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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역설 08화

행복한 사람처럼 걷기

by 은파

민준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에 임했다. 회의에서는 더 적극적이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자진해서 참여했다. 동료들은 요즘 내가 활기가 넘친다고, 전보다 훨씬 의욕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 에너지가 아니라,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가만히 있으면 민준의 일이 불쑥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내 감정적 무감각함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을 피하려면,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감정 관리 강연 일정도 점점 많아졌다. 입소문을 타면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고, 나는 들어오는 요청을 빠짐없이 받아들였다. 주중에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주말에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한 달에 열 번이 넘는 강연이었다. 몸은 점점 지쳐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더 편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그 시간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강연의 내용도 점점 정교해졌다. 청중들의 반응을 보며 어떤 문장이 더 효과적인지, 어떤 표정이 더 설득력 있는지를 조금씩 터득해 나갔다. 마치 실험을 반복하며 공식이라도 찾아내는 것처럼, 청중의 감정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분석해 나갔다. 그런 내가 점점 더 가짜처럼 느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분명한 역할이 있었고, 명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강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이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덕분에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눈빛은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반응을 받을 때면 나는 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한편으론 뿌듯했지만, 동시에 죄책감도 들었다. 나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마치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해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죄책감조차 깊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지금은 죄책감을 느껴야 할 순간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반응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소셜미디어 활동도 점점 활발해졌다. 나는 매일 아침 긍정적인 메시지를 올리고, 강연 후기를 공유했으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포스팅했다. 팔로워 수는 꾸준히 늘었고, 댓글도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다. 응원의 메시지뿐 아니라, 부러움도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감정 관리’를 주제로 한 코너를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정기 출연자로서 시청자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 큰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대되었다.

첫 방송 녹화가 있는 날, 나는 평소보다 훨씬 세심하게 준비했다. 헤어스타일을 새로 정비했고, 화면에서 잘 받을 만한 화사한 색의 옷을 골라 입었다. 방송국 메이크업실에서 화장을 받으며 거울을 마주했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나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방송은 예상보다도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진행자와의 호흡도 자연스러웠고, 녹화 현장의 분위기 역시 밝았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나는 능숙하게 질문에 답했고, 감동적인 사연에는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절절한 공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모든 타이밍이 정확했고, 모든 감정 표현이 적절했다. 그것은 완벽한 연기였다.

녹화가 끝나자, 스태프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고, 첫 방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시청자들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다들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오늘의 성공을 곱씹었다. 드디어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감정 전문가’로서 공식적인 위치에 도달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이 가짜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스쳤고, 그 순간 묘한 아이러니가 나를 지나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타인의 감정을 다루는 역할을 맡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언하고 있다는 것. 그 모순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우스웠지만, 정작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오늘 방송의 예고 영상을 확인했다. 화면 속의 나는 놀라울 만큼 밝고 따뜻해 보였다. 댓글들도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다음 방송이 벌써 기다려진다는 말, 상담 신청은 어디서 해야 하느냐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실감했다. 내가 만든 이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방송에 출연한 이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평일에는 회사 일을 처리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강연과 촬영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매니저도 생겼다. 그 모든 변화가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사인을 부탁했고, 지하철에서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생겼다.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나는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에너지를 나누고 있는 나는 점점 더 속이 비어가는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방송 출연 횟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아침 프로그램부터 토크쇼, 라디오까지 섭외가 줄을 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지만, 매회 처음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야 했다. 나는 점점 더 능숙해졌다.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고, 청중의 반응을 끌어내는 법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어느 날, 촬영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우며 거울을 마주했다. 화장이 지워지고 드러난 얼굴은 피곤하고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 얼굴이 진짜 나인지, 아니면 카메라 앞의 모습이 진짜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나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둘 다, 나 같지 않았다.

그 무렵, 매니저가 새로운 제안을 들고 왔다. 한 출판사에서 내 책을 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였다. 감정 관리와 행복에 대한 에세이 형식으로, 내가 했던 강연 내용과 방송 이야기를 한 권으로 정리하자는 제안이었다. 인세도 상당할 거라는 말이 뒤따랐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책까지 쓰게 될 줄이야, 그것도 ‘행복’에 관한 책이라니.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내가 감정과 행복을 말하는 책을 쓴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그렇다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이미 해왔던 말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대되기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긍정적 사고의 힘, 감정 조절법, 원만한 인간관계의 기술, 스트레스 해소법, 자존감 높이는 법까지—다양한 주제를 다뤘고, 할 말도 많았다. 그리고 그 말들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감사 인사와 강연 후기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고를 써 내려가면서 문득, 내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정작 나는 믿지 않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그 말들이 독자들에게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질 것이고, 실제로 위로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교하게, 더욱 설득력 있게 그 거짓을 다듬어 나갔다.

편집자와 책의 방향성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그는 내게 ‘개인적인 경험담’을 더 많이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기대한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솔직한 이야기라니. 정말 솔직해지기로 마음먹는다면, 결국 모든 것이 가짜라는 걸 인정해야 할 텐데······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세상은 진실보다 효과적인 거짓을 원했고,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럴듯한 경험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구조는 완벽했고, 메시지는 명확했다. 독자들이 감동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 이야기 속에 진짜 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한 글자도 진실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나를 평범한 동료로 여기지 않았다. 방송에 나오는 유명인이자, 감정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로서 나는 호기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어머니는 내가 출연한 방송과 강연 소식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바빴고, 평소 과묵했던 아버지조차 드물게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꺼냈다. 주변 모든 사람이 내 성공을 축하하고, 내 성장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런 축하와 인정을 받을수록,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존재는 진짜 내가 아니었다. 방송 속, 강연 속, 책 속에 존재하는 ‘가짜 이현’이었다. 진짜 나는 아무도 몰랐고, 어쩌면 알게 된다면 실망할지도 몰랐다. 내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 내가 진실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지금의 모든 관계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책 출간을 앞두고 원고 작업을 마친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 나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어떤 구성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수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행복해지는 법’, ‘성공하는 감정 관리의 기술’, ‘긍정적 사고의 힘’—책 제목들은 비슷비슷했고, 표지는 각양각색이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유사해 보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책들을 쓴 저자들도 혹시 나처럼 살고 있는 걸까. 나는 한 권을 골라 펼쳤다. 내용은 익숙했다. 내가 강연에서 수없이 말해왔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니, 역시 강연가이자 방송인이었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결국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포장으로 전달하고 있는 셈이었다. 진실보다는 포장과 연출이 우선이 되는 시대. 나 역시 그 틀 안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일상을 되짚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소셜미디어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올렸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런 문구들을 게시한 뒤, 회사에 출근해 하루 여덟 시간을 일했고, 퇴근 후에는 강연장이나 방송국으로 향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다음 날 올릴 메시지를 미리 써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모든 것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계적인 리듬이 오히려 나에게는 안도감을 주었다. 생각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고 있는 척’할 수 있었다.

며칠 뒤, 한 강연장에서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나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나아질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민준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민준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마지막 선택 뒤에 그것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곧 익숙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긍정적 사고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돈되고 논리적인 말이었다. 질문한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강연은 별다른 흐트러짐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조금 전 그 답변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능숙하게 나 자신조차 믿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는지를.

강연이 끝난 후, 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절박했다. 결국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기로 약속했다.

며칠 후, 한적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부터 우울감을 겪었고,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약물 치료도 해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상하리만큼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공식적으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진짜 감정을 숨기고 가짜 나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를 알고 있었고, 그걸 고치기 위해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언제나처럼 긍정적인 사고와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너무 진지했고, 그 절박함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조금은 솔직해졌다.

“사실 저도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건 정말 중요해요.”

며칠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의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며,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메시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여 있었다.

“선생님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가끔 너무 완벽해 보여서 걱정돼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받았다. 도움을 주기 위해 만났던 사람이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완벽해 보인다’라는 말이 가슴 깊은 곳을 찔렀다. 완벽하게 보이는 것, 그게 문제였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당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였다. 물론 출판사에서 정한 제목이었다. 나는 그 제목을 볼 때마다 어딘가 쓴웃음을 짓게 된다. 정작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아이러니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애초에 나의 삶 자체가, 처음부터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였으니까.

출간을 기념한 사인회가 열렸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으로 찾아왔다. 대부분은 내 방송을 보았거나 강연을 들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들 눈에 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대 같은 존재였다.

사인을 해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모두가 삶의 짐을 지고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도,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이 내 앞에 다가왔다. 방송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그의 눈빛은 맑고도 뜨거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동시에 죄책감도 스며든다. 나 자신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마치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죄책감마저도 나를 깊게 흔들지는 않았다.

사인회가 끝난 뒤, 근처 카페에 앉아 그날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두가 간절했고,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잘 만들어진 ‘이현’이라는 역할 안에서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민준이 떠올랐다. 그 친구도 마지막에는 간절했을까.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 했을까, 아니면 모든 걸 놓고 싶었을까. 나는 민준의 마지막 심정을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절망이라는 감정을, 나는 아직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감정은 언제나 희미하게만 존재했다. 너무 흐릿해서 극단으로 밀려본 적도, 감정의 끝을 본 적도 없었다. 상상할 수는 있어도, 진짜로 느끼는 일은 없었다.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책 홍보 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녹음된 음성을 틀 듯, 능숙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정돈되어 있었고, 완벽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점점 더 ‘가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직접 경험한 적도 없는 일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말했고, 실제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 거짓말들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고, 때로는 나조차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인터뷰 중 진행자가 묘한 질문을 던졌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개인적으로’라는 말이 유난히 낯설게 들렸다. 진심에서 우러난 조언을 한다면,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입에서는 익숙한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모든 사람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힘든 시기도 결국은 지나가고,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길은 열립니다.”

진행자는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방송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책은 잘 팔렸다. 예상보다 좋은 반응이었고, 인기 도서 목록에도 올랐다. 출판사는 2차 인쇄를 결정했고, 매니저는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제 진짜 대중적인 작가가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성공이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이 무거워야 했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공허함에는 무게가 없었다.

어느 날 밤, 집에서 혼자 내 책을 펼쳐보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낯설었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쓴 글처럼 느껴졌다. 모든 문장은 완벽했고, 긍정적이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과연 저런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걸까.

책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부족함도 받아들이고, 실수도 용서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문제는, 그 문장을 쓴 나는 정작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자신을 숨기고, 감추고, 끝없이 포장하고 있었다.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거짓말을 이어가야 할까.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기대고 있었고, 나의 메시지에 위로받고 있었고, ‘이현’이라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비록 그 믿음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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