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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 그리고 7퍼센트 용액

by 드루리

난 셜록홈즈의 열렬한 팬이지만 작가 코난 도일이 동시대의 여타작가들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례로 홈즈시리즈의 걸작으로 일컫는 '바스커빌가의 개'라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홈즈와 왓슨이 아닌 포와로와 헤이스팅즈였다면 이는 크리스티의 능력이 희미해진 범작수준으로밖에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코난 도일이 운을 타고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추리작가들이 골머리를 앓았을 기발한 사건구성과 트릭생성에 있어 그는 논외의 작가였다. 홈즈시리즈에는 사건에 꼬리를 무는 연쇄적인 과정도 없고 미궁에 빠져드는 조작적 행위도 발견할 수가 없다. 홈즈시리즈의 열렬한 팬이라면 누구나 사건의 소재를 제공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코난 도일 스스로 애착을 가지지 못한 캐릭터에 이렇게 수많은 팬들이 열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천운을 타고난 작가라 하겠다. 실제로 그는 홈즈시리즈를 연재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사건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소설도 코난도일 본인이 쓴 작품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난 홈즈시리즈의 가장 큰 성공비결은 캐릭터 자체에 있다고 본다. 비단 추리소설에만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각종 소설,영화작품을 총망라해서도 셜록홈즈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은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셜록 홈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그 누구보다 당당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득찬 사람, 남을 존중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배려할 줄 아는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발한 추리력.. 코난 도일이 소설을 쓰는데 있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은 바로 홈즈의 추리방법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추리과정에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 적진 않지만 그 무엇보다 합리적인 논리를 갖추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홈즈의 둘도 없는 친구 왓슨도 마찬가지다. 홈즈와 오랜시간을 같이 하며 차츰씩 자신도 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이 평범한 캐릭터는 독자 스스로를 이입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적 캐릭터이다.


이렇듯 홈즈시리즈의 매력은 캐릭터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그닥 많지 않은 시리즈 분량때문에 그 아쉬움이 큰 탓인지 수많은 홈즈패스티시(파스티쉬)가 한국에서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패스티시에선 원작에 흡사한 홈즈의 모습을 발견하기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소설자체를 캐럭터중심이 아닌 사건중심으로만 서술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패스티시물.. 특히 그것이 장편소설이라면, 많은 작가들이 기발한 사건구성과 전개과정에만 중점을 두려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그런 사건중심의 소설들이 원작시리즈보다 더 뛰어날런지 모른다. 그러나 홈즈와 왓슨이란 인물이 가지는 캐릭터 중요성을 배제한다면 원작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다수의 패스티시물에 실망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영화속 셜록홈즈도 큰 맥락에선 패스티시물이라 생각한다면 원작팬들이 영화에 실망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로 설명이 될 것이다.)


홈즈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홈즈와 왓슨이 떨어져 살았던 시기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가? 홈즈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러한 캐럭터중심의 시각에서 주요소재를 찾아내야만 한다. 원작본연의 특성을 간과한다면 패스티시의 존재가치는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중심의 시각에 가장 부합해 나름 만족스러운 면을 보여주는 패스티시 소설이 바로 '7퍼센트 용액'이다. 나는 홈즈가 코카인중독자라는 것을 홈즈시리즈를 읽고 나서도 십수년이 지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마약중독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홈즈라는 캐릭터에 매료되고 난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을테지'하고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시각에서 접근한 소설이다.


홈즈 패스티시의 최고걸작이라 일컫는 '7퍼센트 용액'은 홈즈와 왓슨이란 캐릭터의 인간적인 모습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수의 셜록홈즈원작팬들은 셜록의 과거사와 모리어티교수와의 관계, 그리고 왓슨과의 둘도 없는 우정을 통한 캐릭터중심의 소설에 충분히 매료되었을 것이다. 장편물이 되기 위해 나름 긴박감 넘치는 액션신을 수록하고 있는 이원적인 후반부의 사건해결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난 이 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 홈즈와 왓슨, 캐릭터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실존인물인 프로이트박사와의 만남을 중요한 설정으로 부곽시킨점도 그런 캐릭터중심의 사건전개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함이었다.


물론 셜록홈즈가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등의 작가들이 풀어놓는 방대한 사건중심의 장편소설속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코난 도일이 그들만큼이나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좀 더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홈즈와 왓슨의 인물적 특성이 다분히 반영된 기발한 사건의 소설들을.. 여전히 기다린다. 그것이 패스티시 작가들이 지금도 셜록키언을 자처하며 글쓰기에 몰두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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