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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채운 Aug 13. 2024

클레마티스,당신은 진실로 아름답다.

꽃을 받으면 모두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날 아니라고 했다.


발표 모임의 마지막 시간, 모두의 마음 속 꼭꼭 숨겨뒀던 이야기들을 말하는 시간이 왔다. 아무리 단단해보이고 밝아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사람인지라 속에 멍울 하나씩은 있다. 그것을 언어로 꺼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의 상처를 말하는 것은 처음엔 가만히 두어도 쓰라린 상처를 헤집는 기분이었다. 꺼내놓는 것이 두번이되고 세번이 되면 그제야 상처에 딱지가 붙는다. 다른이들에게 말해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아픈 이야기를 꺼내기 앞서 나는 꽃을 준비했다. 원래도 나는 종종 꽃 선물을 즐긴다. 연인에게는 물론, 친구나 부모님에게도 뜬금없이 꽃을 사 내밀었다. 꽃을 받으면 모두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날 아니라고 했다. 꽃을 받은 날은 잠자리에 들때까지 기분이 좋았다. 아니, 그 주는 내내 기분 좋은 일만 생겼다. 꽃이 주는 행운 같은 기분. 나는 속에 든 이야기를 꺼낼 사람들이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길 바랐다. 당신은 진실로 아름답다. 꽃말도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에 더할나위없이 어울렸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불안을 앓던 분은 잘 해야겠다는 부담을 어느정도 내려놓고, 불안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어느정도 편안해졌다 하셨다. 그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우울과 불안은 외면하면 외면할 수록 저 여기 있다며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그래, 이런 마음도 있는거구나. 이럴 수도 있는거구나. 인정하자 마음이 나아짐을 느꼈다.  몸이 아프면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왜 마음이 아플 때는 쉴 시간을 주지 않았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허덕이는 마음에게 쉬지말고 이어 뛰어가라고 다그친 꼴이다. 


어린 시절 몸이 아파 병원에서 지내던 분은 나의 아픔을 듣고는 몸이든 정신이든 아픔에 갇히면 아무리 주변에 즐거운 것이 많아도 그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픔에 갇힌 그 기분을 알 것 같다면서. 

대학 시절 호주로 떠났던 분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와 심적인 부담감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 많은 세상을 경험할 있었다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자. 마음의 쉼표를 잠시 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자 했다. 


모두가 반짝였다. 클레마티스 꽃처럼 모두가 진실된 아름다움으로 빛이 났다. 삶을 진심으로 대하며 고민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단단해 보였다. 괴테는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 맛을 모른다 했다. 고통을 겪은 자만이 산다는 것의 맛을 안다. 슬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밉기만 하던 우울이 내게 남긴것이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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