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다작을 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에도 이런 다작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낮은 소설들도 존재한 이유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엘러리 퀸의 후기 작품(사촌형제가 직접 쓴 작품들은 아니지만..)들도 그 작품성에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반 다인은 총 12편이란 그리 많지 않은 작품들을 썼으면서도 '한 명의 탐정을 주인공으로 같은 형식의 소설을 쓰기엔 그 12편도 상당히 많은 작품이다.' 라고 회고했다.(실제로도 후기 작품들은 혹평을 받았다.) 출간된 권수로만 따지면 총 9권인 셜록홈스 시리즈도 '사건'에 수록된 소설들의 완성도는 상당히 낮게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추리작가들도 인간이기에 그들의 작품들에서 한결같은 완성도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글이 잘 써지는 시기가 있으면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는 법이다. 대개 명작으로 분류되어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몰려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통념이 적용이 되지 않는 유일한 추리작가가 있으니 바로 '조르주 심농'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출간한 소설의 권수는 250권이 훌쩍 넘어가며 작품수로만 따지면 400여 작품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메그레 반장'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을 100여 편이나 출간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많은 작가들이 흔히 경험했던 다작으로 인한 작품성의 결함을 그의 소설들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조르주 심농은 추리작가라는 지위에서 문학적으로 찬사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소위 대문호라 불리는 '앙드레 지드','알베르 까뮈','어네스트 헤밍웨이'등은 그의 소설들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그들이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메그레 반장' 등장 작품에 극찬을 한 것은 아니다. 조르주 심농은 '메그레 반장'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연재하는 와중에도 추리문학과의 경계선에 있는 다수의 순수문학을 써 나갔는데 찬사를 받은 작품들은 주로 이런 작품들이었다. 실제로 그가 여러 번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도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추리소설과 순수문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조르주 심농이 쓴 순수문학의 주요 소재 역시 범죄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굳이 추리소설과 순수문학으로 구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나는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몇 편의 소설 외엔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짧은 나의 소견으로만 한정 지어 본다면, 그 둘을 구분 지을 명확한 기준은 없다. '조르주 심농'의 소설을 추리소설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확연히 범죄현상이 등장하지 않는 일부의 소설들을 제외하곤 단순히 '메그레 반장'이 등장하는가 아닌가로 구분된다. 만약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메그레 반장'이 등장하는 다수의 소설들도 추리소설로 규정짓지 말아야 한다. (사실 추리소설이란 용어 자체도 잘못된 말이다. 외국에선 일부의 탐정소설까지 포함해 통칭해서 '미스터리 소설' 혹은 '범죄소설' 일 뿐이다.)
중학교 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은 적이 있다. 추리소설의 유형과 상당히 흡사해서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데.. 실제 카뮈는 조르주 심농의 소설에 많은 영향을 받고 '이방인'을 집필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방인'을 추리소설이라 부르지 않는다. 주인공인 '뫼르소' 가 살인을 행하고 수사관이 '나' 를 심문하는 수사과정이 이어지는데 말이다. 추리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수사자의 관점이 아니라 범죄를 행한 '나'의 관점에서 소설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결국 탐정 격이 행하는 사건 해결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죄를 행한 '나'의 심리상태가 더 중요했던 셈이다.
'메그레 반장'이 등장하는 다수의 작품에 이런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메그레 반장의 시각과는 별개로 범죄자의 행위가 독자에게 공개된다. 범인은 '왜 그런 범죄를 일으켰던 것인가?', 나아가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메그레 반장은 범죄자의 인생관에 중점을 둔다. 이런 수사자와 범죄자 쌍방의 교감은 '메그레 반장' 시리즈의 주요 특징이다. 표면적인 사건 해결 과정에 중점을 두지 않고 왜?라는 '까닭'에 함께 접근해 보자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문학성'의 큰 줄기이다. 따라서 수사과정에 초점을 두는 '반전' 중심의 유수의 추리소설에서는 이런 문학성을 기대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추리소설의 가장 큰 묘미인 '반전의 쾌감' 을 격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발한 반전과 뒷통수치는 카타르시스가 선사하는 문학성이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인가? 추리적 기법이 다양한 장르의 형태로 결합되고 있는 지금, '문학성'과는 한 발 더 멀어지고, 독자들에겐 두 걸음 더 다가가고 있는 추리소설의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