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짠지 15

미륵에 맡긴 날개 옷

by 강현숙

나는 문득 두려웠다.

내가 다 갚지 못한 전생의 빚, 그 업보가 다시 내 딸에게 대물림된다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눈으로 흐르는 짠지국물을 맨손으로 훔쳤다. -네 남편은 아버지 처럼 손찌검은 안 했잖아?- 라는 울림이 귓가를 스쳤다. 돈 주머니도 내게 있다. -그럼 엄마보다 네 삶이 좀 나은 거 아니야?- 어쩌면 엄마가 지은 전생의 빚이 말도 안 되는 아버지 횡포에도 비위를 맞추며 우리들을 키워 낸 것으로 조금 갚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전생의 빚! 기억도 안나는 전생의 빚이 내 삶에서 이자가 불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그러지요. 짠지 간기 빼듯이 서방 구슬려 가며 살아 보지요.”

아들은 4년제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전망 있는 회사에 취직해 나의 커다란 자랑거리가 되었고, 딸은 선하고 말수 적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살고 있다. -엄마! 김서방 월급통장은 내가 갖고 있어, 일만 하지 돈은 신경도 안 써- 하면서 가끔 화장품이나 등산복 같은 걸 사서 보내오는 걸 보면 사위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잘살고 있는 것 같다. 제발, 내 팔자만 닮지 않기를 바라는 그것이 유일한 나의 기도가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속을 썩이고 내 주머니 돈 나가게 만드는 남편이 전생의 내가 지은 빚 때문이라면, 그 빚이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모두 갚으리라는 다짐이 마음속에 차오른다.

맨 아래 빠져나온 돌 하나를 집어 미륵불 발치에 놓았다.

“엄마의 날개 옷 맡아 주신 것처럼 제 날개 옷도 맡아주세요.”

산등성이에 걸린 석양의 긴 그림자가 뭉툭해진 미륵불의 입술을 끌어올려 소리를 내어 웃는 듯하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까짓 거, 짠지 간국 빼 먹듯이 한번 살아 보자!-

나는 힘을 주어 엑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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