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린, 다 살게 되어 있단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박효신의 <야생화> 뮤직비디오가 처음 공개되었던 날을 기억한다. 색을 빼앗긴 어느 황량한 땅 위로 울려 퍼지던 노랫말 “끝에 다시 나를 피우리라”. 척박한 대지 위에 피어난 한 떨기 야생화를 거쳐 우리는 지금 이곳, 습기 가득한 오지에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이 더럽고 척박한 땅에서 푸릇푸릇한 것이 돋아난다. 어디서든 잘 자란다는 미나리, 그와 똑 닮은 사람들의 무구한 얼굴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움직임의 힘이 가장 큰 캐릭터는 제이콥과 모니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며 한국을 떠나 미지의 땅 미국으로 향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동력 삼아 쉼 없이 움직인다. 요컨대 제이콥과 모니카는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버둥거리는,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제이콥의 꿈은 성공이다. “Big graden”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성공. 그에게 있어 미국에 정착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말 그대로의 성공. 최우선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이뤄내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땅에 뿌리내리지 트레일러 하우스는 이러한 그의 열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작은 바퀴에 의존해 얼마간 불안한 형태로 허공에 떠 있는, 바람에 휙 날아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런 위태로운 집. “Big garden”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불안정한 집 문제는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아메리칸 드림’에 진심인 인물이다.
반면 모니카의 꿈은 정착이다. “난 바라는 게 별로 없어.”라고 말하는 모니카가 바라는 건 집다운 집에 사는 것, 가까운 곳에 이웃과 병원이 있는 것. 그러니까 사람들이 으레 사는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것. 모니카는 매일 병아리 똥구멍만 쳐다본다 해도 온 가족이 마음 놓고 누울 만한 안온한 보금자리가 있다면, 주에 한 번 정도 만나 가벼운 대화를 나눌 이웃이 있다면, 심장이 약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갈 만한 병원이 가까이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제이콥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구장창 “Big garden” 염불만 외는 제이콥 곁에서 모니카는 시종 불안함을 느낀다. 어쩐지 남편의 분홍빛 꿈이 그나마 유지되던 현실을 와장창 깨뜨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Garden is small!
꿈에 부푼 제이콥에 일침을 날리는 이 대사는 모니카의 현실주의자적 면모를 보여준다.
서로를 구해주자는 약속을 잊은 듯한 남편 곁에서 모니카의 시선은 종교로 향한다. 꼭 어딘가로 데굴데굴 굴러갈 것만 같은 바퀴 달린 집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꽉 붙들려 있길 바란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에 편입되어 공통된 무언가로 꽉 매여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덤으로 구원까지 얻을 수 있다면 완전 땡큐고. 아무렴 방점은 적당한 구속력이 있는 공동체에 있다.
분홍빛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로 매 순간 분투하는 제이콥과 모니카와 달리, 순자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다. 순자에게는 거창한 목표가 없다. 그는 그저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대륙을 건너왔을 뿐. 그렇게 도착한 미지의 땅에서도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너무 애쓰지 않고, 또 너무 절망하지 않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부부 앞에 나타난 이 할머니는 “너무 애쓰지 말라.”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웬만한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손주들에 크게 상처 받지 않고 툭 울음을 터뜨리는 딸 앞에서도 의연한 모습이다. 산에서 온 이슬 물 갖고 오라고 했더니 제 오줌을 갖고 온 손주한테도 크게 화내지 않는다. 어린 손자가 죽음을 걱정할 때, 신에게 기도하기는커녕 “노 땡큐!”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 당찬 할머니의 여유는 고된 세월의 더께로부터 온다. 이미 살아본 자의 여유, 온몸으로 시간을 뚫고 지나온 자의 여유.
순자는 희망찬 미래를 믿지도, 전지전능한 신의 자비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살아진다는 것을 믿는다. 살면 살아진다는 것. 아무리 척박하고 각박하다한들 쉽게 죽지 않는 미나리처럼. “너무 애쓰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자생력(自生力)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각자 다른 것을 최우선으로 삼던 제이콥 부부에게 성공과 생계의 토대이던 창고가 모두 타버리는 비극이 닥친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채 서로에게서 영영 멀어지던 두 사람은 하나의 비극 앞에서 한 팀이 된다. 성공과 생계가 모두 무너져버리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도리 없이 들이닥친 재해 앞에서 부부의 싸움은 자연히 멎어 든다. 갈등과 다툼의 자리를 대신 채우는 건 서로의 절망을 알아보는 눈과 슬픔을 껴안는 팔이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앗아간 비극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아마도 그들은 순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살면 살아지는 삶을 알게 될 것이다. 성공도, 안정도 모두 물 건너갔지만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 억척스럽게도 이어져나갈 삶.
영화의 말미, 순자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앞둔 가족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딘가 우수에 차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척 슬퍼 보였고 또 인간이 차마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내다보는 것 같던 그 얼굴. 순자의 눈동자에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삶의 질곡이 어려 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눈에만 있을 수 있는 모든 생생한 역사와 감정이. 그렇게 순자는 살아지는 삶, 살아내는 삶의 상징이 된다.
순자를 보고 따라 걷는 제이콥과 모니카, 앤과 데이빗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과 살아내는 삶의 상징이 될 것이다. 깊게 뿌리를 내리고 서로에게 얽혀 들며, 죽지도 않고 또 한 뼘 자란 억세게 푸른 미나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