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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18. 2022

생은 다른 곳에

내 귀는 소라껍질, 파도 소리를 사랑한다.

정신이 있다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덜 쓰라린 마음으로 죽는 순간을 맞이하려 사는 건 아닙니다. 한 순간의 암담함이 끝없이 찌를 듯 깊다 해도 지금과 다름없이 짧은 한 순간일 뿐입니다. 지나간 것이나 아직 모를 것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모두 의미 없이 넘어가는 책장 같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속절없이 넘겨집니다. 가슴이 더 아프거나 유달리 가벼웠다 해도 소용 없습니다.

  걱정 많은 마음, 온통 두렵고 확신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마음은 단추가 어디서부터인가 잘 못 끼워지기 시작했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기에 생은 정말로 짧은 한 순간입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거나 마음이 일그러지는 듯하다면, 그게 단지 괴로울 뿐 아니라 마음에 얼룩이 점점 번져가는 것처럼 느낀다면 멈춰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누구도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책임 져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를 끼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멋대로 충동적인 생활을 하다 추락하듯 무너지는 심정을 맛보게 되었을 때 두려워져 다시는 그러면 안 되겠노라고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내 인생이나 자기 자신이 자신의 것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와 같은 거라고 틀림없이 믿고 있어 그랬던 것이고 이제는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수가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또 생각이 바뀔 수 있겠지만요. 스스로를 자신으로 여기기엔 나의 부모까지도 우연히 여기에 태어났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을테고 이렇게 돌아가다 끝이 나는 자신의 세상을 납득할 수 있으려면 오히려 내가 나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비밀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입니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완전히 납득 하다 아주 납득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언제고 생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어쨌든 나는 어렸을 적부터 종종 찾아오던 감각이 주는 까마득한 외로움과 낯섦을 끝내 외면할 수가 없겠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끝까지 대체로 똑바르게 행동할 자신은 있으나 끊어질 듯 가느다란 정신의 한 줄기 이외에 다른 모든 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디에서 오게 된 것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몸과 더불어 정신까지도 영원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마 나는 끝까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거예요. 그 때문에 때로 나보다는 타인에게 정답이 쥐어져 있을 것으로 느껴져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 누구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것 같아 쉽게 따르고 싶어졌던 겁니다.

  우스운 부분이라면 이런 생각은 전부 떠나고 싶지 않다는 미련에서 나온 마음이라는 겁니다.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 몸과 정신을 통해 느껴지는 세상 속에 계속해서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한 순간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영원이라는 건 순간 속에만 들어 있는 거라고 깨달았을때야 말로 온 몸에 실감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영원이 든 순간을 맛볼 때 나는 두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최대한 깜빡이지도 않은 채 생생한 공기와 장면을 눈알에 새기듯 머릿속에 새겨 넣으려 애썼습니다. 이런 순간이 쉽게 오지 않으리라고 예감해서였습니다. 그러니 똑똑히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갑자기 모든 게 끝난다 해도 기꺼이 가벼운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젊음이 안겨준 혹은 나를 품어준 순간이었을까요? 생생함에 휘감겨 떠는 나를 꽉 쥔 손가락에 의해 난 자국은 내 몸에 번지다 흐려졌습니다. 그러자 잠시 사라졌던 멀미가 돌아와 이제는 사라지는 일 없을 거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살며 낯선 이와 눈을 똑바로 마주할 때 무엇도 덧씌워 있지 않아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벌거벗은 존재로 부딪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목격하고 있다는 실감이 밀려왔습니다. 우리가 살다 마주치고 그러다 죽을 거라는. 이럴 때 시간이 뒤섞인다는. 

  인상적인 순간은 애쓰지 않아도 머릿속에 간직되어 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지금보다 생생하게 튀어 나옵니다. 계속해서 봐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볼 거라고 해도, 한 번 만난 뒤 다시 볼 수 없어도 그리움에 언제나 가슴이 짓물러 있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며 동시에 기억에 집착하는 편이라 어렸을 적부터 많은 순간을 머릿속에 모아두려 애썼고, 벌써 버거울 만큼 무겁게 많이 모아두었으나 앞으로도 내가 누구인지는 모를 겁니다. 그렇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괜찮은 날이 있고, 아무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느끼는 날이 있을 뿐이지 어쩌다 이렇게 된 일인지, 여기가 어디고 어디로 가게될지 알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생에 집착하는 덧없는 일은 자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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