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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Nov 18. 2020

한국 기업들의 바보짓

호칭으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함

기업들마다 지시와 복종이 우선시 되는 수직적 조직문화를 상하가 따로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수평형으로 바꾸려는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변화하고자 하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어떤 대상 하고도 24시간 초단위의 순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세상 속에서 기업들은 아직도 구시대의 군대식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조직을 유지하며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변화하고자 하는 그 방식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단계의 지시사항이 흐르는 체계를 그대로 놔두고 조직원들 간의 호칭만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직책 대신에 서로를 마이클이나 줄리엣 같은 영어 이름으로 부르게 하거나 홍길동 님 혹은 이영애 님처럼 이름 뒤에 직책 없이 '님'자를 붙이는 식입니다. 저도 직접 겪어 봤으나 전혀 의미가 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10살, 20살 많은 부장이나 임원을 그 면전에서 영어 이름으로 혹은'님'자를 붙여서 부르기는 우리 정서에 정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윗사람이나 나이 많은 선배들은 회사의 방침대로 아랫사람, 후배를 영어 이름이나 '님'자를 부쳐서 부르고, 반면에 아랫사람들이나 후배들은 아예 호칭을 생략해버리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살 위부터 시작하여 윗사람을 형이나 누나, 혹은 선배님으로 부르던 20여 년 간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은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호칭이 바뀐다고 본질이 바뀔까요? 어떤 호칭으로 부르든 간에 기업 조직 내 위계질서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과 대리가 과장과 차장에게, 과장과 차장이 부장에게, 부장이 임원에게, 임원이 최고 임원이나 사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업무 절차는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책임과 권한의 한계 설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업의 상황에서 호칭이 바뀐다고 업무 절차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호칭이 지시와 보고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보장해주지도 않습니다. 부장님이라고 부를 때와 마이클이라고 부를 때 부하직원 입장에서 회의 때나 회식 장소에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달라질까요? 부장님이든 마이클이든 연말에 자기를 평가하고 꼰대 짓을 하는 그 자연인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회사 방침을 핑계로 자기 얼굴을 빤히 보면서 새파랗게 젊은 직원이 자신을 놀리듯이 '홍길동 님'하면 상사 입장에서는 얄미워서 그 직원에 대한 불이익을 고민하지 않을까요?


맨 아랫단의 아이디어가 묻히지 않도록, 고충이 묵혀 썩어가지 않도록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데 그건 호칭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두려움 없이 피해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와 이를 뒷받침하는 편리한 IT 시스템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장님, 상무님이 아닌 아닌 마이클과 로버트에게 업무에 구박을 당하며 호칭에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생각나 몇 자 적어 봤습니다.

 

2020년 11월 18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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