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방향을 잡아 달렸다. 시원한 저수지를 따라 잘 닦인 아스팔트길이 펼쳐졌다. 군데군데 경치 좋은 위치마다 ‘ㅇㅇ펜션’이라는 간판을 단 건물들이 보인다. 이 길 끝에 내가 6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살던 산골집이 있다. 내 차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미륵불에서 멈추었다. 누군가 보수를 했는지 무너져 가던 돌무더기들이 단정하게 쌓여 있다. 여기서도 30분은 더 걸어가야 그 옛날의 집이 있던 곳이다. 차에서 내려 서산으로 넘어가는 빛을 안고 있는 미륵불을 향해 합장을 했다. 내 그림자가 미륵불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엄마 날개옷 잘 있나요?”
그 시절 엄마는 새벽 일찍 빈 광주리를 이고 나가 읍내 장에 가서 생선을 받아 이고는 촌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생선과 곡식들을 바꾸었다. 초등학생 내가 칭얼대는 막내를 업고 엄마를 마중 나가 걷다 보면 어느새 미륵불까지 와 있었고 길은 어두워졌다. 집으로 돌아갈래도 무서워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뒹구는 돌을 집어 미륵불 발치에 놓으며 ‘엄마! 엄마!’ 하며 울었다. 한참 울다 보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깡숙아~ 엄마 여깄다~. 막내야 엄마여~.”
자갈들이 자그락 자그락 소리가 나도록 바삐 걸어오는 발소리를 향해 나는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어갔다. "엄마 오셨다. 막내야 엄마 목소리 들리지?"
어둠 속에서 엄마를 만나면 엄마는 생선 비린내 나는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문질러 주고, 등에서 막내를 받아 달래어 업고, 무거운 광주리를 이고, 나를 앞세워 집으로 오셨다.
미륵불을 지날 때면 엄마는 꼭 돌을 집어 올리셨다. 나도 엄마를 따라 아까 올린 돌 위에 또 다른 돌을 올렸다. 미륵불이 엄마와 내 등을 바라보고 있는 그 길은 깜깜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엄마의 광주리 속에 가득 담긴 곡식들과 팔다 남은 생선들이 아버지가 집어던질 밥상을 붙잡아 줄 거라는 생각에 자갈길에 발톱이 부딪혀도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땀 냄새와 비릿한 생선 냄새들이 엄마의 냄새가 되도록 억척스럽게 한량 같은 아버지와 7남매를 먹여 살리던 엄마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그 미륵불이다.
“정말 엄마처럼은 안 살고 싶었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미륵불을 바라보았다. 수백 년은 되었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지만 마시고 말씀 좀 하셔요. 엄마처럼, 나처럼 사는 게 전생의 빚 때문인가요? 엄마가 다 갚지 못한 빚을 제게 받으셔야 하나요? 제가 갚지 못하면요? 그럼 제 딸에게서도 받아내실 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