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는 꿈꾸기 좋은 나이

나를 나답게 하는 꿈을 꾸며

by 강현숙

작년, 귀촌의 꿈을 안고 완도의 한 섬에 집을 마련했다. 그것도 도시인이라면 한 번쯤 꿈꾸었을 전원주택을 구입했다. 지금 나는 그 집에 살면서 50대의 꿈들을 실현하며 멋진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너무도 가혹하게 가난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고아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분들도 아니었는데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아버지가 군대에 계신 20대 초반에 모두 돌아가셨고 엄마의 아버지께서는 엄마가 처녀일 때 남의 돈은 한 푼도 벌어 본 적이 없는 엄마의 엄마께 6남매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조실부모한 외아들인 아버지와 맏딸이며 가난한 집 처녀 가장인 엄마가 혼인을 하셨는데 한 분뿐이신 고모가 고모집 마당을 빌려주어 초례를 치르시고는 숟가락 하나도 물려받은 것 없이 신혼살림을 차리셨다고 한다. 요즘 말로 흙수저 하나 없이 살림을 차리신 것이다.


다행히도 처녀가장 이셨던 엄마의 생활력으로 어찌어찌 살 수는 있었지만 하나둘 늘어가는 자식들 건사하며 좀처럼 살림살이는 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가난 속에서 둘째로 태어난 나는 엄마의 강한 생활력을 물려받아서인지 당시 국민학교만 졸업한 채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본능과 부딪혀 몸도 마음도 지치기만 했다. 어떻게든 잘살고 말리라는 오기만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있었다.


그런 내게 들어온 돈은 한 푼이라도 허튼곳에 쓰이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가난한 개인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잠도 포기하고 잔업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건 쥐꼬리만 한 보수였다. 그것도 감지덕지하며 쪼개고 쪼개어 적금으로 넣은 돈은 기한이 되기 전에 이미 쓸 곳이 생겨 만기를 채우고 받은 적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부자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가난한 여자가 꿈꾸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도 세상이 변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여자들이 변했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부터 여자들이 할 말을 참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에게도 꿈꿀 자격이 있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의 숨겨진 꿈들도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새치머리가 검은 머리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관절 마디마디가 욱신거려 몸으로 일기예보를 할 지경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며 내 속에 숨겨진 꿈들도 세상 구경 한번 시켜주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틈틈이 누가 알 세라 몰래몰래 한 과목 한 과목씩 검정고시를 보아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해 놓았던 나는 45세가 되어 비로소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등록했다. 대학 졸업장을 갖는 것이 꿈이었고 대학 졸업장이 있다면 나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좀 더 빨리 오리라 생각했던 나는 열심히 후회 없이 공부했다. 학과 공부 외에 해보고 싶었던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도 쉬지 않고 했다. 멋진 직업을 가지고 싶었고, 멋진 중년을 살고 싶었다. 문화관광해설사, 효지도사, 전통놀이지도사, 향토사 연구원, 명문고 사감 교사 등은 대학을 다니면서 취득한 자격증으로 활동을 하였다. 그 시기는 지역사회에 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 5권을 발행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나는 信奉한다.


그동안 공부하며 통장의 잔고가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내 재산을 마련하기 위한 직업으로 전향하기로 했다. 과감하게 명예롭고, 소박한 안정을 주던 직업들을 정리하고 상인으로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올해로 상인이 된 지 5년째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재산을 마련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될 만큼 돈도 모아졌다. 이제는 좀 더 의미 있는 꿈을 실현해 보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상인으로서 탄탄한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해 준 지역 '완도'로의 귀촌이다. 완도의 산물들을 취급해 돈을 벌었으니 이제 그 돈으로 완도 땅에 소비하고 완도의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완도의 한 섬에 가장 젊은 사람이 70대라고 할 만큼 노인들만 사는 곳에 터를 마련했다. 자연의 풍성한 혜택을 힘이 달려서 누리지 못한다는 그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계획이다.


50대 중반을 넘어섰다.

젊을 때 꿈꾸었던 꿈들마저 갈무리해야 하는 나이라고 예전엔 생각했었다. 지금에 이르고 보니 50대는 꿈꾸기 가장 좋은 나이이고 꿈을 꾸어야 하는 이유도 많다. 꿈을 잠시 놓아버린 어느 순간 삶의 의미도 함께 사라졌었다. 한동안은 우울증과 신경통으로 병원을 전전하며 간신히 숨만 쉬던 시기도 있었다. 꿈꾸기는 어느 병원의 처방약보다도 월등한 효과를 발휘했다. 일 때문에 여행 갔던 완도에서 아직 내가 할 일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몸도 정신도 그 어느 때 보다 건강해졌다. 나는 이제부터의 삶을 봉사하며, 글 쓰며, 지나온 삶의 경험들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지금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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