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9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냥.'이라는 어마무시한 말.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by 손여름 Feb 07. 2025

목장갑을 끼고 눈삽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주차장부터 마당을 종횡무진 오가며 길을 만든다. 정문 입구까지 삽으로 깨끗이 치우고 나면, 관람객이 오고 나갈 수 있는 동선이 완성된다. 요 며칠, 출근 후 오전 루틴이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열심히 길을 냈는데,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눈은 그칠 기미 없이 계속 쏟아졌다. 이런 날은 차를 타고 나갈 엄두도 안 난다. 점심을 시켜 먹고, 눈발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삽을 들었다. 에휴. 금세 원상 복구된 마당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전에는 관람객이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하다. 오늘 같은 날, 누가 이곳에 친히 발길을 하겠는가. 오후에도 관람객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으구, 지겨워’ 같은 소리를 내뱉으면서 길을 낸다. 신발 안까지 침투한 눈에 발이 시리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천장이 높고, 바닥은 나무로 된 사무실은 히터를 켜도 춥다. 처음에는 발이 너무 시려서 발 난로를 급하게 자비로 샀다. 그런데 키보드를 사용하려고 손을 책상에 올리면 손가락이 얼 정도였다. 사무실 안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도리까지 하고 있자니, 하루 종일 목이 뻣뻣했다. 나는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했는데, 주말에 당직을 서는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월요일에 출근하니, 전날 당직자가 설정해 둔 히터 온도가 30도였던 적도 있었다. 문제는 히터를 아무리 올려봤자 사무실 공기는 조금도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거다. 히터바람이 직접적으로 닿는 등짝만 추위를 면할 정도고, 손발이 꽁꽁 언다.   

  

팀장님이 급하게 오방 난로라도 들여놓으라고 해서, 문구점에 요청했다. 주문한 난로가 왔다고 해서 갔더니, 난로 크기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박스에도 떡하니 ‘미니’ 입체 난로라고 적혀있다. 당혹스러웠다. 사무실의 어마무시한 추위를 몰아내기에는 너무 쁘띠한 크기가 아닌가. 그러나 내가 요청해서 들여온 것이니, 반품하기도 뭐해서 그냥 들고 왔다. 일단 사무실로 들고 왔는데, 박스에서 꺼내 포장을 벗기니 실물은 한층 더 작다. 나는 저걸 켜, 말어?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런데 웬걸.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다섯 면에서 열을 방출하는 오방 난로의 위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사무실에 거짓말처럼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늘같이 눈바람이 몰아치는 혹한의 날씨에 사무실에서 겉옷을 벗고 목도리를 풀 수 있다니! 역시 장비 빨 만한 게 없다.    

  

잠깐 소강상태였던 눈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상태면 퇴근길에 차를 놓고 가야 할 것 같다. 혼자 어렵게 낸 길이 또 사라지게 생겼다. 오늘은 두 번이나 눈을 치웠는데, 그 고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차피 다시 쌓일 눈을 치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 어제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해 준 명상 관련 강연이 떠올랐다. 어차피 인생은 의미 따위 없으니 찾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의미도, 의미를 구하는 생각도 그만두고, ‘그냥’ 살란다.   

 

‘그냥.’ 살라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인간은 ‘의미’에 죽고 사는 종자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무릇 인간이라면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자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일 것이다. 죽어서라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은 살아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나이가 들면서 ‘그냥’이라는 말과 점차 멀어졌다. ‘그냥’이라는 말에는 특별한 이유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 부재한다. ‘그냥’의 세계는 무책임한 일방 소통이 횡행하는 세계다.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 받았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사랑도 함께 시작했듯, 이별도 쌍방의 합의와 수순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별 이유 없이, 그냥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무지막지한 말로 일단락 내는 이별 노래라니.... 그런 상대 앞에서는 누구라도 말문이 턱, 하고 막힐 것이다.      


그런데, 인생도 어차피 다른 이유나 의미 따위 없으니, ‘그냥’ 살라니.... 의미에 목을 매며 살던 나는 말문이 막힌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고 사는 것은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데, 그게 당최 무엇인지 어디에도 속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끝이 없는 미로를 헤매다 보면,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 까지 다다르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의미 찾기 끝에는 깊은 허무와 우울감이 찾아왔다. 가끔은 좌절이 분노가 됐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살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언젠가는 정답도 찾고,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이 많다고 꼭 신중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신 자주 심각해졌다. 그게 문제였다. 


인생과 그 의미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정답 같은 것은 없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의미 찾기야말로 무슨 소용인가?   

   

‘그냥’이라는 세계는 천진난만한 동시에 비정하다. 책임감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결핍됐다. 그래서 ‘그냥’이라는 말은 책임감이나 논리가 필요 없는 유아기나 어린이의 세계까지만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 말을 천대했다.     

 

♬ 뿡뿡이가 좋아요. 왜? 그냥, 그냥, 그냥 ♪ 조카들이 어릴 적 즐겨보던 방귀대장 뿡뿡이의 주제곡이다. 뭔가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 반대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 무수한 일이 그렇다는 것을 이제 인정한다. 진실은 언제나 뼈를 때리지만, 달콤한 거짓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눈이 차곡차곡, 착실히도 쌓인다. 그래. 눈이 오면 다시 쓸면 그만이고, 다시 쌓이면 또 쓸면 그만이다. 왜? ‘그냥, 그냥, 그냥’

작가의 이전글 오십일이 지나고, 모든게 달라졌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