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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Jan 06. 2022

협력의 문

그 문을 여는 단 한 가지 방법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서 미쳐버릴 뻔한 시절이 있었다.


 발령을 받고 처음 출근하던 신규 시절의 나는 며칠 전까지 대학생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니 사실, 대학교 졸업식 전부터 출근을 했으므로, 대학생인 나와 교사인 내가 영화의 디졸브처럼 겹쳐진 날들이 있었다. 이 디졸브의 시기는 꽤나 혼란스럽고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학생의 입장에서 교사의 입장으로 바뀌는 지위의 전환은 굉장히 큰 벽처럼 다가왔다. 며칠 전만 해도 교수님 성대모사를 하며 낄낄대던 대학생은 몇십 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마주하는 담임교사인 해야 했다.


 이 혼란기에 나는 통과해야 할 관문들을 헤쳐나가느라 몸도 바빴고, 마음은 몸보다 더 바빴다. 모든 것이 부담스러운 신규 교사에게 가장 부담스러웠던 첫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학부모 상담이었다. 사실 학부모 상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교육대학교 재학 시절, 선배로부터 건너 들은 힘든 학부모 이야기들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나의 몇 달 안된 짧은 경력이 통째로 무시될까 봐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학부모 상담을 기다렸다. 피하고 싶었던 학부모 상담 날이 되었고, 나는 우리 반의 '사과'라는 학생의 어머님과 처음 통화를 하게 되었다.

 

 사과는 우리 반에서 재치를 담당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국어 시간에 글을 읽으라고 하면, 구연동화를 읽어주듯 모든 친구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친구들과 연극 활동을 하면 배우처럼 그 역할에 몰입하여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가끔은 양보할 줄도, 가끔은 져줄 줄도 아는 참으로 예쁜 학생이었다. 늘 밝디 밝은 사과를 보며 나의 첫 교직 생활이 즐거울 적도 많았다. 어리바리한 신규 교사의 나날에 미소가 베어 날 수 있었던 건 사과의 덕이 컸다. 그런 사과의 어머님과 나는 전화 상담을 하게 되었다. '뚜르르 뚜르르...' 전화 연결음이 가는 동안 가슴도 두근거렸다. 사과 어머님과의 상담은 좋은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사과가 요즘 먹는 재미에 빠졌다는 이야기, 사과가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 사과가 화장실에 자주 가는 습관까지 나는 사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한지 몇 분이 지났을까, 어머님께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 아이가 사실 1년 전에 왕따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밝디 밝은 사과가 왕따를 당했다니, 나는 믿을 수 없었다. 1년 전에 왕따를 당했던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학교에서 잘 지낼 수가 있는 건가? 혹시 나 모르게 지금도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작년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작년 사과의 담임 선생님은 다른 지역으로 가버린 상황이었다. 나는 사과가 왕따를 당한 이야기를 어머님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좋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늘 우리 사과가 잘 지내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사과의 어머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어머님의 먹먹한 말씀에 답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내가 관찰한 '사실'들 뿐이었다. 나는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에 당황스러웠지만, 차근차근 내가 몇 달 동안 관찰한 것들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쉬는 시간에 사과의 주변에 모여드는 친구들, 사과와 짝이 되지 못했다고 울었던 친구, 열심히 모둠 활동에 참여하는 사과의 모습, 사과의 명랑함에 반 친구들이 깔깔대며 웃었던 날들을 모두 말씀드렸다. 그러자, 사과의 어머님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하셨다. "우리 아이가 이제는 학교 가는 게 즐겁대요.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랬다. 사과는 교사인 내가 보아도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였다. 학교 가는 게 즐겁다는 그 이야기를 듣기까지 어머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어머님의 조마조마한 그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사과는 개성이 뚜렷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 개성이 다른 친구들에게 해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아이들 사이 묻어둔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지금은 그 위기를 뛰어넘고 서로를 위해 한 뼘씩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보다 몇 달 어린 그 시절, 아이들은 개성이 뚜렷한 사과를 어색해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쩌면 아이들은 나날이 커가면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사과에게 참 창의적이고 재미있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사과의 친구들도 이제는 사과를 그렇게 여기는 듯했다. 사실 교사인 나의 눈에는 모두 사과다. 예쁜 사과들이 모여 있는 우리 반에는 빨간색 사과도 있고, 초록색 사과도 있고, 노란색 사과도 있다. 그리고 보라색 사과도 있다. 어떤 색이든 모두 자신이 예쁜 사과임을, 우리 사과들이 조금씩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과 어머님과의 상담 이후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사실 학부모 상담이 부담스러웠고, 지금도 조금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어려운 사이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머님을 통해 사과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나를 통해 사과의 상처가 치유의 과정에 있음을 알게 되셨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통과했던 첫 번째 관문, 학부모 상담은 바로 긴밀한 협력의 문이었음을 교직에 들어서며 느끼게 되었다.



Epilogue.

사과는 다음 해에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특유의 독특함으로 반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마스코트가 된 사과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복도를 누비며 나를 만나면 힘차게 인사했다.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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