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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7. 2021

피와 바꾼 병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잡풀인 줄 알았던 병풀의 가치를 확인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병풀 역시도 나를 기다려 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시바삐 병풀의 가치를 높여줄 무언가 액션을 취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마음이 먼저 완도에 가있었던 것이다.


차를 두고 간 남편 덕에 운전을 하고 가면서 병풀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보니 졸릴틈도 없이 완도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옆집 아주머니께서 여주를 한 바구니 따다 놓았다. 좋은 것들이 있으면 발효액을 만든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공들여 농사지은 여주를 아낌없이 주시는 거였다. 지난주에도 한 바구니 주신걸 손질해서 발효액을 담가놓고 온 상태였다. 그리고 다시 자란 여주를 모두 가져오셨다.


얼른 씻어 물기가 빠지도록 바구니에 건져놓고, 친정 오빠한테서 얻어온 열무를 손질했다. 열무가 연하고 맛있는 거라며 김치를 담아서 우리 먹고 한통 달라는 친정오빠의 부탁으로 열무와 얼갈이를 7단이나 싣고 내려갔으니 일거리가 적지 않았다. 서둘러 열무와 얼갈를 다듬어 절여 놓고, 여주를 썰어 즉석에서 설탕에 재우고, 김치 양념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자꾸만 병풀에게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풀아 조금만 기다려, 우선 김치부터 담아놓고 널 보러 갈게"라는 말을 하면서 한 번씩 바라보면 병풀도 알았다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아 저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군데군데 노란빛의 옷을 입고 있는 병풀들이 때를 놓친 노처녀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니 그마저도 이쁘기만 했다.

노란 잎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쁘기만 하다.


소금물에 담가놓은 열무는 금세 숨이 죽었다. 열무도 너무 절여져서 수분이 완전히 빠져 버리면 싱싱한 맛이 없고 김치가 짜지기도 한다. 병풀에게로 가고 싶어 안달이 났어도 김치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서둘러 찹쌀을 갈아 죽을 끓여 식히고, 빨갛게 익은 생고추를 따다가 곱게 갈고, 마늘 다지고, 쪽파, 대파, 양파를 적당한 길이로 썰어 놓았다. 그리고 절여진 열무를 깨끗이 씻어 물이 잘빠지도록 해놓은 다음에 양념들을 한데  버무려 놓으니 맛있는 열무김치가 탄생했다. 잠깐의 시간에 여주 발효액을 담그고, 열무김치를 담고, 집안을 정리하고,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해치웠다. 이제 병풀을 딸 차례이다. 그런데 허리가 아파왔다. 좀 쉬면서 할걸 무리했나 보다 생각을 하며 잠시 누웠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하고 있었다. 병풀을 오늘 따서 잡풀을 고르고 씻어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발효액을 담글 상태가 안된다. 씻은 물이 완전히 빠져야 좋은 상태의 발효액을 얻을 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도 있고, 물기를 몇 번 털어주며 하룻밤을 지내야 것 물이 남아있지 않는 뽀송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발효액을 담글 재료는 하루 전에 씻어서 밤새 물기가 빠지도록 기다려 왔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잎 두잎 노랗게 물들어 가는 병풀을 일주일 더 기다리다간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힘을 내서 몸을 일으키니 좀 쉬었다고 컨디션이 좋아져 있었다. 바구니를 들고 병풀에게로 갔다. "애들아 너무 고마워, 내가 너희들을 알아주지 않아도 이렇게 소복하게 잘 자라 주었구나. 너희들에게 그렇게 많은 이로움이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아봐 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늘 너희들은 세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데 한몫을 하게 될 거야"라고 속삭이며 조심조심 병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잎만 따다 보니 양이 늘어나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원뿌리만 남기고 이어진 줄기를 잡아 따서 한 바구니가 되었다. 그사이 모기들도 이때다 싶었는지 내 온몸에 빨대를 꽂아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병풀 한 바구니에 헌혈 수십바늘 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샤워를 하고 버물리를 바르고 있으려니 공짜인 줄 알았던 병풀 역시도 공짜가 아니었다. 돈 받고 팔 수 없는 내 피의 댓가로 얻은 것이 병풀이었다.

모기에 쫒겨 막따온 병풀과 잡풀을 골라내고 진짜 병풀만 모은것


병풀은 다듬으며 보니 아주 연한 풀이었다. 눈으로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었다. 향은 미나리와 어성초의 중간쯤 되는 향기였던 것 같다. 약간은 비릿하면서도 풋풋한 향기가 연하게 났다.

깨끗이 단장한 물오른 병풀의 잎들은 날개옷을 입고 하늘에 오르기라도 할 듯이 보였다. 밤새 날아가면 안 되니까 잘 덮어서 하룻밤을 재우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병풀들은 시집갈 마음에 들떠서 잠을 못 잔 건지, 안 잔 건지 파릇파릇한 잎들이 빛나고 있었다. 물도 잘빠져 있어서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바로 설탕 옷을 입혀 주기로 했다. 저울에 달으니 병풀만 2킬로그램이었다. 설탕도 2킬로그램이면 이쁜 병풀 발효액의 딱 맞는 옷이 될 것이다. 설탕의 일부는 병풀에 직접 잘 발라 통에 재우고, 일부는 이불 덮듯이 위에 폭~ 덮어서 마무리하였다. 잘 자고 나면 여러 병을 다스리는 권력을 가진 병풀액으로 태어날 것이다.


발효액으로 태어날 준비 완료 / 내년에는 저 바위틈을 꽉 채우도록 군데 군데 뿌리를 옮겨 심었다.


그리고 아직 한 가지 할 일이 남았다. 병풀을 채취하면서 딸려온 뿌리 부분을 따로 모았었다. 내년엔 더 많은 병풀들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 이식을 해주기로 했던 것이다. 군데군데, 병풀이 살기에 좋을 것 같은 곳을 골라서 심고 물을 주었으니 줄기식물의 특성상 잘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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