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업적은 함께 일궈낸
작은 것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 빈센트 반 고흐
현대사회는 점점 더 파편화되어가고 있다. 마치 거대한 거울이 깨어져 수많은 조각으로 나뉜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작은 세계 속에 갇혀 살아간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며, 자신만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왜곡한다.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마치 나무가 땅과 공기, 물과 햇빛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도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의 교감,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양 근대철학이 상정한 '원자화된 개인'이라는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 추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의 관계 속에 있으며, 성장하면서 가족, 친구, 이웃, 사회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각자는 작은 정원과도 같다. 그러나 이 정원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생명력이 피어난다. 숲속의 나무들은 서로의 뿌리를 얽히게 하고, 영양분을 나누며, 함께 생태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더욱 풍요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이제는 개인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할 때다.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우주와도 대화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고유성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개성을 발견하고 실현할 수 있다.
관계를 통한 해방,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길이다. 개인주의의 감옥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할 때, 우리는 더 큰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새가 공기의 저항을 이용해 더 높이 날아오르듯, 우리도 관계라는 매개를 통해 더 큰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
진정한 자아실현은 결코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타인과 깊은 공감, 자연과의 교감, 우주와의 합일을 통해 더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존재 방식이며, 더불어 사는 삶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개인주의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단순히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민하고, 더 나아가 모든 존재와의 연결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자각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
결국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존재다. 고립된 개인이 아닌,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개인주의를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운명공동체의 삶이란
인간은 결코 고립된 섬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서 흘러가는 물방울과도 같은 존재다. 하이데거의 통찰은 이러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내-존재'로서 이미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마치 물고기가 물과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도 세계와 역사적 전통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지평 속에 '내던져진' 존재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리는 이미 주어진 언어를 사용하고, 특정한 전통 속에서 살아가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물려받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운명공동체를 이룰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실존적 상황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마치 나무가 자신을 키워준 땅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자신을 형성한 역사와 전통의 토대를 잊은 채 살아간다. 각자도생의 논리에 매몰되어 자신만의 이익과 성공을 좇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무자각의 상태를 '비본래적 실존'이라 비판한다.
운명공동체에 대한 자각은 시간성의 차원에서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전통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며,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는 마치 나무의 뿌리, 줄기, 그리고 새로 자라나는 가지가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것과 같다. 우리의 실존도 이처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연속성 속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를 현재에 더욱 충실하게 만든다. 과거의 전통을 망각하거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 오직 운명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운명공동체는 맹목적 집단주의나 극단적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개인의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한 토대가 된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깊은 차원의 자기 이해로 이끌며, 이를 통해 더욱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이중의 과제가 부여된다. 하나는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존이나 맹목적 혁신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창조적 계승을 의미한다.
결국 운명공동체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깊은 실존적 이해로 이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래적 실존'의 길이다.
우리는 이제 고립된 개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각자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책임을 지닌다. 이러한 자각과 실천을 통해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실존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맞잡고 걸어가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개인적 성취와 물질적 만족이라는 좁은 길목에서 방황한다. 이는 마치 넓은 바다를 두고 작은 웅덩이에서만 헤엄치는 것과 같다. 진정한 행복은 '함께함'이라는 더 넓은 지평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다. 마치 나무가 땅과 하늘, 바람과 비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도 타인과의 교감, 자연과의 소통, 우주와의 합일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이러한 '본래적 실존'을 망각한 채 개인의 울타리에 갇혀있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한 행복을 경험할 수 없다.
진정으로 행복한 이들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과 사랑을 나누고, 친구와 기쁨을 공유하며, 동료와 꿈을 나눈다. 때로는 낯선 이와의 만남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자연과 우주 만물과도 깊은 교감을 나눈다. 이러한 존재의 공명 속에서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거대한 생명의 연대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고립의 껍질을 벗고 나와 세상과 만날 때, 삶은 더욱 깊은 의미를 획득한다. 마치 바다의 물결이 서로를 감싸안으며 춤추듯이, 우리도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때 진정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타인과 교류하고 공감하는 일은 때로는 두렵고 힘든 도전이 될 수 있다.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 없이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차이를 존중할 때 우리는 더 풍부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웃과의 교감, 자연과의 교류는 우리의 존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사회적 관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적 연결성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결국 행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주변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는 개인주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더불어 삶'의 지평을 열어가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존의 길이며, 참된 행복으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