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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근종으로 기록 갱신한 여자

크기도 갯수도 10점 만점에 10점 

by 손여름 Jan 21. 2025

어떻게 사람 뱃속에 이렇게나 많은 근종이 다글다글 붙어있는 걸까?     


MRI 검사를 통해 본 복부는 가관이었다.      


하혈 후, 처음 찾은 산부인과에서 근종의 크기를 통보(?)받았을 때,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 대단한 크기에 한번 놀랐다. 사실, 검사 전부터 남산처럼 솟은 배를 보고 그 안에 든 근종 역시 클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크기가 남달라도 너무 남달랐다.     

 

의사 선생님은 단번에 개복수술과 자궁 적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절망감은 크기에 비례해 밀려들었다.      


몸 안에 어떤 장기를 떼어 내도 무섭지 않을까만, ‘자궁’은 모태가 아닌가. 여성의 정체성이자 미래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나의 선택이나 피치못할 상황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 내 몸속에 자궁을 드러내서 아이를 처음부터 낳을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근종에 대해서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러다가 거대 근종을 복강경으로 제거한 경력이 있는 서울 산부인과를 찾았다. 다른 곳과 달리 적출은 되도록 권하지 않는 병원이라고 했다. 희망을 품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당장 초음파로는 결정이 어렵다고 했고, 이에 다시 일정을 잡고 MRI 촬영을 먼저 했다.      


그 결과지를 들고, 다시 찾은 산부인과. 그러나 내 속에 든 근종은 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의사 선생님은 내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심각한 얼굴로 검사지에 시선 고정이다.  한 일자로 꾹 다문 입을 어렵게 뗀 선생님이 컴퓨터 화면을 돌려 보여준다. MRI로 찍은 내 자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각오는 했지만... 이럴수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배 한 가운데, 양 옆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근종이 꽉 차있고, 그 위쪽 양옆으로 작은 근종이 하나씩, 보너스처럼 붙어있다. 가운데 근종의 크기에 비해 작았으나, 그중 하나는 벌써 9cm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아래 알알이 박힌 검은 덩어리들.      


“이거 보이시죠? 이게 다 근종입니다.”     

 

마치 가운데 큰 근종 아래로 새끼를 친 듯, 작은 근종들이 줄줄이 들어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징그럽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일부러 작정하고 키운 것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근종이 자랄 수 있는 걸까?     

 

말로만 들었던 다발성 근종이었다. 그동안 근종의 독보적인 크기만 걱정했는데, 개수도 만만치 않았던 거다.  대체 내 뱃속에 어떤 것들이 이렇게 크고 많은 근종을 키워낸 것일까? 한탄인지 한심인지 모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근종의 유착 상태를 보여주면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도 복강경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MRI를 해보자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생각보다 심각한 근종의 실태를 본 충격때문인지 아니면 개복 수술을 피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인지, 아까부터 몸에서 열이 난다. 열로 붉게 달아오른 볼을 매만지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답변 대신 어디서 왔냐고 묻고는 지방이라고 하니, 여기는 복강경밖에 안 하니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서 개복수술을 받는 수밖에 없단다. 

  

결국, 반전은 없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개복수술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궁도 적출해야 하는 건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사진 속 자궁은 근종들로 꽉 차 있었기에 적출도 당연할 것만 같았다.  

    

“자궁 적출까지는 안 해도 됩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첫 진료를 받은 산부인과에서는 개복수술과 함께 자궁도 적출해야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개복수술로 결정 됐을 때, 자궁 적출도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었다. 그런데 MRI 결과 적출은 안 해도 된단다.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이 이어졌지만, 어렵기도 했고 일단 자궁을 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 다음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복 수술을 해도 아래 있는 작은 근종들까지 전부 깨끗하게 제거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도 수술하는 의사 선생님을 원망해선 안 됩니다.”     


쉬운 수술은 아니었다. 큰 근종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난이도가 있기에 아래 작은 근종들까지 깨끗하게 없애는 것 까지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빈혈이 다시 심해지고 있어서, 철분주사를 맞고 병원을 나섰다.      


이번에도 동행해준 언니와 간단히 주전부리를 사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으니,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 어두운 새벽녘에 집을 나서서 하루 온종일 두 개의 병원을 오가며 총 8천 보 넘게 걸었다. 


태어나 처음 MRI 기계에 들어갔고, 온몸이 뜨거워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경험을 하고서야 내가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다시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에 전화해 진료 예약을 잡고, 수술 날짜도 잡아야 한다.   

   

어느새, 기차 밖 풍경이 집을 나설 때만큼이나 컴컴해져 있다. 정말 긴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찾아본 개복수술 후기는 출산 후기만큼이나 어마무시하다.  


최악을 각오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지금 당장 자궁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이번에 근종으로 인한 하혈로 몇차례 병원을 오가고 각종 검사를 받는 동안, 내가 전에 없이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무서워하던 병원을 제발로 찾아 가고, 무서운 검사들을 차례로 받고, 검진 결과를 감당하는 일. 그리고 와중에 이만하길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일.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단단할지도 모를 나를 발견했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남아 있고, 아직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그렇지만, 어쩐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 


수술의 고통은 또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오늘은 다만 감사하며,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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