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머리를 쓰고 크고 작은 감정적 대응을 해온 날이면, 잠들기 전엔 온몸이 뻐근하고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내가 밖에 내어놓는 충분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매 순간을 전력을 다해 달렸고, 요즘도 그러하다. 방황을 하는 시간들은 있겠지만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도,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고, 타인의 감정에 잘 전이되며, 가끔은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푹 내쉴 정도로 나 자신이 작아 보일 때도 많다. 종종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저 이거 좋아해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선언해야 하는 작은 순간들에도 ‘이 사람이 봐온 나는 이게 아니면 어쩌지? 이 사람은 이걸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다.
이번 주 월요일 [도해치]의 일명 MEGA WORKSHOP이 있었다.
[해]의 공간에 도착하니 이미 [치]가 물건들로 가득 찬 케리어와 프린터 그리고 여러 권의 잡지들을 준비해두었다. [치]의 어마어마한 준비에 우리는 오늘 또 어떤 워크숍을 하게 될지 들뜨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회의부터 [유재희, 유]도 함께하고 있다. [유]는 우리의 영면지도 전시에 AR 크리에이터로 함께한다. [유]와 [도해치]는 AR 기술을 활용하여 관객 참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필터를 만들어보고자 논의 중이다.
(이전 글들에 쓰여있듯)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를 알아보고,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세상에 남기고픈 가치를 알아간 후 무령왕이 남긴 업적과 그 업적들이 어떤 가치로 연결되기에 더 빛날 수 있었는지를 함께 고민해보았다. 그 마지막으로 [치]가 준비해준 워크숍은 잡지를 보고 우리가 우리 무덤에 남기고픈 것들을 오려내고 도화지를 무덤의 도면 삼아 배치해보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잡지들을 돌려보며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 어느 것을 오려서 가져가야 할까? 매거진의 특성상 화려한 이미지, 셀럽들의 이야기,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들이 담겨있어 그 중 어느 부분을 취해야 할지 조금은 고민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의미들이 화려함에 가려져 온전히 전달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런 고민도 잠시 [치]는 우리에게 제한 시간을 주었고, 우리는 각자 다른 다양한 부분들을 오려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잡지에서 취하고 싶었던 부분은 김우빈 배우의 인터뷰 표지였다. 표지에는 “Gone and Come 김우빈이 떠나보낸 것, 받아들인 것”이라는 제목과 그 아래 그 글을 위하여 수고해준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사진 작가분들의 크레딧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제목을 보자마자 누군가 나를 애정있게 봐와 준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글과 사진들을 적어주었으면 했다. 내가 해가는 일들의 특성상, 내가 설명하는 ‘나’와 내가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호소하는 ‘나’의 그럴듯한 모습들이 이제는 너무 당연하지만 가끔은 그 시간만큼 지치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가 죽고 난 후에는 나를 당당하게 소개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봐온 이들의 시선에서 내가 설명되길 바란 것 같다. 그 글과 사진들이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서로 다른 잡지에서 꽃의 흑백 이미지와 비슷한 꽃을 여러 사람들의 손으로 잡고 있는 이미지를 가져와, 개인으로 기록될 나의 모습과 내가 그렇게 필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들이 기록되길 바란다는 뜻을 담아보았다. 또한, 내가 함께 작업해온 작가분들의 작품이 함께했으면 한다는 생각하는 순간 “보문동 합장분 굵은고리 금귀걸이”의 덧댐 룩북 제작에 참여해주신 윤여동 작가님의 작품을 매거진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참 신기하다. 우리는 또 한동안 운명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이외에는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물건들, 내가 쓴 나의 기록들이 담긴 노트와 상자, 나라고 기억될 수 있는 향 등을 붙여보았다.
[해], [치] 그리고 [유]가 솔직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어주어, 나 또한 나의 취향들과 담고 싶은 의미를 다양한 물건들을 정리해 붙여두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조금 웃긴 일화를 공개하자면, 중앙에 나로 표현된 얼굴 그림이 입혀질 이미지의 옷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매거진 속에서 찾은 몇 가지 후보를 공유하였다. 세심한 장식이 있는 긴 검정 드레스, 화려한 퍼프 소매가 포인트인 화이트 드레스 그리고 사진 속의 핑크 투피스. [해], [치], [유]는 정말 망설임 없이 ‘연희는 이거지!’라며 핑크 투피스를 골라주었다. 사실 나도 저 옷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또 우리의 여정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노출될 타인의 시선들을 신경 썼던 듯하다. 나를 잘 알아주는 동료들 덕분에 당당하게 ‘나’에게 옷을 입혀줄 수 있었다.)
워크숍을 마친 후에도 우리는 ‘무령왕릉의 유물들은 그들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주었는데, 현대에는 권위와 지위를 무엇으로 나타내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람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들,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 등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구나를 다시 한번 깨달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라 답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치]가 창작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자 서로를 알아갈 기회였던 이 워크숍들을 직접 해보고 나니, 이 얼마나 의미 있고 실효성이 있는 탄탄한 워크숍들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기회를 만들어 가볼까도 싶다.)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자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작년부터 무령왕릉에 대해 고민해오고 올해 전시를 준비 중인 우리는 이 시기가 착착 맞아준다는 점도 매우 고맙고, 우리가 무령왕릉을 알아가고 나누는 여정에 시너지를 내줄 것이라 믿는다.
[도해치]의 [도]
기획자 도연희
팔로팔로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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