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추리소설뿐 아니라 모든 소설에 있어 제목은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소설 또한 첫인상이 상당히 중요할 텐데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제목이기 때문이다.(같은 이유로 책 표지 역시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소설 제목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제목이란.. 무조건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 다른 건 다 무시해도 좋다. 제목으로 내용을 설명한다거나 교훈을 주고 싶다거나 하는 등등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소설의 내용과 반하지만 않는다면 관련 범위 안에서 상당히 뜬금없는 제목이더라도 상관이 없다. 지극히 기본적인 암시만 있으면 된다. 따라서 소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제목일 것이다. 제목으로 대중의 시선과 내용 전달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대중의 시선이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십수 년간 추리소설을 읽고 권하면서 그 제목 하나가 무엇이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관심과 선입관을 가져다주는지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소설 장르가 추리물이라면 이런 나의 생각은 좀 더 확고해진다. 추리물을 읽는 첫 번째 필수조건은 얼마나 내 흥미를 자극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첫 번째 요소가 바로 제목이지 않던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많은 고전 추리작가들의 의견은 나의 이런 생각과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고전 추리물을 들여다 보면 ~살인사건(~murder), ~사건(~case,~affairs), ~비극(~tragedy), ~비밀(~mystery)등등이 제목의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리즈물의 소설이라 할지라도 독창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자극하지만, 고전 추리물, 특히 다수의 본격 추리물은 이런 일반화된 유형의 제목이 상당히 많았다. 아무래도 소설 외적인 요소보다는 내용에 중점을 둔 탓이 아니었을까?
이 때문에 지금의 젊은 독자들에게 고전 추리물은 그 내용의 진부함이 아니라 제목의 진부함에서 오는 거부감이 문젯거리가 될 것이다. 같은 내용의 소설이더라도 제목의 표현 하나만으로도 독자의 시선을 끄는데 얼마나 큰 차이를 느끼게 되는가.
내 생각에 참 잘 지은 추리소설의 제목 중 하나는 바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다. 이 소설의 영국판 제목, 그러니까 원제는 잘 알다시피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다. 그러나 미국판에서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제목으로 다 출간이 되었는데 현재는 후자의 제목만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제목부터가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말부에 가서야 소설 제목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테니 이 얼마나 절묘한 제목인가.
한국 소설계에서 첫 작품으로 유례없는 판매고를 올렸던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원제는 '플루토늄의 행방'이었다. 전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던 이 소설이 재출간이 되면서 제목의 변경이 있었는데, 이 바뀐 제목이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상당한 일조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건 소품(?)이 인디언 인형이라고 해서, 이집트 십자가 형상이 등장한다 해서 굳이 그 제목을 따라 지을 필요는 없다. 특정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그 지역의 이름을 따르며, 살해 도구가 무엇이냐에 따라 제목이 좌지우지 된다면 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제목인가? 벤슨이 살해되었다고 벤슨살인사건이라 하고 애크로이드가 살해되었다고 애크로이드살인사건이라 한다면 멋드러진 제목에 눈길을 돌리는 독자들의 욕구를 외면하는 셈일 테니... 고전 추리물 ‘Y의 비극‘ 이, 또 ’ 노란방의 비밀‘ 이 최근의 독자들 입맛에 맞는 독창적인 제목의 소설이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게 읽히지 않았을까?
뭐든지 외형이 중요시되고 첫인상이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이다. 간결하지 못하다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꺼려서는 안 된다. 좀 복잡하더라도 좀 어렵더라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이 추리소설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