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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발 개복수술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서울 산부인과 방문기 1.  

by 손여름 Dec 31. 2024

서울에 있는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거대 자궁 근종을 개복이 아니라 복강경으로 성공한 이력을 갖고 있는 병원이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개복수술과 자궁 적출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 병원으로 찾아가서 자궁도 살리고 복강경으로 수술했다는 후기가 있었다. 전화로 진료 예약을 하려고 하니, 1월 말이 되어서나 가능하다고 한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하는 상황, 그때는 너무 늦다. 후기를 더 찾아보니, 일단 병원에 가서 기다리면 현장 접수를 통해 당일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본인도 지인에게 그 방법을 권유받아 당장 병원에 찾아가서 진료를 받았단다. 간호사에서 혹시 당일 현장 접수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일단 오란다. 병가를 내고 월요일에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언니와 동행했다.      


극 F인 나와 T 성향이 강한 언니는 서로 살가운 자매는 아니다. 사실 한 배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성격부터 취향까지 극과 극이라서 공감대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한 살 터울인 언니보다 아래로 세 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 더 끈끈하게 지냈다. 다정다감한 성격인 남동생과는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해도 끝이 없었지만, 언니와의 대화는 대부분 단답형으로 끝났다. 항상 조금씩 어긋나는 언니에게 섭섭함보다 고마움을 가지게 된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자 조카가 생긴 뒤였다. 언니는 아들 셋, 딸 한 명을 낳았다. 아들만 둘 있었던 언니는 딸이 갖고 싶어 가족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생긴 아이가 아들, 딸 쌍둥이였다. 그렇게 언니는 하루아침에 계획에도 없던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유별난 나의 조카 사랑도 시작되었다.      


사촌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조카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언니를 ‘~의 친엄마’라고 한단다. 동생은 그 말에 경악했는데, 사실 나는 처음 그 반응에, 나의 워딩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사촌 동생은 친절하게 ‘친엄마’라는 것은 ‘다른 엄마’가 있을 때나 하는 말이라며, 우리 조카는 엄마가 하나뿐이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줬다. 보통은 누구누구의 ‘친엄마’가 아니라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한다고.... 아마도 나는 조카의 친엄마는 언니지만, 가슴으로 낳은 엄마는 나라는 다소 뻔뻔한 생각을 해왔던 것이 틀림없다.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이 된 조카는 여전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세상 제일 귀한 보물이다. 나는 언니가 그 조카를 낳아줬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말없이 도와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돼 준다.   

  

병원으로 가는 지루한 여정, 동반자가 있어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 용산역에서 2인부터 시킬 수 있는 김치찌개를 주문해서 단단히 챙겨 먹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도 접수부터하고 간호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간호사는 내가 근종의 크기를 말하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재차 확인한다. 나는 혹여 누가 들을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그 크기를 말한다. 거대 근종 수술로 유명한 병원에서도, 내 크기가 남다르긴 한가보다. 


세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단다. 이번에는 한 층 올라가서 대기한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이 보인다.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큰 소리로 밝게 인사를 해 주신다. 언니에게 의사 선생님이 성격이 참 좋다고, 인사를 저렇게 밝게 해주니 환자들이 안심되겠다고 했다. 간간이 문밖까지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든다. 드디어 내 차례, 앞의 환자들처럼 밝은 분위기를 기대하며 나도 부러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그러나 기대했던 인사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곧바로 심각한 표정이 되어 나를 한번 보더니 ‘쓰읍’ 소리와 함께 진단서로 눈을 돌렸다. 나는 곧, 의사 선생님의 환대는 임신해서 온, 즉 좋은 소식을 배에 품고 온 환자 한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쁜 것, 그것도 엄청나게 큰것을 배에 담고 온 나는 다시 한번 죄인이 된다. 일단 초음파를 해 보자고 한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진료대에 앉았다. 초음파를 보는 내내 ‘쓰읍’, ‘허’, ‘하’, ‘이거... 이거...’ 하는 참담한 감탄사만 터져나온다. 거대 자궁 근종 수술의 조차도 혀를 차는 내 상태에 나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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