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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Apr 22. 2023

그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외국에서 살다가 보니 자주 겪는 상황 중에 이런 일이 있다.

전에 살던 동네에 이사를 가고 얼안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동네 놀이터에 갔는데  

한국어로 대화하는 우리를 보고서 동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우리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외국인이니까 당연히 못 알아듣겠지 생각을 하나보다.

(사실 우리는 태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다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들 어느 나라 사람이지? 무슨 말인지 보통 못 알아듣겠어”

“중국인이겠지”

“근데 중국어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나라 말이야?”

“저건 뭐야? 왜 저렇게 하는 거야?”

“중국인이니까 그렇겠지” 등등등..


아이들은 바로 우리 앞에서 우리에 대해서 이것저것 얘기를 해댄다.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놀다가 오곤 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내가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21살 그때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인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이 더 우수하고 좋은 나라라는 혼자만의 우월감과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쉽게 그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한 번은 후배와 함께 캠퍼스 안에 있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고쳤다.

그런데 직원이 많이 어린 여자였고 뭔가 어리바리하게 계속 실수를 했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후배에게 그 여직원의 행동을 계속 폄하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 여직원은 당연히 한국어로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몰랐겠지만

분명히 자기를 욕하고 있다는 것은 느꼈을 것 같다.

언어는 100%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표정, 몸짓, 태도로도 많은 부분 전달이 되니까.


그런 어리석은 행동들을 하다가 한 번은 된통 부끄러움을 당했다.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기차를 탔는데 4명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야 하는 구조였다.

나와 친구가 함께 앉았고 모르는 중국인 여학생 둘이 반대편에 앉았는데

그들은 휴대용 기계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한쪽 귀 씩 나눠 끼고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내 얘기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나는 또 앞에 있는 그들의 외모와 패션을 무시하며 친구와 얘기를 했다.

그야말로 앞담화를 마구 해버렸는데 잠시 뒤에 보니 그들은 조선족이었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지던지..


동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우리가 당연히 못 알아듣겠지 하고 생각하고서

우리 앞에서 우리 얘기를 해대는 것을 들으면서 그날의 나를 돌아본다.

상대편이 내 말을 알아듣든지 말든지 항상 그 사람에 대한 존중함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내 젊은 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들도 관대하게 바라봐 준다.

때로는 그 아이들 말에 갑자기 태국어로 답해 화들짝 놀라게 해주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본다.


몇 년 전 한국에 돌아갔을 때 콜센터에 전화를 할 때마다

전화를 받는 이 직원이 당신의 가족이라 생각하며 폭언을 삼가 달라는 메시지들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옛날엔 없던 안내다 보니..

근래 발생했던 콜센터 직원의 자살 사건들로 인해서 이런 안내가 필수사항이 되었나 보다.

뭔가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전화 연결된 직원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대하려고 노력했다.

상대가 눈에 보이든 아니든, 모르는 사람이든, 내 언어를 알아듣든 아니든..

 

그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우리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젊은 날의 나의 부끄러움을 되돌아보며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로 결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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