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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14. 2021

풀 가꾸는 여자

약이 되는 풀들을 지키기로 했다.

집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뽑아도 뽑아도 표시도 안나는 풀들이 시골살이를 힘들게 한다. 전원주택을 꿈꾸던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얼마 안 가 포기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풀 때문이라는 말들도 들려온다. 이제 9개월째, 아직은 포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틈나는 모든 시간들을 풀 뽑는 일에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름 모를 풀을 뽑다가 갑자기 이름이나 알고 뽑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원에서 자라는 풀들의 이름도 모른대서야 그 정원의 주인이라는 명분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 앙증맞게 피어있는 잡초의 꽃을 검색창에 넣으니 풀이름이 뜬다. 더불어 풀의 효능과 활용법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풀이 그냥 풀이 아니었다. 집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부터 밭에 자라는 풀들이 그냥 뽑아버리기에는 아까운 효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간한 풀들에는 나름대로 훌륭한 약효가 있었다.


민들레 질경이 등은 이미 내 몸에서 효과를 본 적도 있었으니 그것들의 효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몸에 좋았으니 다른 사람들의 몸에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봄에 하얀 꽃을 피우는 토종민들레 한뿌리를 뽑지 않고 키웠다. 한뿌리에서  몇 송이의 하얀 꽃을 피우더니 주변에 퍼져서 몇 뿌리가 번식해 자라고 있었다. 질경이도 꽤 많이 식구가 늘어났다. 민들레와 질경이를 보호하면서 풀 뽑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크로바를 닮은 풀들이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민들레, 질경이만 아끼면서 열심히 뽑았는데 내 손길이 미쳐 따라잡지를 못하였다. 순식간에 번져버린 그 풀들은 대전에 있다가 내려간 봄날, 어느 토요일에 활짝 핀 노란 꽃을 방긋거리며 날 반기고 있었다. 화단 가득 피어난 그 꽃들이 너무 예뻐서 손대지 못하고 좀 즐기기로 했다. 그 얼마 후 꽃이 진 자리에 씨앗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여전히 새로운 꽃을 다시 피우며 "제발 우리 웃음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 하는 듯 경쾌하게 웃고 있는 그 풀들을 보면서 씨앗이 다 익어버리면 내 정원을 모두 점령하고도 남을 거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쁜 꽃에 반해서 잠시 양보했던 내 마음이 원망스러웠다.


그 풀의 이름은 '괭이밥'이었다. 노란 꽃을 별빛처럼 반짝이듯이 피우는 풀은 크로바 잎을 닮았으며 시큼한 맛이 나기도 하는 풀로 어릴 때는 잎을 따먹었던 기억이 있는 풀이었다. 그 풀의 번식력이 그 정도 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작은 괭이밥 잎이 가지고 있는 효능도 대단했다. 알고서는 뽑아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다른 풀들의 이름도 검색하고, 그 풀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집 주변에 저절로 자라고 있는 잡초들을 검색했다. 떡쑥, 쇠비름, 개쑥갓, 곰보배추, 이름도 생소한 잡풀들이 하나같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성분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잡초가 버릴 것이 없었다.


익히 알고 있던 달래, 냉이, 당귀, 방풍, 박하도 집 주변에 저절로 자란다. 달래 냉이는 초봄부터 캐다가 반찬으로 해 먹었고, 당귀는 지금도 고기를 먹을 때 상추와 함께 쌈으로 먹으면 향도 좋고 고기도 느끼하지 않아서 그렇게 먹고 있다. 방풍나물은 풍을 예방한 다하며 봄나물로 인기가 있는 것이라서 여러 번 나물을 해 먹었다. 박하는 잎을 말려서 차로 마시면 개운하고 심신을 안정시켜 불면증에도 효과가 좋다는 말에 그냥 자라도록 두었더니 창고 옆으로 울타리를 이 룰 정도로 풍성하게 자랐다.


아는 풀들은 아는 것이라고 자라게 두었지만, 이제 잡풀이라고 무시했던 풀들조차 함부로 뽑아버릴 수가 없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존재를 알아버린 풀들은 놓아두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만 뽑았다. 혹시라도 나 없는 사이에 예초기를 돌리거나 제초제라도 뿌릴까 봐 남편에게도 신신당부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가 가꾸는 풀들이니까 다치게 하면 안 돼~" 알았다고 대답한 남편은 결국 한 번은 사고를 쳤다. 그것도 귀한 토종 흰민들레를 예초기로 싹 밀어버린 것이다. 번식력이나 자라는 속도가 다른 풀들에 비해 느리고, 노란 민들레보다는 한참 더디게 자라고 잎도 무성하지가 않아 조금 더 공을 들여 키운 풀이었는데 그 애들이 사라지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서운하던지, 다시 한번 당부를 하고 구사일생 남아있는 뿌리에서 새순이 올라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쇠비름                                                                         산딸기
얘는 일반 쑥갓, 꽃이 예뻐서...


박하                                                                 개화한 곰보배추


아무리 귀하고 유용한 효능들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냥 자라게만 해서는 말 그대로 잡초 이상의 대접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했다. 어느 풀은 말려서 차로 마셔야 효과가 있다 하고, 어느 풀은 생즙으로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다. 또 어느 풀은 열에 약하니 끓이는 것을 삼가라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말려서 차로 마시는 것도 꾸준히 하기는 불편한 감이 들었고, 생즙으로 활용하기란 그 기한이 길지 않은 단점이 있었다. 잘못해서 말린 잎을 차로 마신다고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약효가 사라지는 풀을 다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러저러한 단점을 해소하면서 유용한 성분들을 섭취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발효액'이 제격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잘 숙성된 다음에 걸러서 주방이나 거실 즈음에 보관하였다가 생각나는 대로 한잔씩 물에 타 마시는 것이 보관과 활용에서 가장 간단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발효액을 담기로 했다. 대부분 풀들은 설탕과 1:0.8로 섞어서 6개월 정도 재우면 풀의 유익한 성분들의 추출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쯤에 걸러서 실온에 보관하면 계속 숙성이 진행되는데 1년이 지나야 설탕의 부작용 없이 약이 되는 효소가 된다. 발효 중에 마셔도 좋고, 몇 년이 지나도록 오래 두면 더욱 좋다 하니 자주 관리 해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방법이 효소 담기라고 판단된다. 


몇 년 전부터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난 건강한 풀들을 사람에게 유익한 먹거리로 재탄생시키는 숭고한 작업을 계속이어오고 있다. 숙제처럼 내 맘을 두근거리게 하는 '풀 가꾸는 여자'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풀이 자라는 속도와 발효액이 익어가는 시간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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