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떠나요(fea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와 관련되어서 가장 먼저 산 책들은 각종 육아 참고 서적들이고 인문서적으로는 별자리 관련 천문학 도서가 있다. 생뚱맞지만 아이가 조금 크면 같이 별자리 보러 다녀야지 라는 생각에서 산 책이다. 아이에게 알려주려면 아빠가 잘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였다. 책 제목도 “아빠, 별자리 보러 가요” 이런 식이었다. 사실 구매 후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사두고 8년이 흘렀으니까 책의 존재 자체도 잊혔고 나도 바빴으니까. 하지만 아이와 별자리 보러 가는 것에 대한 의지는 마음속 깊이 남아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우주, 별 같은 천문 및 우주여행, 우주인, 스타워즈, SF영화 같은 소재를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깊은 공부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다만 겉핥기식의 흥미 위주의 활동만 했다. 고등학교 때 몸이 좀 아파서 입원했을 때 누군가 사다 준 과학동화라는 과학 잡지에 나온 별자리 이야기들을 보며 흥미를 더 가지게 되었지만, 주요 별자리 몇 개 정도 아는 것 그리고 우주에 대한 기본 소양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 영화 “콘택트”를 보면 주인공이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별을 보는 장면이 있다. 내 아이에게도 저런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꿈을 꾸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에 들어갈 즈음부터 천문대를 검색해봤다. 그중에서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가 괜찮아 보여서 가려고 했는데 장기간의 공사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다른 천문대를 찾아보기로 했다.
휴직하기 전 일이지만 차를 바꿀 시기가 되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전기자동차를 구매하게 되었다. 차는 작지만 전기로 움직인다는 점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구매하게 되었다. 아이도 너무 좋아했다. 충전하는 날이면 따라와서 본인이 충전한다고 나섰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차와는 다르게 전기를 풍부하게 쓸 수 있어서 여행 중 차량 내에서 숙박을 하는 소위 ‘차박’ 하기에 좋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아이와 더 추워지기 전에 차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장비를 최소화해서 준비를 했다. 차박 준비하면서 장소를 알아봤는데 강원도 평창에 은하수와 일출 일몰 보기 좋고 경치가 스위스 풍경 같다는 강원도 평창군 청옥산에 있는 ‘육백마지기’라는 곳이 인기가 많았다. 은하수와 별을 보는데 좋다는 후기들을 보고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와 별 보러 가려는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차박도 하고 별도 보고 두 가지 버킷리스트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육백마지기에는 화장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먹을 간단한 저녁으로 빵과 음료수 과일 등을 챙겨서 아내의 배웅을 뒤로하고 둘만의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둘이서 자가용으로 하는 장거리 여행이면서 차에서 자는 엄청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차에서 자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아이가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먼 곳도 잘 따라다녀서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먼 곳을 가기도 하고 처음 해보는 차박이어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녀오는 것으로 잡았다.
가는 도중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쉬며 평창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지금부터 시골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평창에서 점심을 먹고 산에 오르기로 했다. 작년 동계올림픽의 고장 평창의 올림픽 장터에서 TV에 나온 맛집이라는 시장 음식점에 가서 메밀 부치개와 처음 먹어보는 메밀국수를 먹었다. 아이는 메밀 부치 개를 맛있어했다. 아이는 먹는 것보다 메밀전 수수 전 등을 부치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관심을 가져했다. 이제 육백마지기로 갈 차례다. 가는 도중 미탄면 사무소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를 충전하고 면사무소에서 당직자 분에게 따뜻한 물을 얻어 가지고 산에 올랐다. 10월의 강원도의 조용한 주말 면사무소 마당은 단풍으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해발 1,000m 이상인 목적지로 가는 시간은 의외로 오래 걸렸고 마지막 도로 구간은 포장이 안되어 있어서 거북이 운전을 해야만 했다. 비포장 먼지를 뚫고 도착한 목적지는 너무 멋졌다. 이 높은 곳에 관광버스까지 올라오고 있었고 관광객들이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우리는 자리를 잡고 먼저 차 속에 잘 수 있는 자리 배치를 했다. 날씨가 갑자기 조금 추워졌고 해발고도가 높아서 은근 걱정했는데 산 밑과 그렇게 기온차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 차량이 주차된 주차장에는 여러 차량과 사람이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우리도 육백마지기의 풍력발전기들 주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과 일몰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별 볼 생각만 했지 일몰이 이렇게 멋진 곳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석양이 장관이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석양이었다. 집에서 갈 때 카메라를 두 대 가지고 갔다. 한 대는 dslr 카메라였고 한 대는 일명 똑딱이로 불리는 하이앤드 카메라였다. 둘 다 삼각대를 가져갔다. 한 대는 내가 찍고 한 대는 아이에게 줘서 찍게 했다. 아이는 핸드폰 카메라만 만져보다가 처음 만져보는 사진기를 열심히 찍어댔다. 해가 지고 넘어간 해의 석양이 아직 하늘에 걸쳐있을 때 우리는 차에 들어와서 간단한 요기를 했다. 이제 관광객들은 모두 떠났고 이곳에서 숙박을 할 사람들은 잠자리를 준비했다. 해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하늘에는 드디어 하나 둘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지만 햇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과 은하수 가 머리 위로 나타났다. 아이는 여기 오기 전날 집에서 본 중요 별자리 들을 머릿속으로 상기하고 하늘을 손으로 꼽으며 찾아보았다. 그날 찾은 것은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 북극성이었다. 난 시력이 안 좋아졌는지 큰 별자리들과 은하수를 보는데 만족했다. 은하수 사진을 남기려 시도했는데 사진 연습도 안 하고 가서 사진도 잘 안 찍히고 아이가 춥다고 차에 들어가자는 바람에 제대로 된 별 사진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하늘에는 원래 별이 무수히 많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가 아는 별 한 두 개는 친구처럼 맺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차에 누워서 해가 뜰 때까지 별의 속삭임을 들으며 잠들었다. 기대만큼 편한 잠자리도 아니었고 별 사진도 못 찍었지만 아이 마음속에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날 평창 시내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아침 식당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간신히 아침을 먹고 평창에 온 김에 양 떼 목장을 방문했다. 아이는 동물과 식물을 좋아한다. 겁이 많지만 호기심이 많다. 양 떼에게 먹이 풀을 줄 때도 물릴까 봐 몇 번을 시도했다. 손바닥에 풀을 놓아두면 양이 입술로 집어서 먹는다고 안내받았는데 아이는 물릴까 봐 손가락으로 먹이를 집어서 줬다. 몇 번 시도 끝에 손바닥에 풀을 놓고 양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줄 수 있었다. 새로운 동물에 대한 아이의 막연한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었던 양 떼 먹이 주기 체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생한 아이에게 횡성에서 갈비탕을 사줬다. 피곤해하면서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보니 여행 내내 밥다운 밥을 제대로 먹이 지를 못한 것 같았다. 다음번 여행 때는 먹는 것도 잘 챙겨주리라 다짐해보았다. 가족들 선물로는 안흥 찐빵을 준비했다.
아이와 같이 다니는 여행은 먹는 것 하나 움직이는 것 하나 모든 것이 체험이며 모험이며 교육이다. 둘이 함께 결정하기도 하고 아이의 조언도 들으며 아이의 자존감도 올라가고 의견이 다를 때는 둘 사이의 타협점도 찾으면서 아이는 어려움도 해결하는 능력을 얻는다. 아빠와 함께 한 경험들이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적 유산으로 남기를 바란다.
이후에 차박 여행을 여러 번 갔는데 아이에게 그동안 가장 좋았던 차박 장소를 꼽으라고 하니 이 곳 육백마지기를 일등으로 꼽았다. 이유를 물으니 밤하늘을 가득 채운 수많은 별들을 보아서 좋았다고 했다. 첫 차박이라 가장 불편했을 텐데 아이의 관점은 어른들과는 또 다른가 보다.
차박 여행을 떠나면서 준비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차 안에서 볼 영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 맞는 영상으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 적당해 보였다. 매 차박 여행 때마다 한 편씩 보여줬는데 차박 여행지와 그때 본 명작 애니메이션이 매칭이 되어 더욱 기억에 남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차박 여행지를 생각하면 그 영상이 생각났고 그 영상을 볼 때면 아이와 차박하던 그 장소가 떠오르는 좋은 점이 있었다.
첫 번째 여행을 함께 한 영상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난 이미 예전에 몇 차례 반복해서 볼 만큼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상 속에 귀신이 나와서 아이에겐 약간 무서울까 봐 걱정했지만 기우였고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던 건 '유바바'할머니, 그다음 무서워하던 것은 '가오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