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대로 대답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여기 이 자리 앉으시면 돼요.”
내 직속 상사인 과장님께서 책상을 가리키며 알려주셨다. 내 책상 바로 앞에는 부장님 책상이, 내 바로 옆에는 과장님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내가 몇 년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출근을 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게다가 만으로는 20대의 마지막, 한국 나이로는 30대의 첫 시작을 회사에서 시작한다니 뭔가 의미 있어 보였다. 나보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조언을 해주었다. 바로 나대지 말고 주어진 일만 해야 인생이 덜 피곤해진다는 것. 친구들은 짧은 조언을 던진 후,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당부하였지만, 지금까지 계속 교실과 도서관 책상을 전전하며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회사에 생긴 나만의 책상에서 공부가 아닌 일을 한다는 건 스트레스보다는 두근대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 선배들의 말을 틀리지 않았던가.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일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니 아까까지만 해도 취업성공에 의한 두근거림은 혹시라도 일하다가 실수할까 봐 마음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으로 변화하였다. 실제로 재봤으면 아마 마라톤을 하고 있는 선수의 맥박과 동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도 좀 입력해줘요."
"이따가 전화해서 이것도 처리해줘요."
한꺼번에 일들이 휘몰아치니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신줄을 꼭 잡은 채로 첫날부터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하지만 차근차근 일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가고 있는데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장님, 과장님 집 주변에 별다방 있나요?”
과장님은 무미건조하게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묵묵히 할 일을 하셨고, 질문은 소멸되는 대신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혹시 집 주변에 별다방 있어요?”
질문을 듣자마자 든 생각은 친구들의 조언이었다. 어떤 일이든 절대 나대지 말 것. 왠지 아무래도 시장조사를 시키시려고 질문을 하신 것 같은데, 없다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집 주변에는 별다방이 분명 세 개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친구들의 조언을 따라 나대지 말고 없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양심에 따라 이실직고 할 것인지 망설여졌다. 망설임도 잠시, 나는 내 양심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저희 집 주변에는 별다방 세 개나 있습니다.”
부장님이 끄덕이시며 갑자기 폰을 꺼내셔서 무언가를 보내시더니 나보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심정으로 내 핸드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별다방 쿠폰”이 도착해있었다. 부장님께서 내가 핸드폰을 확인한 걸 보시면서 한마디 툭 던지셨다.
“나는 이런데 잘 안 가는데 유효기간이 다 되가지고.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이런 게 바로 츤데레의 정석 아니겠는가. 잠시나마 거짓말하려고 했기에 부장님께 괜히 죄송스러워졌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나의 양심적인 대답으로 인해 별다방 쿠폰을 얻을 수 있었고, 난 퇴근 후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최애 음료인 "시그니처 아이스 초코"와 각종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
항상 브런치에다가 "양심적으로 살자", "거짓말하지 말자",라고 다짐하고 적지만 창피하게도 막상 상황이 닥쳐오면 내 다짐대로 당연스럽게 행동하기보다는 한번 정도는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양심. 참 당연스러운 것인데, 혹시라도 모를 불이익을 당할까 봐 당연스럽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설사 그 상황에서 양심적으로 행동하여 불이익을 당할지언정, 결국엔 양심적인 게 이긴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는 것.
앞으로도 양심적으로 행동할까 말까 하는 고민하게 되는 상황은 언제나 올 것이다.
그때마다 결과가 어떨지 따져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뒤 재지 않고 당당히 양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