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오래된 버스의 좌석은 생각보다 딱딱했고,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울을 떠난 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어젯밤, 결국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보고 싶어.’
그 짧은 한 문장을 보내기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열 번도 넘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15년 만의 첫 연락이었다. 어떤 말이 그 시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답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주소 보낼게. 오고 싶으면 와.’
그게 전부였다.
주소를 확인해 보니, 처음 들어보는 경상북도의 작은 도시였다. 언니가 왜 그런 곳에 살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가는 중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버스 창밖으로 산과 들판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넓게 열린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논, 간간이 보이는 작은 마을들까지. 모든 것이 느렸다. 시간도, 풍경도, 버스의 속도마저도. 그 느림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열두 살이던 해였다. 언니는 그때 열일곱이었다. 그 이후, 집 안에서 언니의 이야기는 금기가 되었다. 부모님은 언니에 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나도 점점 언니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아니, 떠올리지 않는 척을 했다.
사실은 항상 궁금했다.
‘언니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도 시간이 흐르며 무뎌졌다. 일 년, 삼 년, 십 년이 지나자, 언니는 기억 저편으로 멀어졌다. 가끔 불쑥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언니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 여겼다.
몇 주 전, 우연히 SNS에서 언니의 계정을 발견했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건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용기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15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단 몇 문장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니가 떠난 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그 모든 걸 어떻게 말로 꺼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건, 언니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혹시 내가 언니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의 일부는 아니었을까.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어젯밤, 휴지통 속에 버려졌던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그리고 더는 그 말들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설령 언니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더라도, 나는 전해야 할 것이 있었다.
버스가 완전히 멈췄다. 창밖으로 스쳐 가던 풍경도 함께 멈춘 듯했다. 철컥—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조용히 내렸다. 나도 가방을 메고 터미널에 발을 내디뎠다. 대합실은 작고 조용했다. 주변 건물들은 오래되어 낡아 있었고, 간판의 색은 바래있었다.
서울의 매끈하고 분주한 풍경과는 달리, 이곳은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공기조차 달랐다. 더 맑고, 더 고요했다. 어디선가 오래된 기억 같은 냄새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터미널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미리 출력해 둔 주소를 기사님께 내밀었다. 그는 조용히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낯설었다. 높고 화려한 빌딩 대신 낮고 단정한 건물들이 이어졌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 대신 여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로는 널찍했고, 차들도 느긋하게 움직였다.
이 도시에선 시간의 밀도마저 다르게 설정된 것 같았다. 도시가 달라지면, 그 안에 사는 사람도, 말의 속도도,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기사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가족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족’이라 불러도 될까. 15년 동안 서로의 안부조차 몰랐던 사이인데. 하지만 그 질문에 어울릴 만한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 언니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기사님은 반가운 일이라며 웃었다.
“아, 좋으시겠네요. 오랜만에 만나시는 건가요?”
“…네, 좀 오래됐어요.”
짧은 대답 뒤로 침묵이 흘렀다. 대화는 거기서 멈췄지만, 멈춰 있던 내 안의 생각은 그제야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단지였다. 여러 동이 나란히 서 있었고, 그 아래로는 상가와 작은 정원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갑작스레 낯선 감정이 밀려왔다. 언니가 이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혼자일까. 아니면 가족이 생겼을까. 확신할 수 없는 질문들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렸다.
동 번호를 확인한 뒤,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가슴속의 심장 소리도 점점 더 빨라졌다. 정말로 언니를 만나게 되는 걸까. 어젯밤까지만 해도 확신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12층에서 멈췄고 문이 열리자,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새 아파트 특유의 페인트 냄새가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1203호’라는 숫자가 적힌 문패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 앞에 서 있는 내가, 어쩌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벨을 눌렀다.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흐른 뒤,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에 달린 작은 렌즈 너머로 언니가 나를 확인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갑자기 오늘 아침 옷장을 열고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격식을 차리면 어색할 것 같았고, 너무 편한 차림은 15년 만에 만남을 가볍게 만들 것만 같았다. 결국 평소 강연할 때 입던 베이지색 코트에 검은 셔츠를 걸쳤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마저도 어딘가 어정쩡했던 선택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리는 순간, 15년이라는 시간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언니는 여전히 언니였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열일곱 살 시절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겹치면서도 낯설었다. 마치 같은 곡을 다른 악기로 다시 연주한 듯한 인상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그런 얼굴.
언니의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왔고, 예전보다 살이 빠져 얼굴은 더 갸름해 보였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눈빛이었다. 오래전 그 반항적이고 날 선 시선은 사라지고, 대신 조용하고 잔잔한 눈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딘지 체념에 가까운 침묵이 언니의 표정을 감싸고 있었다.
“들어와.”
언니가 말했다. 목소리도 변해 있었다. 예전보다 낮고, 훨씬 조용해진 음성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레 현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발을 벗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가구는 단출했다. 거실로 들어서자, 벽면을 채운 큰 창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그 창 너머로는 멀리 산이 보였다.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언니가 이런 곳에서 매일 이 풍경을 바라보며 지낸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조용한 곳에서 혼자 사는 언니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물리적 거리는 불과 몇 발짝이었지만, 정서적인 거리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언니는 말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느렸다. 그리고 그 느림은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시간을 일부러 늘리려는 듯한, 침묵을 정리하는 여백 같기도 했다. 혹은,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시간을 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사이에 거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대부분이 소설이었다. 예전에 언니가 즐겨 읽던 책들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생소한 제목들이 많았고, 익숙한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사람의 취향도 바꿔놓는다는 걸, 이런 순간에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테이블 위에는 반쯤 읽다 만 책 한 권이 엎어져 있었고, 그 옆엔 커피잔 자국이 몇 개 찍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혼자 사는 사람의 흔적이었다.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생활감이 묻어나는 풍경. 언니가 혼자서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듯했다.
문득 벽을 올려다보았다.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가족사진도,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여행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깨끗한 흰 벽이 텅 빈 얼굴처럼 시선을 맞춰왔다. 오히려 그 공백이 더 쓸쓸해 보였다. 서울 집에는 찍어둔 사진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데, 언니의 집은 마치 기억 자체를 지우고 싶은 사람처럼 비어 있었다.
부엌 쪽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가 차를 우리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침묵이 불편하진 않았다. 어색할 법한 시간이었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있었다. 어차피 15년을 기다려 온 만남이었다. 몇 분쯤 더 기다리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언니가 찻잔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따뜻한 차향이 방 안에 조용히 번졌다. 카밀러였다. 예전 언니는 진한 홍차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이런 순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은 정말 변하는구나—그런 생각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오는 데 오래 걸렸지?”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 시간 정도요.”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예전에는 반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존댓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여기, 어때 보여?”
언니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용하고······ 좋아 보여요.”
“처음에는 너무 조용해서 잠이 안 왔어. 서울 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나 봐.”
언니도 한동안 서울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언제까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지냈는지—궁금한 것들이 줄지어 떠올랐지만, 쉽게 묻지 못했다.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타이밍은 여러 번 있었지만, 입을 떼는 일이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언니도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앞선 것과는 조금 달랐다. 뻣뻣했던 공간의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문득 언니의 손을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가늘어진 손이었다. 손톱은 짧게 잘려 있었고, 손가락 어디에도 반지는 없었다. 열일곱 살 때의 언니는 항상 은반지를 끼고 다녔었다. 거칠게 문질러도 빛나던, 약간 헐거운 듯하던 그 반지가 지금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사람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버리는구나—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은······ 뭐 하고 있어요?”
입을 떼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사적인 질문일지도 몰랐지만, 머릿속에서 적당한 화제를 찾지 못했다. 언니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번역일 해. 집에서.”
“어떤 번역이요?”
“소설들. 주로 일본 소설.”
그제야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 이해되었다. 언니가 직접 번역한 책들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는지,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더 이어가는 건 조심스러웠다.
잠시 망설이다,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혼자 살아요?”
“응.”
언니는 짧게 대답했다. 그 이상은 묻지 말라는 듯한 말투였다. 여전히 언니도 경계심을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은 우리를 서로에게 낯선 존재로 만들어버렸고,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했다. 그 낯선 거리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해가 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을 떠날 때는 분명 오후였는데, 어느새 저녁이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배고프지?”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차 안에서······ 좀 먹었어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속은 비어 있었다. 긴장한 탓에 차 안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었다.
“뭐 좀 시켜 먹을까? 여기 중국집 음식 괜찮아.”
언니의 제안이 고마웠다. 단지 식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만큼 더 머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듯 보이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방식 중 하나였다.
언니는 전화로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수화기 너머의 대화를 짧게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이 어쩐지 이상할 만큼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더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가 15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신기했다. 가늠할 수 없던 시간이 그 한 장면 안에 담겨 있었다.
“30분 정도 걸린대.”
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15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 꺼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침묵으로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언니는······ 언제부터 여기 살게 된 거예요?”
나는 가장 안전한 질문을 골랐다.
“작년부터. 그전에는 부산에 있었어.”
“부산에는 오래 있었어요?”
내 질문에 언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간결하게 대답했다.
“한 10년 정도?”
여전히 짧은 말이었다.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짧은 대답조차 나에겐 귀중하게 느껴졌다. 언니의 발자취를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서울은······ 언제 떠나신 거예요?”
이번엔 조금 더 용기를 내 물어보았다.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해 겨울이었나······ 기억이 잘 안 나.”
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뜻처럼 들렸다. 열일곱 살에 집을 떠났던 언니가 서울 어딘가에서 몇 년을 버티고, 결국 또 다른 도시로 떠났을 모습을 상상해 봤다. 어디서 잠을 자고, 무슨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을까. 그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나는 상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묻기에는 아직 이 거리가 너무 조심스러웠다. 아직은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들이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지내?”
언니가 물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가슴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부모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는 말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언니는 여전히 가족의 일부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지내세요. 아빠는 여전히 회사 다니시고, 엄마는 집에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고 있었다. 사실,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들도 나도, 서로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왔다. 안부 전화를 가끔 하고, 명절에 얼굴을 마주하고, 상처받을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건 일종의 생존법이었다. 언니가 떠난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는 법을 배워버렸다.
“내 이야기는 안 해?”
언니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분명했다. 언니는 아직도 가족으로 남고 싶어 했다.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있고 싶어 했다.
“가끔······ 언니를 생각하면서 우시기도 해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부모님은 언니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언니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고, 나는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그 진실을 말하기엔, 너무 잔인한 일처럼 느껴졌다.
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 말이 완전한 진심이 아니라는 걸, 어쩌면 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는 오히려 따뜻한 이해가 있었다. 진실을 감싸안아 주는 조용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15년을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서로의 삶에 깊이 닿지는 못했지만, 아주 멀리서 조용히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지 못했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가족이라는 마음만은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짜장면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사소한 말들조차 15년 만에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언니가 짜장면을 젓가락으로 비비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어린 시절이 조각처럼 떠올랐다. 함께 나란히 앉아 라면을 나눠 먹던 기억, 치킨을 두고 다퉜던 날, 눈이 내리던 겨울날의 포장마차까지. 그때와 지금 사이에 놓인 간격이 얼마나 컸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언니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지금은······ 무슨 일 해?”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막상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행복 전문가’라는 이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을 냈다는 것, 강연을 한다는 것,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이야기해 준다는 것—그 모든 일이 이 순간에는 유독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감정에 관한 책을 썼고······ 그걸로 강연도 해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요.”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했다. 말은 했지만, 내 안에서는 어색함이 떠나지 않았다. 언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는 건지, 내내 망설였다. 그런데 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래.”
그게 전부였다. 놀라지도 않았고, 대단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감탄도, 호기심도 없이 그저 조용히 들어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반응이 더 편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탄사로 반응하거나,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됐냐고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언니는 그런 반응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나를 더 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다 언니가 물었다.
“힘들지 않아?”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부러워하거나 축하해주기 마련인데, 언니는 나의 힘듦을 먼저 걱정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가끔은 힘들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데도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자 언니는 자세히 물었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그 질문을 들으니,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계속해야 하니까······ 늘 정답만 이야기해야 하고, 괜찮은 척해야 하고. 근데 그게 내 진심은 아닐 때가 많아. 누구도 그걸 묻지 않는데, 언니는······ 다르게 물어보네.”
말하면서 나 자신이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고백이었다. 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말이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을 때 느끼는 고단함—언니는 그 감정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거 알아. 나도 번역할 때 그래. 남의 말을 내 목소리로 옮기다 보면, 가끔은 내 목소리가 뭔지 헷갈릴 때가 있거든.”
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제야 언니의 일도 다르게 보였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언니도 나처럼 자신을 지워가며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그럴 땐······ 어떻게 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정답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언니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내는지 알고 싶었다.
“글쎄······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창밖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산 너머로 해가 완전히 지자, 하늘은 천천히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노을이었다. 건물들 사이로 잘려 보이던 하늘이, 여기선 넓고 깊었다. 문득, 이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이유가 충분한 것 같았다.
“혼자 사는 거, 외롭지 않아요?”
문득 그렇게 묻고 있었다. 감정이 새어나간 것처럼, 질문은 내 의지를 앞질렀다.
언니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외롭다고 생각할 틈이 없어.”
그 웃음이 마음에 걸렸다. 외롭다고 느낄 틈이 없다는 건,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애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에, 그 말의 무게를 알 것 같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전과 달랐다. 서로의 외로움을 조용히 인정한 뒤의 침묵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후의 고요함이었다.
창밖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자락 아래로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반짝이는 작은 등들이, 마치 우리가 잃어버렸던 시간을 조금씩 되돌려주는 것 같았다.
시계가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은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마지막 버스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15년을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이 몇 시간은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언니도 시계를 보더니 마지막 버스가 열한 시라고 알려주었다.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지만,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은 채로,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멈출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년의 공백을 하루 만에 메울 순 없었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메울 생각도 없었다. 그 시간을 굳이 채우기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맞는 일이었다. 언니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려 하지 않았고, 우리 사이의 침묵을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해는 완전히 지고, 산자락은 희미한 윤곽만 남아 있었다. 대신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의 밤과는 전혀 다른 조용함이었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언니가 차를 더 우리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사이 거실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여전히 단정했고, 절제된 공간이었다. 과거를 지우려는 흔적처럼도 보였고, 현재에 집중하려는 의지처럼도 보였다.
언니가 다시 차를 내왔다. 이번엔 페퍼민트였다.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찻잔을 들고 또다시 마주 앉았다. 문득 묻고 싶은 것이 하나 떠올랐다. 15년 동안, 언니는 나를 한 번이라도 떠올린 적이 있었을까. 가끔이라도 궁금해한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엔 아직 거리가 있었다. 대신,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말했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끔 안부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지금 당장은 자주 보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연락을 끊고 싶지도 않다고. 그 말에 마음이 놓였다. 무리하지 않는 관계. 서두르지 않는 속도. 그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열 시가 되었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언니가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거절했다. 택시를 부르면 되는 일이었고, 언니에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조심히 돌아가라는 말만 건넸다.
가방을 챙기며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15년 만에 언니를 만났다. 극적인 재회도, 감동적인 장면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담담하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서로를 마주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달라졌고, 완전히 같은 사람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라는 끈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니는 여전히 조용한 표정이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워 보였다. 15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거리감은 하루 만에 사라질 수 없겠지만, 그 거리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만은 아니라는 희망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언니가 매일 마주하고 있을 풍경, 조용한 밤, 멀리 깜빡이는 불빛들, 고요한 단지의 모습까지 서울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언니가 이런 곳에서 평화를 찾았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일 것이다.
택시에 몸을 맡긴 채 터미널로 향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만남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15년 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았고, 언니의 삶은 여전히 일부만 드러난 채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언니가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여행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 서울로 돌아가는 길,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오늘 하루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언니가 건넨 페퍼민트 티백 몇 개가 그것이 분명 현실이었음을 조용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건 언니와의 연결고리였다. 작지만, 소중한 증거였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건물들과 도로, 수많은 불빛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아마도 조용한 도시를 다녀온 탓일 것이다. 언니가 있는 그 도시는 나에게 어떤 풍경을 남겼고, 나는 그 풍경의 일부를 마음에 담아 돌아가고 있었다. 서울의 소음이 처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건 어쩌면, 내가 조금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