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란드 May 09. 2020

아빠,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하고 싶어

아이와 함께 떠나요(feat 이웃집 토토로)

  아이는 바다를 좋아했다. 모래사장과 파도가 멋진 동해바다, 갯벌이 있어 체험하기 좋은 서해바다. 좋아하는 음식 1위도 꽃게, 대게이고 조개껍질 모으는 것도 좋아한다. 집에서는 구피 물고기를 키우고 보석 거북이를 키운다. 바다에서 게를 잡거나 조개를 캐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주 좋아한다. 아이와 그동안 직접 바다를 경험했던 것은 두세 번 정도 된다. 

  첫 번째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빠와 함께하는 체험학습이 주말에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내가 다녀왔다. 시립어린이집에서 준비해준 간식을 먹으며 전세버스를 타고 서해 바다 갯벌로 다녀왔다. 가서 조개도 많이 캐고 게도 잡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아이가 거기서 말을 안 들어서 좀 혼냈고 선생님들이 중간에 중재하여 주시고 아이를 다독여 주셔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험학습 나왔는데 좀 장난치고 그래도 풀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고 있는 아쉬운 장면들 중의 하나이다. 

  두 번째 바다 체험은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였다. 강원도 내륙에서 숙소를 잡고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날 동해바다를 들렀다. 거기서 다들 가볍게 해안 구경을 할 요량으로 왔기에 바다에 안 들어갔는데 할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내가 바다에 몸을 담갔다. 함께 헤엄도 치고 모래성도 쌓았다. 특히 모래성 쌓기가 재미있었다. 나도 사실 너무 재미있었으니 아이는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모래성을 쌓으며 밀려오는 파도에 지지 않으려고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할아버지 나 아이 모두 힘을 합쳐 쌓아 나갔다. 아이는 그 기억을 무척 즐겁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가을이 되어 바다에 가보고 싶어 했다. 나의 강원도 산꼭대기에서의 첫 번째 차박 여행이 조금 미숙했기에 아이가 힘들어서 다시는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또 가고 싶다는 말에 좀 놀랐다. 장소는 차박 여행지를 검색하다가 해안가로 자가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이라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의 사천해변으로 정했다. 여행 일정을 잡으려고 강원도 현지 날씨를 보니 일요일 밤에 꽤 많은 비가 올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요일에서 월요일까지의 일정으로 잡았다가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다만 토요일 오후에도 비 소식이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부터는 비가 개는 것으로 나와서 오후에만 잠시 기다리면 될 듯싶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내가 육아휴직을 했고 아이도 학교장 허가 체험학습을 내면 되기 때문에 평일에 움직이는 것이 여로모로 좋다. 주말에 움직이면 그만큼 더 복잡해서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지고 목적지에 가서도 자리 경쟁 등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많다. 평일에 여행을 다니면 그런 단점이 거의 해소되므로 평일 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날씨로 인해 남들과 함께 토요일 일요일에 걸치는 레드오션으로 뛰어들었다. 

  주중에 틈나는 대로 여행 준비를 해놨다. 이번 여행에서 색다르게 추가한 체험은 화로대를 이용한 모닥불 피우기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여러 장비들-화로대, 장작, 토치, 의자-을 구매하고 요리를 위한 장비들-시거잭에 연결하는 미니 전기밥솥, 코펠, 버너, 부탄가스, 그리고 여러 재료들-도 준비해두었다. 특별 이벤트로 불꽃놀이 2종도 준비했다. 그 외 모닥불에 빠지면 안 되는 고구마도 포일에 싸서 준비하고 마시멜로도 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혼자 장비를 챙기고 서둘러 김밥을 사서 아내에게 인사하고 들떠있는 아이와 드디어 출발을 했다.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소요시간은 평일 수준이어서 안도했는데 고속도로 IC가 가까워지자 차량이 늘어나면서 정체가 시작되었고 도착 예정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아이가 어려서 무리하게 가는 것보다는 쉬엄쉬엄 가는 것이 좋다.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다녀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쉬엄쉬엄 가는데 어느새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지역으로 들어갔다. 동해안으로 다가감에 따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 곧 그치겠지 하고 생각하며 점심을 아이가 좋아하는 가락국수로 해결했다. 비는 내리지만 영동지방은 확실히 영서 지역보다 따뜻했다. 

  쉬엄쉬엄 왔지만 그래도 잘 도착해서 오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사천해변은 인터넷 포털 로드뷰로 여러 번 확인했던 곳이라 바로 찾을 수 있었고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천해변 공사가 있는지 덤프트럭 등 공사 차량이 반대편 해안 쪽으로 간간히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사천해변에 들어가 보니 서핑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자 그들도 철수하고 있는 분위기였고 일부는 그 높은 파도에서도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는 비가 오건 말건 우산을 쓰고 바로 바다로 향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소리를 내며 해안가에 부서져 내렸다. 아이는 벌써 해안가로 다가가며 조개를 줍고 있다. 정말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얼른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며 스마트폰의 날씨의 변화만 보고 있었다. 날씨예보는 시간 단위로 계속 바뀌며 희망을 줬다 실망을 줬다가 했다. 비가 좀 그치면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비가 오면 다시 차에 탔다가 했다. 아이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조개껍데기를 주우러 모래사장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비가 그치지 않은 하늘을 원망했다. 비가 그쳐야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먹구름은 계속 바다 쪽에서 몰려왔지만 저녁이 되어가면서 빗방울이 약해졌다. 



  아이와 나는 결정을 내렸다. 비가 좀 더 오더라도 모닥불을 피우기로. 화로대를 설치하고 장작을 쌓아 넣고 토치로 신문지를 불쏘시개로 불을 붙였다. 내 생에 첫 나와 가족을 위한 캠핑에서 불 피우는 체험이었다. 아이도 첫 체험인 건 마찬가지다. 물론 성인 남자로서 불 피우는 것이 처음이었겠는가. 군 복무 시절, 직장에서 불을 피우긴 했었다. 학생 야영장에서 2년 정도 근무하면서 지겹도록 캠프파이어 준비를 했다. 캠프파이어 준비는 같이 근무하는 시설 담당 직원이 주로 담당하였으나 나도 시간 나면 보조하면서 성수기 때는 주마다 캠프파이어를 지켜봤던 것 같다. 그래도 가족과 나를 위해 불을 피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우리가 불을 피우자 주변에서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의자도 꺼내 놓고 구워 먹을 고구마도 꺼내고 소시지와 마시멜로도 준비했다. 아이는 불을 발견한 원시인이 된 것처럼 불쏘시개 집게로 장작을 집었다 놨다 했다. 불똥이 튀어 아이 잠바에 구멍이라도 생길까 봐 염려하는 건 부모인 내 생각일 뿐 아이는 이미 원시의 호기심으로 불을 대했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맘 놓고 불장난을 해보겠는가. 그래 마음대로 하거라. 화상만 입지 말고. 아이랑 은박지에 싸온 고구마를 화로에 넣고 소시지도 너무 익어 옆구리 터진 줄도 모르고 구워 먹고 마시멜로도 처음으로 구워 먹어 봤다. 이벤트로 준비해온 불꽃놀이를 해봤다. 아이는 막대 불꽃 스파클러를 처음에는 무서워서 못했다. 아이는 활달하지만 겁이 많다.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건 나와 닮지 않은 듯하다. 나도 무서움을 많이 타지만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다. 내가 몇 번 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해 보더니 자신감을 갖고 재미있게 한다. 폭죽 같은 불꽃놀이도 해변가에 설치해서 점화시켜보았다. 이 폭죽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멋진 추억을 준 것 같아 좋았다. 저녁이 깊어지자 아이는 졸려했다. 아이는 차에서 본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바로 꿈속으로 빠졌다. 아이를 재우고 나는 남은 장작을 모두 태우면서 홀로 바다 파도 소리와 장작 불꽃을 배경 삼아 나 자신도 꿈꾸던 캠핑을 즐겼다. 겨우 겨우 많은 짐들을 정리하고 나도 아이 옆에 누워 아름다운 꿈나라로 향했다.



  다음 날 주위가 밝아옴을 느끼며 잠이 깼다. 아이는 아직 자는 중이다. 우리가 자고 있는 차 주위로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구름이 조금 끼어서 바다에서 바로 올라오는 일출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늘 전체로 번지는 황금빛 일출의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아이도 일어나서 같이 해변가로 나갔다. 공기는 아침이지만 춥지 않았다. 아이는 바다 바로 앞까지 가서 장엄한 바다와 일출을 바라보았다. 아빠인 나에게는 대자연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에 더 눈이 간다. 그 거대한 대자연에 비해 모래알처럼 조그마한 내 아이의 모습만 눈에 들어오는 걸까. 파도는 비구름이 걷혀 부드럽게 해안을 쓸고 있었다. 써퍼들은 벌써부터 바다로 들어갔다. 여름인 것 같았다. 아이와 나는 볶음밥을 하고 컵라면 물을 끓이고 만두를 찌며 잔칫집 같은 소란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식탁도 없어서 비 맞은 젖은 돌 위에 신문지를 깔고 요리하고 밥을 먹었다. 밥 먹고 정리하는 동안 아이는 벌써 옆에서 캠핑 중인 캐러반의 또래 아이와 멀리 나가 조개껍질을 줍고 있다. 외동인 아이에게 친구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요즘 제대로 아이들끼리 놀 시간도 없어 보인다. 1학년이다 보니까 하교 시간이 빨라 오전 수업하고 급식 먹고 나면 하교시간이 된다. 그나마 점심 먹고 나서 운동장에 나가 노는 것이 친구들과 제대로 노는 시간인 듯하다. 하교를 하고 집으로 오면 따로 친구들과 놀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다들 예체능 학원이다 국영수 학원이다 해서 사교육 장소로 이동하기에 학원에서 학교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수업을 하며 어울리는 정도다. 그리고 저녁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이런 자유로운 공간에 와서 자연 속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놀 수 있기에 캠핑이 좋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아이들이 많이 뛰어노는 곳으로 캠핑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조개껍질을 한 바구니나 주워왔다. 그동안 나는 차의 잠자리를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해두었다. 새로 사귄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두 번째 차박 캠핑 장소를 떠났다.

  바로 집으로 가기 아쉬워서 양양에 있는 서핑 해변을 찾았다. 이국적인 모습을 영상매체를 통해서 몇 번 봤던 터라 한번 와보고 싶었다. 근데 해변에는 정작 써퍼들은 없고 관광객들만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와 주변을 걷다가 사진을 찍고 귀갓길에 올랐다. 출발 전 점심으로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와 메밀전을 시켜 먹었다. 귀가 시간이 오후가 되자 차량이 몰리면서 경기도에 근접해서는 정체를 빚었다. 다음에는 주말에는 조금 일찍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도 너무 멋진 체험이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아이의 Wee 센터 상담시간에 상담 선생님에게 여행을 자랑했다고 하니 아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다녀와서 다시 다음 여행을 상상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음번이 마지막 차박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추워져서 이제 못 가겠다고 하니 아이는 한 번만 더 가자고 한다. 나보다 더 열성적인걸.




이번 여행을 함께한 영상은 '이웃집 토토로'였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첫 캠프파이어와 폭죽을 마치고 아이는 차에 누워 토토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먼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yrqmx630BIA

이전 05화 차박 캠핑 갈까? 별자리 보러 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