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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an 05. 2024

소설 읽고 적는 일기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나는 아침부터 어둡고 흐린 하늘, 햇빛 한 점 없는 서늘한 기운을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지나고보니 두루뭉술하게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흐릿하고 안개 낀 머릿속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비슷하다. 이렇게 나이 들 줄 몰랐다는 말은 뻔하고,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느끼기로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이 감각은 기억 나는 한 가장 어릴 적 느낌과도 같다. 남이 보기엔 숱하게 변해왔겠지만, 또 나도 남이라면 전부 시시각각 시절마다 변한다고 느끼지만 나에게 있어서 자신 만큼은 그럼에도 변함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 뿐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마저도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두려워진다. 언젠가는 멈추고 말 거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 떠올리면 좀 더 담담하고 더 앙상하고 적나라한 고독이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상상하면 자신이 병에 걸려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느끼게 된다. 아주 심각할 거라고, 끝장이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두려워서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어떤 느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있기에 너무도 조화롭고 아늑하고 감미로워서 무엇으로라도 남기는 수밖에 생각할 수 없어서 글로 적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저 먼지처럼 흩어지고 증발되고 말 일이라고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예전에 기막히게, 조용하게, 눈 감을 듯 감미롭게 좋고 좋았던 기분이, 시절이 한 입 거리 정도의 조각으로 기억 속에서 불현듯 생생하게 떠오를 때면 이제는 자세한 것은 거의 다 잊어버렸다는, 세세한 사항들은 다 벌써 날아가버렸고 이제는 기분만 겨우 떠오를 뿐이라고, 이마저도 살면서 몇 번 더 나를 찾아올지, 나는 또한 얼마나 더 살게 될지 알 수 없는 인간된 운명이 바로 떠오르면, 적어도 적을 순 있을 거라고 여겼던 생각조차 착각일 뿐이라고 허탈하게 빼앗긴 듯이 여겨진다. 무언가 빼앗겼다고. 그걸 다 제때 적었으면 어땠을까? 게으른 대로 느긋하기만 하게 넋 놓고 흠뻑 젖어 흐늘거리고 하릴없이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르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차곡차곡 생각한 것들을 다 해냈으면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간다고, 무언가 빼앗기는 듯이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벌써 이렇게 허무해도 될까? 요즘은 이렇고 또 몹시 행복하다. 이 안정감과 아늑함을 지니고 누리고 있는 것, 여태껏 사랑받고 있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때문에 더 바랄 게 없이, 부족한 것 없이 운이 좋게 살아왔다고 느껴진다. 늘 이랬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는 게 더없이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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