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뒤 세상이 멸망한다면
“세상은 멸망할 거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은 내 마음을 쾅 내리쳤다. 당황스러웠다. 멸망. 모든 게 끝나버린다는 말이었다. 카페의 시원한 공기 속에서, 그 단어는 갑작스러운 불똥처럼 내 몸을 스쳤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고, 손가락 끝으로 커피잔을 천천히 굴리고 있었다. 그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최근 보고서들을 보면 답은 나와.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에 이미 산업 혁명 시기에 비교해서 1.5도가 올랐어. 이는 우리가 설정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을 넘는 거지."
그는 고개를 들었고 말을 이었다.
"이는 2023년에 2040년까지의 목표로 설정했던 온도야. 그걸 단 1년만에 초과해버린 거라고. 기후 변화는 가속되고 있고,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임계점이 넘었다고 확신해."
그의 말은 너무나 명확하고 사실적이어서 반박할 틈조차 없었다. 나는 커피잔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근거를 들을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과학이 제시한 정보 앞에서 나는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걸 받아들이자는 거야?"
그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멸망을 두려워할 시간에 지금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를 들어, 10년 뒤 세상이 정말 멸망한다면, 지금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
그 말은 마치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비친 손전등 같았다. 분명 그 빛은 내 눈을 찌르고 아프게 했지만 분명히 길을 밝히고 있었다.
그가 말한 멸망은 절망적이지 않았다. 차분했고, 기이하게도 능동적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 같았다. 꾸준하고 흔들리지 않는 바람. 반면 나는 달랐다. 그의 사고방식은 낯설은 무언가 였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그의 말은 내게 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돌맹이를 던지고 있었다.
‘만약 10년 뒤 세상이 없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그 질문이 불편했다. 그 질문은 내가 지금까지 외면했던 것들을 억지로 직면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나는 지금 진짜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의미한 일들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걸까?’
그의 말은 나의 내면을 찌르며 깊게 파고들었다.
"10년 뒤 세상이 멸망한다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멸망이라는 단어는 마치 커다란 그림자처럼 내 삶 위를 뒤덮었다. 숨이 막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림자가 내 마음을 덮자, 내 마음 속에 어둠이 내리자, 보이지 않던 작은 불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지금까지 미뤄둔 모든 것, 언젠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빛은 불안 속에서 희미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친구는 멸망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는 삶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멸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그 단어는 이제 내게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어둠 속의 작은 불빛처럼,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10년 뒤 세상이 끝난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질문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답을 찾고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고, 그 길로 뛰어드는 것이다. 멸망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을 살라는 강력한 명령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친구에게 가볍게 농담을 건넸다.
"10년 뒤 멸망한다며? 그럼 너랑 나는 그때도 같이 커피 마시고 있겠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응, 아니면 지금도 만나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