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 스케줄은 훨씬 더 촘촘해졌다. 하루에도 몇 건씩 인터뷰와 촬영이 이어졌고, 주말에도 강연이나 행사로 온전히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매니저는 쉬는 날 없이 새로운 제안을 들고 왔다. 드라마 OST 가사 작업, 화장품 광고 모델,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 제안까지. 이 모든 것은 '행복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게 쏟아진 기대였다.
그 바쁜 나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하루에도 쉼 없이 말을 쏟아냈지만, 대부분은 정해진 문장 속에서 흘러나온 대본 같았다. 때로는 정답만을 말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또 어떤 순간엔 연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말을 뱉고 나면, 오히려 더 지쳐 있었다.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에너지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몇 주 전, 우연히 SNS를 통해 알게 된 언니의 이메일 주소를 찾았다. 이름 옆에는 ‘이수’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주소를 입력해 놓고도 한참 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일 제목란에 “언니에게”라고 적고, 조심스럽게 본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니, 잘 지내고 있어? 나는……”
하지만 그다음 문장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라고 써야 할까,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어떤 말을 고르더라도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메일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썼다.
“언니, 나 요즘 너무 이상해.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데, 나는 정작 행복이 뭔지조차 잘 모르겠어. 매일 웃고 있지만, 웃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웃어야 하니까 웃는 거야.”
내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마저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를 언니가 듣고 싶어 할까. 듣는다 해도, 위로가 되긴 할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그 메일도 모두 지웠다.
다시 한 문장을 적었다. 아주 짧고 단순한 문장이었다.
“언니, 보고 싶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조차 쉬이 보내지 못했다. 혹시 언니가 답장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만약 답장이 온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수많은 생각이 내 손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그 메일도 결국 보내지 못한 채 임시 보관함에 저장해두었다가 끝내 삭제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스스로 눌러가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민준에게도 그랬다. 마지막 대화에서 “요즘 좀 힘들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힘내”가 아니었다.
“얼마나 힘든지 말해줘.”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혼자 버티지 말고, 나한테 털어놔도 돼.”
그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너무 무거워 보일까 두려웠고,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또,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말만을 골랐다. 그렇게 나는 늘, 가장 안전한 말만을 선택해 왔다.
도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관계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할 무렵,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괜찮아”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해.”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나는 그런 말들을 꺼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들이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 것 같았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것을 “괜찮아”라는 단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감정의 진실은 침묵 속에 파묻혔고,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관계는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은채에게도 그랬다.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믿었지만, 진짜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다.
“힘들어.”
“외로워.”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모든 게 가짜처럼 느껴져.”
이런 말들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막상 입을 열지 못했다. 은채가 걱정할 것 같았고,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은채가 ‘전문가답게’ 나를 분석하려 들 것 같았다. 그게 버거웠다. 위로를 기대하기보다는, 진단을 받을 것만 같은 부담감이 더 컸다. 그래서 늘 겉도는 이야기만 나눴다.
회사 동료들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조차 나는 진심 어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상황에 어울리는 말,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말,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말만을 골라 말했다. 그걸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진짜 내 목소리가 어떤 소리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노트북의 휴지통을 열었다. 그동안 삭제했던 수많은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업무와 관련된 문서들이었지만, 그 사이에 제목도 없는 텍스트 파일들이 몇 개 끼어 있었다. 언제 만든 건지조차 가물가물한, 존재감 없는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모두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었다. 그중에는 언니에게 썼던 편지도 있었다.
“언니, 나는 지금 스물일곱이야. 언니가 사라진 지 벌써 열다섯 해가 지났어. 그동안 나는 착한 딸이 되려고 정말 애썼어. 엄마가 언니 생각에 슬퍼하는 걸 더 이상 보지 않으려고 했거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 언니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 같아. 왜 나 혼자 남겨 두고 떠났는지, 왜 나만 모든 걸 감당해야 했는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쪽이 조용히 찔리는 듯했다. 이런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오래된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던 감정의 잔해가, 잊힌 파일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민준에게 썼던 편지도 있었다.
“민준아, 네가 ‘요즘 좀 힘들다’고 했을 때, 왜 나는 그냥 넘어갔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아. 너는 분명히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나는 듣지 않았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복잡한 이야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네 감정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었거든.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물어봤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고, 그마저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늦은 깨달음은 늘 고요하고, 그 고요함은 때때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휴지통을 훑다 몇 개의 파일을 더 발견했다. 제목조차 없이 저장된 메모들이었고, 그중 하나는 분명 도윤에게 썼던 편지였다.
“도윤아. 네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확인하는 게 두려워서, 그냥 모른 척했어. 네 거짓말에 속은 게 아니라, 내가 일부러 속아준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더 비겁하게 느껴지더라. 너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 편지를 읽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 피부 아래로 퍼져왔다. 감정을 애써 눌렀던 흔적들이, 타는 듯이 피어올랐다.
또 다른 메모에서는 은채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에게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담겨 있었다.
“은채야. 넌 내가 늘 괜찮은 사람이라 믿지? 나도 그렇게 보이려고 애썼어. 그런데 요즘은 나조차 나를 잘 모르겠어. 웃고 있는 건 연기였고, ‘괜찮아’라는 말은 그냥 습관이었어. 너한테 이 말, 꼭 하고 싶었어.”
글을 읽는 내내 손끝이 차가워졌다. 왜 그 말들을 꺼내지 못했을까. 왜 가장 친한 사람 앞에서도 나는 끝내, 나 자신일 수 없었을까.
심지어, 나 자신에게 쓴 편지도 있었다.
“이현아.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왜 이렇게 살고 있어? 남들은 너를 밝고 성실하대. 근데 너, 정작 행복이 뭔지 모르잖아. 이제 가면 좀 벗자. 숨 좀 쉬자. 진짜 너는 어디 있어?”
그 문장은 다른 어떤 편지보다도 날카로웠다.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인데도, 뼈에 사무쳤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았는지 생각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정답 같은 말’에 내 감정을 눌러왔는지 돌아보았다.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듯, 하나씩 파일을 더 열어보았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 아버지에게 쓴 편지, 회사 상사에게, 그리고 팔로워들에게 보내지 못했던 말들까지. 모두가 아프고, 불편하고, 복잡해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진심들이었다.
그 모든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가장 솔직했던 말들, 가장 절실했던 진심은 결국 전해지지 못한 채 휴지통 속에 버려졌다는 것을.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늘 비슷한 말이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웃고 있다고 말하고,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하는—포장된 문장들이었다. 다정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기만했던 문장들이었다.
그렇게 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누군가에게 듣기 좋은 말만 반복하다 보니, 결국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는 정작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조용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삭제되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천천히 닫았다. 방 안은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새벽 세 시의 도시 소음이 창밖에서 희미하게 스며들었지만, 그조차도 멀게만 느껴졌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이 침묵이었다. 진심을 담아 썼던 말들을 하나씩 지워버리고 나니, 남은 건 허공을 메우는 텅 빈 정적뿐이었다.
문득, 오늘 아침 방송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행복은 선택이에요. 매 순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하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던 그 문장에 진행자도, 관객도, 제작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그 장면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입은 움직였고, 목소리는 나왔으며, 표정도 만들어졌지만, 마음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감정 없는 인형처럼, 리모컨에 조종당하는 사람처럼—모든 것은 연기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와 진심을 주고받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감정을 담아 말을 건넸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된 꿈처럼, 흐릿하게만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상처받지 않을 말만 골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상처 주지 않을 말, 오해받지 않을 말, 문제를 만들지 않을 말들만 골라 쓰다 보니, 내 진짜 목소리는 점점 더 깊숙이 묻혔다. 마치 두꺼운 담요를 겹겹이 덮어씌운 것처럼, 진짜 소리는 더 이상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요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면 이상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 대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낯설게만 들렸다. 마치 누가 미리 녹음해 둔 문장을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기계적이었다.
특히 웃을 때,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웃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된 반응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농담을 하면 웃고,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분노할 상황에는 적당히 화내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은 피부 위를 스치듯 머물렀고, 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안에 텔레비전만 켜두고 나간 것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건, 그런 나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분명 어색했을 텐데,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오히려 진심을 말하려고 하면 입술이 먼저 굳는다. 거짓은 부드럽게 흘러나오는데, 진심은 목에서 막힌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 모든 반응과 가식들 밑에 진짜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니면 그것조차 착각이었던 걸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보았다. 피부가 차갑게 느껴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걸. 아니, 표정이라는 게 지금 내 얼굴에 남아 있기나 한 걸까. 모든 감정이 무표정이라는 막으로 덮여버린 것 같았다.
벽시계는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몇 시간 뒤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회의와 촬영, 인터뷰, 강연—하루치 일정이 이미 빽빽하게 예고되어 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해야 할 말들이 있고, 지어야 할 표정들이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다.
아침이 되면, 나는 다시 ‘행복 전문가 이현’이 되어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 웃고, 질문에 답하며,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네야 한다.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내게는 건넬 조언 하나 없었다. 이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잃어버린 목소리를 어떻게 되찾아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였다. 내 말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들은 내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의사가 정작 자기 병은 치료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나를 고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타인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언젠가는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