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자 딸을 둔 실직자 아빠의 뚝딱 요리
갑작스러운 실직을 맞아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아빠의 레시피와 아직도 무직인 딸의 소담한 일상을 같이 씁니다. 우리 부녀는 (비록 직업은 없지만) 여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
Ep. 번외
10편째에 쓰려던 번외 편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좀체 없는 불가항력의 삶이다.
3월이 잔인해진 건 언제부터였는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꽃샘추위'를 경고하던 기상 캐스터의 모습이다. 그 뒤로 이어진 '황사'(내일 역대급의 황사가 온다고 한다. 모두 별 탈 없이 하루 보내시기를 기원한다), '미세먼지'. 또 뭐가 있더라. 아, 태초에 '개학'과 '개강'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는 끝판왕 '상반기 공채'.
동거인은 꽃에 대해 잘 안다. 가끔 답답함을 못 이겨 동네 산책을 나갈 때면 "저기 산수유다.", "이제 홍매화 피나보다."라고 말하며 개화 소식을 전해준다. 그 많은 꽃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하여 말하는지 신기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학교에 꽃 많잖아. 그때 다 알았지.", 동거인은 푸릇한 교정에서 낭만까지 배워온 모양이었다.
바야흐로 꽃이 피고 봄이 시작되는 3월이다. 어린 시절 계절에 대해 배우며 '공평'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9,10,11월은 가을, 12,1,2월은 겨울. 그러니까 계절은 모두 공평하게 3달씩 나눠가졌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토록 균등한 배분은 어그러진 지 오래다. 3월의 중반에 이른 지금, 밤은 여전히 춥기만 하다.
취준생의 3월은 더욱 혹독하기만 하다. 오늘만 해도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공채 진행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공채 소식이 기회의 장처럼 느껴진다면 참 좋으련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일단 공채가 뜨면 확인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채용 포지션, 관련 전공, 필수 자격, 우대 사항, 서류 항목, 채용 절차, 기존 합격자 스펙까지. 제 아무리 기다리던 기업의 공채 소식이라도 일단 맞닥뜨리면 엄청난 질식감에 시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자연의 계절 분배가 균등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삶의 계절도 그를 따라 균등한 배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3개월짜리 겨울도 잘 버틸 수 있을 테니. 3월이면 확실히 봄이 온다고 확신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삶의 계절은 자연의 계절보다도 더 불확실하여 언제쯤 겨울이 끝나는지, 봄이 오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캘린더는 온갖 기업들의 채용 마감 일자 표시로 가득하다. 시간이 이렇게 흐른다는 것이 쓸쓸할 때가 있다. 3월 15일이 그냥 3월 15일이 아니고, 어느 기업의 채용 마감 날짜로 달리 말해진다는 것에 가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한 감정을 느낀다. 이렇게 3월 17일도, 3월 22일도, 3월 24일도, 3월 31일도 가겠지. 날이 바뀌어도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3월 15일을 달리 기억하기 위한 작은 일기: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누군가 내 왓차피디아 영화 코멘트에 좋아요를 눌렀고 속으로 '이거보다 다른 게 더 잘 썼는데, 이게 더 반응이 좋네' 생각했다. 뒹굴거리다가 이부자리를 정리했고 동거인이 만들어준 양파 카레를 먹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잠깐 누워서 쉬었다.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샤워를 했고 공채 속보가 떴다는 소식에 휴대폰을 붙잡고 이런저런 정보를 확인했다. 확인하는 사이 다른 기업의 공채 속보가 또 떴고, 또 확인했다. 과다 정보에 피로해져 다시 누웠다. 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럴수록 몸을 움직이는 건 더욱 힘들었다. 눈 감았다 다시 눈을 뜨면 107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거인과 잠깐 노년 롤플레잉을 했다. 동거인은 "우리가 20대에 무슨 직업을 가졌었더라?"라고 물었고 나는 허허실실 웃으며 "노망 났어? 우리는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잖아. 우리는 한평생 가난했다우."라고 답했다. 오늘 중 유일하게 진짜로 웃겨서 웃은 순간이었다. 잠깐 잠에 든 사이 또 다른 기업의 공채 소식이 떴다. 더 피로해졌다. 간신히 일어나서 동거인이 다 만들어 놓은 비빔밥에 숟가락만 얹었다. 없던 입맛이 돌아오는 맛이었다. 스트레스에 미쳐버린 동거인과 나는 자꾸만 더 고추장을 추가했고 육체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매운 입을 달래기 위해 초코 과자를 먹었다. 단짠단짠은 진리였다. 배가 터질 것처럼 부른데도 음식은 끊임없이 들어갔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현대인의 필수 질병임에 분명했다. 와중에 또 맥주가 먹고 싶어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던 동거인에게 맥주 심부름을 시켰다. 마음씨 좋은 동거인은 기꺼이 심부름꾼이 되어주었고 아래 마트에서 지금 테라 할인 행사 중이라 600원을 더 할인받았다며 기쁘게 말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일 중 유일하게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맥주 한 캔에도 술기운이 도는 가성비 좋은 몸을 가졌다. 두 번째 좋은 일이다.
필요한 재료: 돼지 등갈비 167g, 김치 반 포기, 물, 된장, 소주, 설탕, 진간장, 대파
1.
등갈비는 먼저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 핏물을 뺀다. 이때 중간중간 물 색을 확인하면서 새 물로 갈아줘야 한다. 나는 10분에 한 번씩 물을 갈아줬다.
2.
핏물이 빠진 등갈비를 냄비에 넣은 뒤 등갈비가 다 잠기게끔 물을 추가한다.
3.
아빠의 레시피에는 없는 단계인데, 잡내를 없애기 위해 된장을 한 숟갈 넣어줬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은 편이다.
4.
이것 역시 아빠의 레시피에는 없는 단계이다. 된장을 물에 잘 풀어준 다음 소주를 한 숟갈 넣어준다.
5.
등갈비가 잡내 빼기에 여념 없는 동안 김치 반 포기를 준비해준다. 벌써 맛있다.
6.
약 20분 간 등갈비를 삶은 다음 건져 낸다.
매번 아빠의 레시피를 받을 때마다 왜 단계마다 사진이 있다 말다 하냐고 푸념한 적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크게 반성했다. 요리하면서 사진 찍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
7.
냄비에 다시 등갈비를 넣고 그 위에 김치를 올려준다. 김치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한 번 끓어올랐을 때 진간장 두 숟갈, 설탕 세 숟갈을 추가했다.
설을 지내고 다시 동거인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빠는 밀폐용기에 김치찜을 넉넉히 담아 챙겨줬다. "맛이 있을랑가 모르겠다."라던 아빠의 말은 겸손의 말에 불과했다. 김치찜은 나와 동거인의 입맛에 아주 딱 맞았고 김치찜이 동났을 무렵 동거인은 "김치찜 또 먹고 싶다."라며 아빠 요리에 대한 나의 자긍심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어쩐 일인지 일찍 눈을 뜬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김치찜 레시피를 요구했다. 아빠는 "별거 없어."라고 말하며 간략히 레시피를 전수해줬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내가 다시 깬 건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후, 아빠의 전화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을 때 아빠는 다짜고짜 "진간장이랑 설탕도 넣어야 돼."라고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갑자기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늦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무렴 아빠는 딸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한 부가적인 재료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동거인과 나는 아빠의 전화가 귀여워 한참 웃었다.
8.
국물이 자박자박해졌다 싶을 때 대파를 대충 잘라 넣어준다. 중불 기준 한 30분 정도 졸이니까 대충 김치찜 모양이 났다.
8.
완성!
비주얼은 꽤 그럴싸했는데 설탕이 조금 부족했던 건지 김치찜이 전반적으로 너무 신 맛이 강하고 짜기도 짰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어 아빠에게 사진을 보내줬는데 아빠는 보자마자 "조금 짰겠는데."라고 말했다. 뭐지, 귀신인가.
하여간 이제 하다 하다 등갈비찜도 집에서 해 먹게 됐다. 엄청 어려울 줄 알았는데 또 막상 해보니 그렇게 난도가 높은 요리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것들이 참 많다. 보기에는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별로 어렵지 않은 것들. 그냥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다.
그럴싸한 요리도 간단히 뚝딱 해내는 아빠의 레시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부친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레시피 출처: 아빠
사진 출처: 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