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by 상상혁

"다음 회장은 네가 해야 할 것 같아."

토론 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내가 차기 회장으로 지목된 건 꽤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로 다가왔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는 사람들을 잘 챙기잖아."라는 친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설였다. 대화를 즐기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좋아했지만, 모두를 이끌고 주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버거워 보였다.


"해볼게."


그 말을 꺼낸 순간, 마음속에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회장이 된 뒤, 첫 번째 과제는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고 그들과 기존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나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막상 모임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이번 기수 저번이랑 너무 비슷하지 않아요?" 한 회원의 속삭임이 들렸다.

대화는 점점 딱딱해졌고,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부족해서 동아리의 재미를 잃게 만든 것 같았다.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고, 그냥 회장직을 괜히 맡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회장직을 포기하는 것은 동아리 전체를 포기하는 일이었으니까.

며칠간 고민한 끝에, 회원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모임에서 뭐가 부족하다고 느끼세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처음엔 침묵이 흘렀지만, 몇몇 부원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제가 너무 딱딱해서 재미가 없어요."
"가볍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활동이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랑 친해질 기회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활동을 새롭게 기획하고, 소모임도 다수 권장했다. 시작하기 전 아이스브레이킹으로 가벼운 스몰 토킹과 부담 없는 대화를 위한 주제를 추가했다. 회원들에게 주제를 직접 제안하도록 하며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변화는 천천히 나타났다. 다음 활동에서 나는 회원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 모임도 기대돼요."


그 말이 내 안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했다.


그 경험은 나를 바꾸었다.

리더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통은 불편했지만, 나를 흐르게 만들었다.


이제 결심한다. 흐르는 물처럼 살기로. 대화의 흐름도 나의 삶도, 멈추지 않도록.


그리고 언젠가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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