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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an 27. 2021

"이제 어디 가서 샤브샤브 먹어봤다고 할 수 있겠네!"

엄마 아빠가 몇십 년 만에 처음 먹어본 음식

“샤브샤브는 어떻게 먹는 거야?”
“그냥 육수 만들어가지고 거기다가 먹고 싶은 야채랑 버섯 넣고 고기 얇은 거 넣어가지고 익자마자 후딱 건져내 가지고 먹는 거야. 근데 왜? 누가 샤브샤브 얘기했어?”
 
갑자기 아빠가 뜬금없이 샤브샤브를 얘기를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아빠가 전화로 큰고모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다가 큰고모가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었다고 해서 그게 뭔지 궁금해서 나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있는데 엄마가 아빠와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깜짝 놀라시며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셨다.
 
“어머, 오늘 알바 아줌마랑 얘기했는데, 아줌마도 샤브샤브 얘기하더라~아줌마네 가족은 반찬 해 먹기 귀찮아서 샤브샤브 해 먹는데~”
“엥? 반찬 해 먹기 귀찮으면 샤브샤브를 해 드신대?”
“그렇다더라~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해 먹는데~”
“일주일에 샤브샤브를 세 번이나 드신다고??”
 
샤브샤브를 그렇게 자주 해 드신다니. 너무 신기해서 안 물어보려야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엄마가 아줌마한테 나는 한 번도 샤브샤브 안 먹어 봤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자기네 버섯 많다고 우리도 해 먹으라고 내일 버섯 갖다 주신대~”
“엥? 엄마, 그럼 샤브샤브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아니~엄마는 샤브샤브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깐 버섯 가지고 그냥 비빔밥이나 해 먹으려고 했지~”




요즘에는 샤브샤브보다는 마라탕이 좀 더 유행이긴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샤브샤브만큼 인기가 좋은 음식은 없었다. 때 유행이었던 만큼 나도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샤브샤브 가게에 가서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샤브샤브를 풀코스로 먹었는데, 사실 샤브샤브 음식 자체만 봤을 때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맛이 평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너무 맛있어서 먹자마자 감동을 크게 받은 탓에 한동안 친구들 만날 장소를 정할 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항상 "샤브샤브 먹을까?"고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접해왔던 음식인데 엄마 아빠는 거의 나이 육십이 되시도록 한 번도 안 드셔 봤다니. 물론 우리 가족이 외식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장사가 끝나고 외식을 하러 나갈 때면 거의 9시가 다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보통은 "24시 감자탕" 집을 가거나 "고깃집"을 가곤 했고, 그렇게 항상 감자탕이나 고기만 먹다 보니 그냥 왠지 샤브샤브 처럼 평소에 접해볼 수 없는 생소한 음식은 엄마 아빠가 별로 안 좋아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센스 없는 내가 바보였다.


"그럼 우리 내일 아줌마가 버섯주시면 샤브샤브 해 먹을까?"

"우리 딸은 샤샤브 어떻게 하는 줄 알아?"

"나는 먹어봤으니깐 어떻게 하는지 알지. 대학교 때도 언니들이 몇 번 집에 초대해서 직접 초대해주고 나도 후배들한테 몇 번 해줬으니깐. 별거 없어. 그냥 야채 자르고 고기만 샤브샤브용으로 시키면 돼"

"우리 딸은 샤 벌써 먹어봤구나~아빠는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


그러고 나서는 아빠가 한마디 장난스레 한마디 덧붙이셨다.


"이제 어디 가서 아빠도 샤브샤브 먹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네~ㅋㅋ"

"ㅋㅋㅋ그럼 우리 해 먹고 나서 고모한테 아빠도 샤브샤브 먹었다고 자랑해 ㅋㅋㅋ"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내일 샤브샤브 먹을 준비를 하기 위해 실에서 옹기종기 앉아서 홈**스 인터넷 사이트를 킨 뒤 샤브샤브용 고기 1kg와 집에 부르스타가 없는 우리는 샤브샤브를 편하게 먹기 위해 위험할 수도 있는 부르스타 대신 인덕션을 하나 시켰다.




드디어 내일이 오고 샤브샤브 고기가 배달이 되었다. 아쉽게도 인덕션은 제때 배달이 되지 못해서 그냥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 앞에 의자를 놓고 먹기로 했다.


고기 외의 샤브샤브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온 가족이 주방에서 야채를 씻고, 썰고, 밀가루 반죽을 밀었다.

(왼) 우리가족이 준비한 샤브샤브 재료 / (우) 밀가루 반죽을 열심히 밀고 있는 아빠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대망의 샤브샤브를 입에 넣고 음미했다.


"어때? 맛있어?"

"오~아주 그냥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네~"

"맛있네~이런 걸 너는 너 혼자만 먹었던 거야?"


나는 괜히 민망해서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감자탕을 더 좋아하는지 알았지. 내일 인덕션 온다니깐 내일 또 먹으면 되지 ㅋㅋ 어차피 고기도 남겠구먼 ㅋㅋ"

 

비록 인덕션이 시간에 오지 않아서 다 같이 가스레인지 앞빙둘러앉은 뒤 조 불편하게 샤브샤브를 먹긴 했지만, 엄마 아빠는 그래도 즐거우신지 빨리 인덕션이 왔으면 좋겠다고 얼굴에 미소를 띠시면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나에겐 당연한 것들이 엄마 아빠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니. 내가 한없이 어렸을 적에는 엄마 아빠가 내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에게서 그 역할을 바통터치를 받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살날이 더 많이 남은 자식이 살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적은 부모님에게 지금부터 효도한다고 해도 한참 부족하겠지만, 나중에라도 할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나중에라도 부모님과 추억할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오늘도 부족하지만 노력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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