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일을 마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장모님 밥이 먹고 싶다고 친정에 가자고 한다.
안 그래도 늙으신 부모님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걸쭉한 앙금이 쌓인 듯, 개운치 않았었다.
이럴 때 친정에 가자고 먼저 말해 주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남편 마음이 변할까 봐 밥 먹다 말고 얼른 전화를 걸었다. 보란 듯이 엄마랑 통화를 해서 번복하지 못하게 해 놓고 설거지를 하고, 세수하고, 옷 갈아 입고, 가방 챙겨 나서는데 30분도 안 걸렸다. 자동차 키만 챙기면 되는 남편은 아직도 "잠깐만, 잠깐만"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과 서산 엄마 집 까지는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이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 뵈러 갈 시간은 왜 그리도 없는지 모르겠다. 운전하는 남편 옆자리에 앉아 어딜 갈까? 무얼 먹을까? 수다를 떨며 엄마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난다.
"나가서 먹자니까 뭘 하셨어? 힘든데 갈비라도 먹으러 가게 그냥 계시지..."
장모님 밥 먹고 싶다는 남편도 꼭 엄마가 직접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마누라에게 선심 쓰듯 그리운 엄마 얼굴 한번 보도록 해 주겠다는 착한 생각이었던 거 말하지 않아도 안다. 투덜대며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겨우내 묵혀 두었던 배추김치에 마늘과 들기름 적당히 넣고 쌀뜨물 부어서 부글부글 끓이고 있는 묵은지 찌개였다.
30여 년 전부터 무, 배추, 쪽파 등을 산지에서 출하하는 업을 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김장철이 끝나고 나면 밭에 남아있는 푸성귀 배추들이 많았다. 알뜰한 우리 엄마는 속이 꽉 차지 않아 설렁설렁한 배추를 뽑아다가 김장을 하셨다. 그래서 엄마의 배추김치는 하얀 속살보다 파란 겉잎이 많은 경우가 더 많다. 양념을 진하게 하지 않는 엄마의 파란 잎이 많은 배추김치는 식감도 좋고 맛도 빨간 양념에 범벅되어 먹음직스러운? 김치보다 훨씬 개운하다. 팔다가 남은 못생긴 배추들로 김장김치를 담그니, 양념김치를 담고 나서도 푸른 잎만 가득한 배추는 남아돌았다. 그마저도 아깝다고 엄마는 이번엔 소금과 고추 씨앗으로만 김치를 담아 뒤꼍에 묻어놓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눌러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엔 볏잎을 씻어 항아리에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채워서 겨울 동안 잊고 지나간다. 이 김치를 배추 짠지라 불렀고, 이 짠지는 다음 해 6월이나 되어야 빛을 보게 된다. 양념이 귀하던 시절, 소금으로만 담근 배추짠지는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다음에 생으로도 먹었고, 볶음이나 찌개로도 먹었다. 깔끔하고 개운한 그맛이 한여름 최고의 반찬이었다.
겨울 동안 사이다 같은 동치미와 삼삼한 배추김치가 입맛을 돋웠다면 봄에는 잘 익은 김장김치가 밥상에 오른다. 항아리에서 막 꺼내온 김치는 가지런히 썰어서 금방 먹으면 아주 맛있다. 썰어놓은 김치를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남은 것은 들기름 넣고, 쌀뜨물 잘박 잘박하게 부어서 아궁이 속 숯불에 보글보글 지져먹으면, 그 냄새 만으로도 입맛이 살아난다. 아무리 맛있어도 이 김치가 계속해서 나올 수는 없는 일, 잘 익은 배추김치마저 떨어지면 텃밭에 키운 열무가 김치가 된다. 갓담은 햇김치는 처음엔 산뜻하지만 얼마쯤 먹다 보면 다시 김장김치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엄마표 배추 짠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때이다. 첫 빛을 받은 짠지는 노란 속살에 초록 옷을 걸친 듯이 산뜻하게 등장한다. 해를 묵혀 먹기 위해 담그는 김치라서 소금을 넉넉히 넣은 짠지는 그대로 먹으면 이름 그대로 짜다. 우물물을 길어다 미리 헹구어 담가 놓아야 한다. 한나절쯤 지나고 나면 먹을 수 있는데 아삭아삭한 그 맛은 생으로 먹어도 없던 입맛이 돌아온다. 여기에 들기름 넣고 마늘 몇 쪽 넣어서 지지거나 볶으면 그대로 밥도둑이 된다.
결혼 후 상상만으로도 침샘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초여름 이면 엄마 집 항아리의 짠지를 한통씩 꺼내오곤 했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힘이 든다고 땅속에 묻을 만큼 김치를 담그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전처럼 짠지만으로도 만족하던 입맛이 변하여 삼삼하고 달달하고 고소한 음식들을 더 먹게 되니 짠지가 그리 대접을 못 받는다. 그런 이유로 어느 해부터는 두 세 항아리씩 담그던 짠지를 작은 항아리 한 개를 채울 정도밖에 담그지 않으시니 우리 집으로 가져올 것이 없다. 아쉬운 마음에 어설픈 솜씨로 가을에 직접 담가보기도 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엄마의 짠지 맛은 따라갈 수가 없다. 도시생활에 항아리 묻을 공간이 없어 냉장고에 보관을 해서 그 맛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엄마의 정이 담기지 않아서 맛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마의 김치가 맛있는 건 '엄마의 정'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묵은지 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웠지만 딸에게 먹이려고 굽어진 허리로 주방을 오가며 요리하고 있는 엄마 모습이 속이 상했다. 그냥 맛있는 거 해줘서 고맙다고, 맛있게 먹으면 될 일을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려고 했는데 뭐하러 반찬을 만들어?" 하고 투덜댔다. "나가서 사 먹어봐야 개운치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는데 돈 쓰러 다닐 거 뭐 있냐?"라고 하신다. 무엇이든 부족한 시기를 살았던 엄마는 밥값 얼마 쓰는 것도 아까워하신다. 여기서 한마디 더 하면 엄마는 두고두고 서운해하실걸 알기에 입을 다문다. 그리고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지 생각하며 수저를 든다.
그런데 사실, 엄마가 차려준 밥은 의도하지 않아도 없던 식욕까지 불러온다. 묵은지 찌개 앞에 왕성한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엄마가 퍼주는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반 그릇을 더 먹었다. 함께 갔던 입 짧은 남편도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맛있게 먹는 딸과 사위가 흡족하셨던지 엄마는 그저 우리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그 김치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구순을 바라보는 노구의 엄마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더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달고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져 있으면서 더 맛있는 거, 더 특별한 것을 찾아 먹으러 다녀 보지만 엄마 집에서 먹는 밥만큼 속도 마음도 편안한 밥은 없는 것 같다.
엄마의 손맛은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위로한다. 간간히 소박한 엄마의 밥이 그리워질 때면 지쳐있는 나를 발견한다. 삶의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되어주는 엄마의 밥!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밥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