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라마유르 트래킹 마지막 날
어둠 속에서 별빛은 주연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별빛 또한 조연일 뿐, 어둠이 스스로 그 푸르고도 완벽함을 내세워 주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어둠을 망토 삼아 여행학교 아이들이 하나둘 식당 텐트로 모여든다. 그날 밤 우리들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트래킹 코스 수정. 또 하나의 해발 5000미터 고개를 넘어가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던 코스를 계곡을 따라 에둘러가는 길로 수정하자는 제안을, 지미와 의논하여 내놓았다.
진실과 몇몇 아이들의 상태를 고려한 제안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지난 3일 동안 죽을 것처럼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모두가 잘 왔고 그 결과로 이처럼 아름다운 자리에 서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 명씩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찬성 또는 반대, 혹은 의견 유보. 예인, 아라, 민아가 반대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동의했다.
결정이 내려졌다. 반대를 했건 동의를 했건 아이들은 결정과 함께 벼락같이 닥쳐오는 아쉬움의 무게에 눌려 말을 잃는다. 텐트 바닥을 응시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이들이 뱉어내는 길고 짧은 한숨들이 식당 텐트를 보랏빛 풍선마냥 뿌옇게 채운다.
길의 속성이 그렇다. 앞으로의 길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걸어온 길을 돌아서려 할 때는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마저 모두 부정되는 것처럼 아프다. 가지 못할 길을 향한 미련이 가슴을 송곳처럼 파고든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될 때도 있다. 여행이란 가끔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를 남기는 일임을.
우리들은 이미 충분히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시간들 위에 서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우리가 함께 하늘 가까운 이곳까지 여행을 떠나온 것도, 고산병을 등에 업고 트래킹을 시작한 것도, 비틀거리면서 사흘째 길 위에 함께 서있는 것도 어쩌면 다 기적 같은 일이니까.
다음날 아침 우리 모두는 트래킹을 떠나 처음으로 느지막이 일어났다. 오늘은 반나절 정도만 걸으면 된다는 지미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히말라야의 아침이 여유롭다. 요리사 제왕이 만들어준 ‘짜이’를 마시며 설산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서서히 거둬들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곤 각자의 방식대로 어슬렁거린다. 나는 문중을 불러 세워 그가 가져온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기로 히말라야 캠핑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긴다. 민아와 아라는 아침부터 부지런 떨며 당나귀를 따라 캠핑장 끝과 끝을 탐방하고 있다. 예인은 지미와 바위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할 시간. 예상과는 달리 길이 편안하지가 않다. 지미의 설명에 따르면 날씨가 따뜻하여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계곡물이 많이 불었단다. 그리하여 오늘 트래킹도 결국 탐험이 되고 만다. 물이 점점 불어나면서 길이 사라져 버렸고, 우리들은 사라져 버린 길을 찾아내거나, 빨라진 물살을 견디며 계곡을 건너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길 자체도 위태로웠다. 수묵화에서 한 붓으로 휘익 긋기만 한 것 같은 풍경 속 길들이 흘러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다시 이어졌다. 짜릿하면서도 섬뜩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뜻이다. 내가 오래도록 상상해왔던 라다크의 풍경들이 거기에 있었다.
길이 좁아서 헛디뎌 넘어질까 무서웠다. 특히 잠이 와서 졸면서 걸었을 때는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길을 가다가 오른쪽을 딱 보면 정말 무섭다. 오늘도 남수랑 당나귀 몰이꾼을 따라 먼저 걸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와서 빨래를 했다. 집에서는 거의 손빨래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 와서 빨래가 점점 느는 것 같다. ^-^ 개울물을 한 10번 정도는 건넌 것 같다.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길이라서 길을 따라 걷는다는 말보다 우리가 직접 길을 만들어 걷는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민아)
히말라야의 풍경은 그냥 대충 찍어도 그림이다. 이 멋진 풍경에 사진기를 놓고 왔다니 너무 후회된다. 오전에 또 라다크 인들이 나보고 라다크 말로 이야기했다. 내가 라다크인처럼 생겼나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선두에서 당나귀 똥을 보며 걸어간다. 이제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이곳에서 지낼 날이 하루밖에 안 남았다. 다시 오고 싶지만 힘들어서 올 수 없는 곳. 올 수 있으면 다시 오고 싶다. 친구들이랑 부모님이랑.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캠핑장에 도착하기까지는 4시간이 더 필요했다. 캠핑장 옆으로는 우윳빛 계곡물이 빠르게 흘러가고 반대편으로는 ‘둥둥첸-라Dungdungchen-La’를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또 그 차가운 빙하 녹은 물에 뛰어들어 이른바 ‘빨래 놀이’를 하며 즐긴다.
그러더니 저녁시간도 되기 전에 다혜는 열이 나서 아프다고 누웠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준비’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게 앞자리를 내어준다. 부럽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은 그들 몫이고 열이 나고 아픈 녀석을 걱정하는 일은 나의 몫인 것은, 어쩌면 이번 여행 우리들의 운명인 듯.
그날 저녁 요리사 제왕은 뜻밖에도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하얀 크림 위에 ‘See You Again!’이라고 또렷이 적혀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 ‘Goodbye Cake’를 만들어 보았어요.”
순간 아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별을 준비해준 제왕의 마음도 그렇지만, 케이크 위 ‘See You Again!’이라는 기약 없는 글자들 때문이다. 이 라다크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들 중 누구라도 라다크로 돌아와 히말라야의 하늘과 길과 산과 계곡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대답 대신 케이크 위의 이별 글자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을 따라 흔들렸다.
우리들은 텐트 밖으로 나가 모닥불을 피웠다. 나뭇가지를 줍고 당나귀나 야크 똥을 주워 모았다. 잘 마른 똥에는 구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과 화력이 아주 그만이라는 것에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동안, 당나귀 몰이꾼들이 오랜 그들만의 방식으로 모닥불을 순식간에 피워 올렸다.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춤을 추었다. 모닥불 주위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남수가 단소를 연주하였다.
그 사이에 지미의 모자를 옆 사람에게 돌리다가 단소 소리가 멈출 때 모자를 가진 사람이 모닥불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아라의 ‘진도아리랑’이, 문중의 ‘남행열차’가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더욱 일렁이게 했다. 정호의 ‘나에게 넌, 너에게 난’이, 다혜의 ‘죽겠네’가, 철민의 ‘곰 세 마리’가, 그리고 진실의 소고춤과 제왕과 둔둑의 라다크 전통노래가 히말라야 밤하늘로 스며들었다. 별똥별이 꼬리를 길게 끌며 앞 산 너머로 떨어졌다.
이제 트래킹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하룻밤만 더 지내면 레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아쉽고 또 한편으로는 좋은 모양이었다. 히말라야에서의 낯설고 힘들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또 언제 누릴 수 있을까 싶어 아쉽고, 돈만 있다면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문명의 편리함이 눈앞에서 아른거려 설레는 것이리라.
늘 더 많이 ‘가지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이곳에서의 짧은 날들이 그들에게 어떤 추억이 될까. 배낭 속이든 마음속이든 채우기보다는 비워야만 길을 걷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더 쉬운, 이곳 히말라야에서의 순간의 삶들이 아이들의 인생에서 어떤 자리에 놓이게 될지는, 더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그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모닥불이 다 사그라졌다. 아이들은 텐트로 돌아가서도 쉬 잠들지 못하는 듯했다. 늦은 밤까지 아이들의 소곤거림이 계곡물소리를 등에 타고 어둠을 건너고 있었다.
다섯 째날 아침. 텐트를 걷어내고 그동안 함께 걸었던 모든 식구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결코 쉽지 않을 마지막 날 코스가 남아있었지만, 그날 아침 그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고도 아이들은 잠깐의 틈을 이용해 당나귀를 타고 논다. 당나귀와도 작별할 때가 되어간다.
당나귀를 몰 때에는 ‘쉬~!’하고 강하게 발음하면 먹던 것을 멈추고 움직인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예인)
그날 하루는 당나귀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힘겨움을 안겨준 날이었다. 잔스카르 강 상류는 하룻밤 사이에 물이 더 불어나 있었고, 그리하여 길의 많은 부분들이 물속에 잠겨 사라지고 없었다. 길을 만들고 계곡을 건너기 위해 라다크 친구들이 너무나 분투했다. 쓰러진 나무를 구해 다리를 만들면서 나아가야 했다.
결국 다혜가 사진기와 함께 얼음 같이 차가운 물에 빠지고 말았다. 당나귀들은 지고 가는 짐들이 물에 잠기면서 힘겨워했다. 예상한 시간의 곱절이 걸려 천신만고 끝에 계곡을 벗어났지만, 이제 지루한 흙길이 이어졌다. 곧 도착한다는 지미의 착한 거짓말도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했다.
아라가 갈비뼈 아래의 통증을 호소하고 대부분 아이들이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렀을 즈음 우리들은 트래킹의 마지막 마을 칠링 Chilling에 도착하였다. 끝났다. 드디어 우리들의 4박 5일 트래킹이 모두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조금 더 남아 있다. 당나귀와 당나귀 몰이꾼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나머지 트래킹 식구들과 함께 지프와 승합차에 나눠 타고 레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마치 고향집에라도 돌아온 것처럼 흥분했다.
“으아~ 깔끔한 침대!”
“우와~ 진짜! 수돗물도 콸콸 나와!”
평소 집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사용해왔을 것들로 인해 아이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들의 환호에는 편리함만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함께 묻어 있다. 그래서 고맙다. 그때 남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삼촌, 레 궁전이 저렇게 낮았어요?”
모두 함께 고개를 들어본다. 그랬다. 8일 전에는 레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 높아만 보였던 레 궁전이 동네 뒷산처럼 만만해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저곳에 올라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4박 5일 동안 절망하며 또는 희망하며 걸었던 히말라야의 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이 날은 헬퍼들이 영웅처럼 보였던 날이다. 도착하기까지 강을 5번은 건넜다. 강이 나오면 어디선가 나무를 가져와 다리를 만들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업어주고…. 그 고마움은 무엇에 비할 수가 없다. 헬퍼들을 보며 많이 배웠다. 함께 살아가는 법, 서로를 지켜주는 법, 재밌게 사는 법, 즐기며 지내는 법.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그들에게 제대로 배웅인사도 못했지만 그들에게 느낀 점과 고마운 마음은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중략) 숨이 가빠서 산소를 마시며 걸었던 트래킹이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땐 이 트래킹이 내게 산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은 반쪽 여행도 일상에 돌아갔을 때 산소가 되길 바라며, 모두들 건강히!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삼촌은 가끔 다음 여행학교 때는 이렇게 해야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나도 또 함께 여행을 오고 싶다. 드디어 레에 도착했다!!! 4박 5일 동안 히말라야 굽이굽이에서 뗏국물 줄줄 흐르던 우리가 나름 도시인 레에 오니 너무너무 기뻤다. 수돗물도 콸콸 나오지, 밥도 내가 골라 먹을 수 있지, 산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민아)
오늘 드디어 트래킹이 끝났다. 그 고된 4박 5일의 트래킹이 끝나고 레로 돌아왔다. 4박 5일 동안 내가 찾고 싶은 것을 찾았을까? 어떡하지? 이제 세상에 돌아간다. 슬프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이제는 철저해진다. 다시 가고 싶다. 히말라야여 안녕~. 길에서 8달 동안 트래킹을 한 대단한 사람을 만났다. 나도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돌아다닐 것이다. 이제 엄마가 보고 싶다. 아빠도 보고 싶다. 미웠던 형도 보고 싶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