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파 Oct 27. 2024

집으로 가는 길, 나를 찾아서

민수가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익숙한 한글 간판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공항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 안내방송. 모든 것이 같아 보이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어서 오세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국심사대 직원의 말에 민수는 미소 지었다.

      

"네,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민수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낯선 울림을 느꼈다. 마치 오랜 시간 침묵하다 처음으로 말을 한 것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의 바람이 실려 있는 듯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오르자, 서울의 밤공기가 그를 반겼다. 민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숨결 속에 세계의 향기가 어우러져 있었다. 네온사인의 반짝임은 별빛처럼 빛났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은 강물처럼 흘렀다.

      

"많이 바뀌었나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요, 변한 건 저 자신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민수는 깊숙한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를 실감했다. 그의 눈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가슴은 더 넓어져 있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익숙한 공간이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작은 화분은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품은 듯했고, 책장의 책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지혜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집트의 영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에 멈췄다. 그는 지구본을 손으로 돌렸다. 그의 손끝이 대륙과 대양을 가로질렀다. 각 도시, 각 나라는 이제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민수의 영혼에 새겨진 이정표였다.

     

"나는 정말 놀라운 여행을 했구나."

      

민수는 중얼거렸다.

     

그때, 마치 지구본이 그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래, 넌 대단한 여행을 했어. 하지만 기억해. 가장 위대한 여행은 네 마음 안에서 일어났어."

      

민수는 미소 지었다. 그는 그동안의 여정을 되새겼다. 그의 여행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세계를 돌아 결국 자신만의 내면으로 돌아온 여정.

     

다음 날 아침, 민수는 일찍 일어나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이 세상의 모든 바다를 담고 있는 듯했고, 새들의 지저귐은 세계의 모든 언어를 노래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조차 우주의 율동처럼 들렸다.

공원 벤치에 앉아 민수는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도시들과 풍경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이 세계의 숨결로 숨 쉬고 있었다.

민수는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여행 중에 그가 적어둔 메모들이었다. 페이지를 펼치자 세계의 향기가 그를 감쌌다. 그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때로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견할 수 있어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중한 추억을 곱씹으며 그동안의 교훈을 되새겼다. 자신의 일상이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그때가 바로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을.      

그의 시선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진정한 예술은 영혼의 언어를 말하는 거예요."

      

민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모든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매 순간, 매 선택이 그의 영혼을 표현하는 붓질이 되기를. 그의 일상이 세계의 모든 색채를 담은 캔버스가 되기를.

     

민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벤치에 앉아 있는 자신. 이 모든 것이 영원의 한순간임을 깨달았다.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만나는 원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려 보았다. 그의 손에는 세계의 모든 흙과 바람과 물결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한 부분임을 느꼈다. 그의 심장 박동이 지구의 리듬과 하나가 되어 울리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서는 민수에게 새로운 의욕이 솟구쳤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계속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 하늘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별들이 그에게 윙크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자신이 우주임을 느꼈다. 그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별에서 왔다는 것을, 그가 곧 작은 우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원을 나서며 민수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일상을 새로운 모험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매일 아침을 새로운 시작으로, 매 식사를 감사의 의식으로, 매 순간을 영원의 한 조각으로, 매 호흡을 생명과의 교감으로, 매 선택을 지혜의 실천으로, 매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매 질문을 철학적 사유로, 매 명상을 내면과의 대화로, 매 꿈을 우주적 비전으로, 매 관계를 사랑의 실현으로, 매 고요를 깨달음의 순간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수는 자신이 변화했음을 느꼈다. 그의 걸음은 더 가벼워졌고, 그의 시선은 더 밝아졌다.

      

집에 도착한 민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신선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숨과 함께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민수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동시에 시작되었다. 나는 세계를 돌아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안다. 모든 길은 결국 내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을. 나의 진정한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민수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은 단순한 도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풍경이었다.

고층 빌딩들은 인간의 꿈과 야망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품 같았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의 혈류 같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채 자신만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체처럼 보였다.

민수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새롭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기념품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그는 각각의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정리를 마친 민수의 방은 이제 세계의 축소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념품 전시장이 아니었다. 그의 방은 이제 그가 얻은 지혜와 경험, 그리고 새로운 시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이제 그에게 새로운 모험의 장이 되었다. 매일 마주치는 낯선 얼굴들 속에서 그는 세계 각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여행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에서의 업무는 이제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과정이 되었다. 그는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케냐의 사바나를 달리던 순간을 떠올렸다. 인생은 마라톤이며,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퇴근 후의 시간은 그에게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종종 도시의 작은 공원을 찾아가 명상했다.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서도 티베트의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동네 도서관에서 철학책을 읽으며 그리스의 지혜를 되새겼다.


주말이면 민수는 자주 근교로 작은 여행을 떠났다. 더 이상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산책로에서도 아마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고, 한강 변에서도 이집트 나일강의 영원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인간관계도 변화했다. 이제 그는 모든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각각의 대화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깊이 경청하고, 더 진심을 담아 대화했다. 베니스에서 배운 사랑의 지혜를 일상의 관계 속에서 실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수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의 동료들은 그에게서 새로운 에너지와 지혜를 느꼈다. 친구들은 그와의 대화 후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더 성숙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민수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특별한 여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여정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민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는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오늘부터 하루하루를 새로운 여행의 시작으로 삼기로.

     

그는 일기장을 펴고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새로운 여행의 첫날이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여행이다."

      

민수는 펜을 내려놓고 미소 지었다.

      

그의 가슴 속 별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전 12화 회색빛 거리에서 만난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