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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석 Feb 18. 2023

작문 연습: 추도사

참사에서 일어서는 데 우리는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까요?

20년 전 오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불이 나 19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주야장천 보는 7살짜리 아이였고, 그에 걸맞게 텔레비전에서 모든 뉴스를 다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무척이나 안전에 민감했어요. 전 참사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우리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보았습니다. 왜 우리는 붕괴를 다시 한번 봐야 했을까요? 무엇이라고 단언할 식견이 제게 없지만,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무능, 직업윤리, 책임감의 집단적 마비”란 표현이 제게는 진실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영화평론가 김혜리 씨가 <마션>을 보고 남긴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마션>은 2014년이 1년 지난 2015년에 개봉했죠.)


교훈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폐허에서 일어서는 데 우리는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까요? 지난해 11월, 저는 이태원에서 CBS <씨리얼>의 카메라를 바라보며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백 일이 지났음에도 세상은 아직 혼란스럽고, 아끼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비통함만 풀리지 않은 채 남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다 보면 절로 할 말을 잊고 턱을 무겁게 괴게 됩니다.


제가 도달한 방법은, 흔해 빠진 방법이지만, 기억하는 겁니다. 다양한 방법을 뭉뚱그린 모호한 말이고 지금껏 역사가 숱하게 배신해 온 말인데도, 이 방법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하기 쉽고 또 효과가 좋은 방법은 제가 알기로는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더 나은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느낍니다. 지하철 내장재가 불연재로 바뀌고 개폐장치 위치를 명확하게 표시하게 된 것처럼, 거리를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는 더 강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를 추모하며 사망자의 명복과 생존자, 현장 구조활동자의 쾌유를 빕니다. 더욱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바랍니다.


+ 김혜리 씨는 위 문장 뒤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개인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상태는 당사자의 의지와 태도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희망과 의욕의 토양이다.”

 김혜리.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중 <감자별>. 씨네21. 2015년 11월 5일.


+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지진으로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분들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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