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며 침대 옆에서 연필들을 깎았다. 한 자루의 연필은 손에 쥘 수 없게 짧아졌다. 글씨 연습을 시작하며 샀던 녀석이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글씨 연습을 했구나.'하는 뿌듯함과 함께 더 이상 쓸 수 없어진 연필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 쓴 연필을 모아두는 유리병에 그것을 담았다. 어제까지 몽당 연필이었던 것이 다 쓴 연필이 된 것이다. 이러한 경계 긋기에 오늘도 상상에 빠진다. 모든 연필은 사용할 수록 짧아지고 결국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그 경계는 모호한 것이라서 나에게 못쓰는 연필이라 하더라도 타인에게는 아직 괜찮은 연필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쓴 연필이란 그저 주인이 정의 내리기 나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연필을 언제까지 쓸 것인가? 이것을 종단의 문제라고 부르고 싶다.
효율성을 위해서는 종단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조금 쓰고 연필을 버리는 것은 낭비이며, 지나치게 오래연필을 사용하는 것은 불편하다. 적당히 짧아진 연필은 아깝지만, 다 쓴 연필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 종단이 없다면 '영원한 대화'에 빠진다. 마피아 게임에서는 투표를 해야하며, 글쓰기는 결국 끝을 맺어야 한다. 더 긴 토론이, 더 긴 계산이 더 좋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기다릴 수 없기에, 적당히 좋은 답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종단이고, 종단은 균형의 계산이기도 하다. 몽당 연필을 다 쓴 연필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신중하게 계산된 효율성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