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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비 Jun 05. 2024

노안이 낫다

Zoom In vs. Zoom Out

딸이랑 며칠 전 산책하다가 딸이 "엄마, Spanish 퀴즈 백점 받았어"라고 하길래 "엄마는 Spanish는 괜찮은데 Calculas 성적이 걱정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맨날 그 소리만 해. 그냥 Great job! 하면 안 돼? 잘한 걸 얘기하면 꼭 Calculas 얘기를 꺼내!" 하며 일갈을 가한다. 순간 말문이 막혀, "다른 건 다 잘하니까 Calculas만 잘하면 되니까 그러지.." 하며 얼버무렸다. 내가 그 얘기를 자주 하는 줄 몰랐는데 자주 하는 것도 미안했고, 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칭찬할 줄 모르고 꼭 못하는 것을 끄집어내어 지적하는 것도 미안했다.


그 순간, 한 주 전 티끌 하나 없이 청소해 놓은 집에 오셔서는 "다 괜찮은데 저기 저 나무는 왜 시들시들하냐.."라고 말하던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늘 신기할 정도로 뭔가 입 댈 것을 찾아 말하는 터라 들을 때마다 기분 상했는데, 딸한테 나도 똑같이 말하고 있음을 깨달으니 부끄러웠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보인다더니... 더 웃긴 건 내가 할 때는 '지극한 애정에서 나온 걱정'의 표현이고, 남이 할 때는 '심술궂은 마음'으로 느껴진다는 거. 결국 시어머니도 나쁜 마음에서 한 소리가 아닐 수 있을 터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은 서운하고 기분이 상한다. 딸도 그러할 테지...


숲이 아름다워도 가까이 가면 흙과 돌 투성이의 길과 계속 헤쳐야 할 덤불과 나무로 가득 차 있듯이,

호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까이서 보면 그 물속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다 보이듯이,

빛나는 사람도 가까이 보면 허점투성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잘 보이는 숱한 티끌들.

들보로 보이는 놀라운 마력.


안 그래도 노안이 와,

글을 읽으려면 자동적으로 고개가 뒤로 빠지는데

사람을 볼 때도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그 경이로운 인격체 전체에서 뿜어 나오는 눈부신 빛을 보려면,

그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빛나는지 보려면,

줌인이 아니라 줌아웃이 필요하다.


Such is the imperfect nature of man - such spots are there on the disk of the clearest planet; and eyes like Miss Scatcherd's can only see those minute defects, and are blind to the full brightness of the orb.

가장 깨끗한 행성이라 할지라도 그 표면에 반점이 있듯이 사람의 본성 또한 불완전하다. Scatcherd 부인과 같은 사람의 눈에는 오로지 이런 작은 결점들만 보일 뿐, 그 행성 전체가 발하는 찬란하고 온전한 빛에는 눈이 멀어 보지 못한다. (제인 에어 중에서)


*표지: 작년 가을 산행 중 찍은 딸 뒷모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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