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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학용 Nov 02. 2020

#6 내려갈 길을 굳이 올라가는 까닭

라마유르 히말라야 트래킹 첫날


두려움과 설렘. 모두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히말라야 트래킹 첫날이다. 우리들은 라다크 히말라야의 여러 길 가운데 라마유르(Lamayuru) 코스를 선택했다. 라다크는 동서로 길게 뻗은 히말라야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라마유르 코스는 그 라다크 히말라야의 깊고 아름다운 트래킹 코스 중 하나로서 일반적인 여행자들에게는 덜 알려진 독립적이고 탐험적인 느낌을 주는 코스라 했다. 실제 우리들이 걷는 동안 만난 다른 여행자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보통 4박 5일이 소요되고, 해발 3500미터에서 5000미터 사이의 험준한 고개 두세 개를 넘어야 하는 힘겨운 코스였다. 


처음에는 텐트, 침낭, 조리기구, 식료품 등 야영 장비를 레(Leh) 현지에서 구해 직접 밥을 해 먹으며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다. 당나귀와 당나귀 몰이꾼 역시 트래킹 출발지점에서 직접 알아보아 야영 장비들을 싣고 그들을 가이드 삼아 걸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레(Leh)에서 아이들이 고산병과 싸우는 동안 나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히말라야를 걷는 일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히 벅차고 힘든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현지 여행사들을 몇 군데 돌아보며 가이드 1명, 요리사 2명, 헬퍼 4명, 당나귀 10여 마리와 캠핑 준비물 및 식료품 일체를 패키지로 계약한 것이다. 다만 트래킹 도중  급격한 산소부족 상황에 대비해 휴대용 산소통 10개, 끓인 물을 담을 수 있는 개인 물통 15개, 계곡물을 정제하는 정제 알약 3통,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다이아막스 2통 등을 추가로 구입함으로써 트래킹 준비를 마쳤다. 


페이 마을을 떠나는 날 아침. 사륜구동 승용차, 트럭, 미니버스가 한 대씩 마을로 들어왔다. 트럭에는 4박 5일 동안 우리들의 집이 되어줄 텐트와 요리 장비와 식료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여행사 대표 가쵸가 가이드, 요리사, 헬퍼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출발. 

프래킹의 출발 지점 라마유르 마을

마을을 떠나 3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트래킹의 시작점인 라마유르였다. 라마유르를 우선 돌아보기로 한다. 언덕 위에 보이는 하얀 곰파(Gompa, 사원)를 향해 걷는다. 마을은 사막 빛의 구멍이 숭숭 뚫린 산비탈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곡예하듯 가옥들을 품고 나아가던 길 끝자락에 푸른 하늘을 날개 삼아 곰파가 하얗게 서있었다. 황량했다. 그리고 지독히 아름다웠다. 누런 산과 하얀 곰파와 스님의 자줏빛 승복이 서로를 신비롭게 대비시켰다.


 그 길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노인들을 만난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가는 꼬마도 있다. 어디서부터 타고 왔을지 모를 오토바이 여행자도 만난다. 만약 여행학교 아이들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저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저토록 황량한 언덕에 서서 저처럼 고고한 얼굴로 마을을 내려다보았을지도. 

아이들이 처음 방문한 곰파를 한 바퀴 돌아보는 사이, 나는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그리곤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고산지역이므로, 아이들의 얼굴은 곰파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한 듯 상기되어 있다. 드디어 가이드 ‘지미’가 선두에 섰다. 본격적인 트래킹 코스로 접어든 것이다. 그때 아이 하나가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려올 거면서, 곰파에는 왜 올라간 거야?” 


곰파에 다녀오느라 이미 1시간이나 걸었지만,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총량에서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들 마음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그러게. 내려올 것을 왜 올라갔을까. 아이들은 그 이유를 아직 모른다. 물론 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아직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5일 동안 매일매일 해야 할 짓이 결국 내려갈 것을 힘들여 올라가는 일이고, 역시나 올라갈 길을 굳이 내려가는 일임에도. 그 까닭을 조금이나마 알게 될 즈음이면 아마도 우리들의 트래킹은 끝나가고 있을 것이다. 흘깃흘깃 뒤돌아보며 히말라야 어느 자락에 흘려두고 온 마음을 애써 감추느라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려올 길을 공들여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하늘은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파랬고, 대기는 투명했다. 앞뒤 좌우 눈 닿는 곳마다 해발 5천 미터, 해발 6천 미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다. 우리들이 걸어갈 길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결국 산머리 뒤편으로 사라지곤 했다. 


이 길 위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길이란 원래 끝나지 않는 것이고 그것만이 길의 유일한 속성이라고 믿게 될 것 같다. 30분 만에 여행학교의 대표 거북이 유진이와 막내 우현이가 뒤쳐지기 시작한다.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이 시간으로 쌓여감에 따라 아이들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자신과의 진검승부가 시작된다. 


‘힘들어. 미칠 것 같아…. 언제 이 길이 끝날까…?’ 


모두가 그런 말들을 하고 있지만, 누구의 입술도 열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극한의 힘듦 속에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말로 되어 나오는 그 순간부터 단 한 걸음도 더 내딛을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삼촌, 더는 걸을 수가 없어요."

“조그만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올라 너무 힘들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간에 산 하나를 넘었는데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이래서 5일을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솔지)     


“오늘은 트래킹을 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들뜬상태였다. (중략) 점심을 먹고 나서 본격적인 트래킹에 나섰다. 너무 힘들어서 올라가기 싫었다. 처음 트래킹인데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트래킹을 할 것인지 앞이 막막하였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철민)     


“처음엔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힘들어 미치는 줄 알았다. 어지럽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트래킹을 끝내고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거의 바로 잠들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우현)     


“히말라야의 경치는 정말 멋있었고, 죽기 전에 못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생각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진실)     


“힘들긴 했지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리고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참 좋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든데. 머리가 하얘지며 풍경만 눈에 들어왔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길은 누구에게는 혼자 걷는 즐거움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죽을 고비가 된다. 앞으로 걷게 될 길들이 설렘으로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힘든 이 길을 5일 동안 걸을 생각에 눈앞이 막막해지기도 한다. 길은 하나인데도 길이 사람을 만나는 순간, 길은 이처럼 다양해진다. 수천 년 동안 이 길을 앞서 걸었을 수많은 순례자와 상인과 여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삶이 그렇듯이, 히말라야의 길은 그들에게 생명과 환희와 자유였다가, 때론 고통과 막막함과 죽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환희였다가 고통이었다가 다양한 극한의 감정들을 번갈아가며 선물하던 길이 3시간 만에 단락을 이루었다. 마침내 첫 번째 고개인 해발 3750m 프린키티 라(Prinkiti La)에 올라선 것이다. 아이들 몇은 히말라야 설산들을 가슴에 끌어안듯 팔 벌려 소리를 질렀고, 몇은 마지막 걸음을 옮겨놓고는 늦가을 기력을 다한 식물처럼 바위 위에 쓰러졌고, 또 몇은 남은 기운을 모아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다. 

"정말 여기가 해발 3750미터라고요?" (프린키티 라에 올라서)

푸른 하늘 끝에서부터 하얀 바람이 우리 몸 긴장한 근육들 사이사이로 불어왔다. 시원했다. 눈을 감아야 했다. 잘했다. 잘했어. 여기까지 참 잘 왔다. 히말라야 영봉들이 굽이굽이 물결치며 우리들을 그렇게 위로하는 듯했다. 


고개를 넘어서자 길은 줄곧 내리막이었다. 가파른 길을 벗어나자 예쁜 강을 따라 자작나무가 줄지어 선 넓은 길이 이어졌다. 길이 편해지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하며 걸었다. 얼굴들이 밝아졌다. 첫 고개를 무사히 넘어섰다는 자신감과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와 나란히 걷던 고등학교 2학년 철민이가 뜬금없이 다짐 하나를 이야기한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서툰 아이다.  


“학교에 돌아가면, 이제 급식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을 거예요.”

“그래? 멋진데~! 사진 찍어 보내라. 인증 샷!” 


히말라야를 걷다가 갑자기 학교급식이 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따위 개연성은 중요치 않다. 소중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유도 모른 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철민이의 인증 샷은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한 달쯤 되었을 때다. 제주도 집으로 편지 하나가 도착했는데, 철민이 어머니께서 보낸 편지였다. 철민이가 달라졌다고 하셨다. 아이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 한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온 것이다.)  

캠핑장이 있는 날라 마을 초입

날라 마을의 영문 입간판(NALLA)을 먼저 발견한 것도 철민이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행복하게도, 앞서 걸어갔던 요리사와 헬퍼들이 이미 텐트를 쳐놓았고 요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치킨 카레와 토마토 스튜와 라다크 정식 ‘달’. 그리고 김치! 당연히 아이들은 열광했다. 김치는 레의 껠라쉬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여행사 대표 가쵸를 통해 보내온 것이다. 그녀의 정체는 추후에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열광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깊은 산골마을 날라에도 작은 상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짝지어 상점으로 달려가 진열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던 탄산음료들을 사들였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수의 아이들은 텐트 속으로 파고든다. 나는 아직 기운이 남은 몇몇 아이들과 함께 계곡으로 산책을 나갔다. 완전한 어둠이 우리들을 삼켰다. 단지 계곡물소리만이 어둠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때,


“삼촌! 별똥별!”

“또, 또! 봤어요?”

핼퍼들이 땅을 파고 만든 화장실

별똥별이 하나, 둘, 그리고 셋. 떨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조용했다. 계곡물소리가 다른 모든 이야기를 삼킨 탓도 있겠으나, 아이들은 별똥별을 보며 말을 잊었다. 마음속에 소원을 새기는 걸까. 하나, 둘, 그리고 셋. 소원들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하나. 고산병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하도록, 둘. 라다크에서의 이 시간만이라도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셋. 그렇게 완전한 어둠 속으로 우리들의 소원들을 던져두고 텐트 불빛 속으로 돌아왔다.     


“(캠핑장에) 도착하고 시냇가에서 머리를 감았다. 아, 정신이 맑아지는 이 기분은 와~~. 얼음? 물? 구별이 안 간다. 밥에 김치가 나와서 힘이 불쑥! 이제는 내가 에베레스트도 정복할 수 있겠다. 오늘은 모두 다 괜찮은지 일기 쓰는데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 특히 유진이 누나!”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산소가 정말 부족했다. 캠핑장에 간신히 도착했다. 밥을 맛없게 먹고 나서, 배가 아파 강가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아 바로 잤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문중)      


“난 초반 평지에서 분노의 걷기를 선보였다. 가이드인 지미와 정다웁게 이야기하며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르막이 나오자 죽을 것 같은 거였다. 그리하여 선두에서 꼴찌가 된 한 방 인생을 맛보게 되었는데, 진짜로 힘들었다. 그때 정호가 “삼촌이 누나 챙기래.”라면서 왔다. 오르막을 가면서 박정호 이 아름다운 녀석은 “아 누나, 쉬면은 더 힘들어. 빨리 가, 빨리!” “누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가고 있잖아.” 라며 우리 언니보다 심한 잔소리를 연타로 날렸다. (중략)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서 박정호가 “누나, 나 아니었음 지금도 산에 있어.”라고 말했는데,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정호야~!”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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