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채혈은 임상병리사의 일이나, 현실은 매일 새벽마다 간호사들의 환자 채혈로 병동의 하루가 시작된다.
간호사의 채혈은 병원에 하루 이상 입원해 본 환자였다면겪어봤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임상에서 간호사들이 실제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수없이 부당하다고 외쳐온 일들이지만 지금껏 병원 측(의사들)에서 묵인하고 강제하며 시행하도록 했던 일들의 결과가 간호법을 필요케 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입원해서 당연히 의사의 오더에 간호 행위를 시행하는 줄 알겠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 손으로 시작하여 간호사의 손에서 끝이 나고 있으며 의사들의 필요에 의해 간호사가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증 평가가 끝난 수많은 대학병원에서도 담당 의사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사하자마자 받는다. 시스템 자체가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 기다려도 소용없고, 거부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에서 오더는 수시로 변경되는 업무 중 하나로 간호사보다 귀한 인력인 의사가 일일이 오더를 변경하지 않는다. 가령 오더를 내는 의사가 있더라도 잘못된 오더를 수정하는 일 역시 당연히 간호사의 업무다. 오더의 완성은 역시 간호사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중소 병원에서는 담당 의사가 한 번도 자신이 오더를 내본 적이 없어서 외래 간호사나 병동 간호사에게 부탁하는 경우 꽤 흔한데, 이렇게 대리 처방에 관한 사실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일이 다반사라고 생각이 든다.
특히 병원이라는 환경은 굉장히 유동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실제 가장 기본적인 간호업무인 바이탈 업무 이외에 초음파나 심전도 같은 일을 간호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 같은 경우도 새로 입사한 병원에서 가장 먼저 일을 배우는 게 이런 의료 기구 사용법인데, 웬만한 간호사라면 심전도는 뚝딱 해낼 수 있는 이유가 이렇게 간호사 업무 이외의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T-튜브, L-튜브 삽입 등 모두 의사의 업무라고 설명하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 한 이후, 간호사들은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다.
분명 본인이 간호법을 제정하겠다고 한 일이지만 국민들의 혼란을 핑계로 거부권을 행사하여 10년 만에 드디어 법안이 통과되나 했는데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부결 후 폐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때에도 평소보다 업무가 2-3배 많아지고 수당이 따로 지급되지 않아도 묵묵히 일해오던 우리에게 이렇게 배신감을 안겨줄 수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일해온 대가가 이런 식이라면 정말 탈임상이 답인가 싶기도 한 요즘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간호법이라는 법안 제정으로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될 간호사와 환자의 권한을 되찾기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파업이 아니라 투쟁으로써 간호사 업무가 아닌 업무의 거부가 시작되었다. 면허도 반납하고 우리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고 있다지만 사실 많은 곳에서 해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소리 내서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