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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래청 Aug 18. 2020

이루지 못한 약속

꼭 다시 만날 것이라 기다렸는데... 


필사모라 불렀지요.


'꼭 몸이 좋아지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가 볼게요.'

'그러세요, 꼭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렇게 우리는 1년 6개월 전 약속을 했다.

그때가 2018년 12월,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지만 세상의 거리는 화려한 불빛을 발하는 성탄의 빛과, 한 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때였다. 우리 부부가 곧 킬링필드의 낯선 땅 캄보디아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필사모'의 모임을 우리 부부 때문에 저녁 식사를 잡은 것이다.


20년 전 교회에서 필리핀으로 청년 등 32명이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우리 가족은 공연 때문에 함께 동행했다. 이때 다녀온 어른 성도 몇 명이 필사모라 부르며 자주 만남을 가졌다. 장로님 부부와 당시는 안수집사였지만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부부와 우리 부부, 또 1명의 권사님 이렇게 필사모가 자연스럽게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분당의 한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땅 캄보디아 나라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참 세월도 빨라요, 우리들이 필리핀에 다녀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 사모님께서 얘기했다.

'이제 필시모에서 캄사모로 바뀌야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그래요, 가셔서 자리 빨리 잡으시고 안정되면 우리 꼭 방문할게요.' 하면서 막내 김 권사님이 예기한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념사진도 각자 휴대폰에 담았다.


낮선 캄보디아 땅에서 살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부부는 캄보디아 땅 씨엠립에 도착했다. 덥고 환경이 다른 땅에서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 크메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매주 1회 정도는 김 권사님과 카카오톡으로 통화를 했다. 한국의 모든 소식은 김 권사님으로부터 들는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늘 아내와 그렇게 대화를 했다. 그분은 5년 전 백혈암 수술을 받았으며 이제 4년째 되어간다. 수치가 떨어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집으로 와서 늘 그랬듯이 아내와 통화를 했다.


2주 전 다시 전화가 왔다. '사모님, 수치가 내려가는데 내일 병원에 가봐야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네, 기도할게요' 아내가 대답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캄보디아부터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끝었다.


꿈을 꾸었다.
그리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3일전 꿈을 꾸었다. 또 한 분이 하늘나라도 가는 꿈을...

예감을 했지만 아내에게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3일 전부터 새벽에 카톡 문자를 확인했다. 수십 통의 글들이 와 있지만 김 권사의 소식은 없었다. 어찌 보면 병원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다른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김 권사님 어제 늦은 밤 하늘나라 가셨어요'


그분과 만난지 20년이다. 아내랑 자매처럼, 친구처럼 지냈다. 건강도 좋지 않은데 우리의 캄보디아 생활을 위해 매월 15명의 지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관리하며 보내주셨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셨다.

캄보디아 아이들 메주 만나 종이접기 등 문화 활동을 한다.

'사모님, 마음이 통하는 몇 분과 꼭 캄보디아에 갈게요' 하면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하고 어제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아내가 많이 울었다. 그래, 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는구나. 인생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이 떠 오른다. 이루지 못한 약속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픈 하루다.


'권사님, 이제 눈물도 시기도 질투도 병도 없는 천국에서 주님과 편히 쉬세요. 그동안 저희 부부를 위해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곳 캄보디아에서 하고자 하는 일들을 다 이루고 저희들도 곧 갈게요. 우리 그때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살아요.


창넘어 비가 오는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 씨엡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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