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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아닌 Oct 20. 2021

나의 오래된 헝겊들

Day 24

흔한 사람이 되고 만다. 어느 날 참여한 워크숍이었다. 진행자는 각자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포스트잇에 적어보라고 말했다. 즐겨 듣던 록밴드의 음악이 떠올랐으나 망설여졌다. 그 밴드를 아는 이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오히려 반가워할 이유였다. 아주 난해한 음악만 고집하거나 낯선 나라의 인디밴드를 찾아보길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고른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늘 사람들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어색하게 웃거나 관심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것이 좋았다. 특이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꼭 훈장 같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른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의식한다는 게 너무 큰 체력 소모다. 이제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선택지를 고른다.


회사생활이 할 만하냐는 말을 들었다. 많이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럼 예전에는 내가 회사에 섞이지 못해 보였던 걸까. 어쩌면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여줬던 것일지 모른다. 순응하는 것에 관하여는 늘 유치한 심술이 생긴다. 타인의 조언에는 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라거나. 망해버리더라도 꼭 내 판단대로 일해야 한다거나. 물론 오래가지 못하는 고집이다. 친구에게는 남은 프로젝트에서 내 역량을 전부 쏟아붓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이런 마음도 꽤 치기 어릴 것이다. 어딘가 부끄러웠다. 모범생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다행인 점은 서로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다. 직장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을 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내가 난해한 음악을 틀었을 때와 다른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나는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어색한 대화를 하지 않기 위해선 보편적인 주제에 관해 말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 영화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다른 친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나는 브릴란테 멘도자에 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더는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말았다.


갑자기 추운 날이 이어진다.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 되면 나는 함께 찬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애틋한 기억은 모두 겨울이다.


실은 겨울이 아닌 데도 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상 기후에 대해 보도했다. 나는 두꺼운 겨울옷을 꺼냈고 오래된 여름옷들을 정리하기 위해 세탁기를 돌렸다. 계절이 바뀐 옷을 정리하는 건 처음이었다. 옛집에서는 옷장이 넉넉해서 따로 치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애인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옷장도 절반이었다. 여름옷을 모아다가 침대 밑 수납 공간에 넣기로 했다.


매트리스를 힘겹게 밀어내자 수납 공간이 드러났다. 침대의 프레임을 따라 넓직하게 만들어진 빈 공간이었다. 나는 반팔티와 얇은 셔츠들을 접어서 한쪽 모서리부터 차곡차곡 쌓았다. 다시 꺼내 입을 때는 한 번 더 빨아야겠지? 애인이 물었다. 아마 그럴 거야. 수 개월 뒤에 꺼내 입게 될 테니까. 하지만 먼지가 앉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수납 공간을 굳게 닫고 다시 그 위로 매트리스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침대 아래의 깊은 어둠을 상상했다. 어둠 속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나의 오래된 헝겊들. 고작 몇 개월 뒤에 나는 다시 뚜껑을 열고 옷을 꺼내 입을 것이다. 그때 내 모습은 흘러간 몇 개월의 몫만큼 변했을까.


구름의 모양이나 햇살의 농도가 바뀌는 일 앞에서 내 작은 변화는 초라하다. 단지 짧은 소매가 길어지고 그게 다시 짧아지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차라리 나는 겨울옷을 꺼내 입는 반가움에 대해 더 생각하기로 했다.


고민 끝에 나는 조그만 포스트잇에 아무도 모를 그 노래 제목을 적었다. 별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결국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과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에 부끄럽지 않기로 했다. 스피커에서는 메이지스타의 페이드 인 투 유가 흘러나왔다. 더는 다른 이의 표정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단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음악은 마지막 떨림까지 찬찬히 흘러나왔다. 이윽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계속해서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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