로

눈 밭을 헤매는 노루와

그 노루를 위해 소나무보다

더 푸른 등불을 밝히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소녀를 봅니다


누구를 향한 참 기도에는

크고 작음이 없음을

한 뼘 키로도 소나무 그림자를

치고 선 그녀가

비틀거리는 세상을 향해

살풋이 고개 숙인 채 미소로

말합니다


저만치 앞서 뛰어가던 노루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도에

답하듯 맑은 눈으로

뒤를 봅니다

그 눈에서 겨울을 배웅하는

매화향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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