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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May 07. 2022

어버이날에 꽃을 사 와 공연히 기분이 상했다.

내일이 어버이날이기에 엄마한테 꽃을 선물하려 잠시 외출을 했다. 아는 꽃집 사장님께 예약주문을 하고 오후 2시까지 방문을 하기로 약속을 해뒀기에 어쩌다 점심시간에 나가게 됐다.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 건 이것부터 시작이었다. "점심을 나가서 먹고 올 것도 아니면서 점심시간에 맞춰 외출이라니 너도 참 시간 개념이 없다." 언제나처럼 엄마의 말투는 독설에 가까웠다. 다정하게 말하기란 엄마의 선택지에 없으니 난 그러려니 하며 아니, 욕먹을 걸 예상하며 꽃집 사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실 나도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는 게 점심을 먹고 가거나 아니면 점심 먹기 전에 다녀왔으면 이런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일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늘 그렇다. 해야 할 일 리스트는 만들어 두지만 그걸 시간계획까지 짜서 완벽하게 어레인지하는 타입은 분명 아니다. 모든 걸 계획하고 시간을 구성하며 사는 언니나 엄마와는 정반대이니 그들에게 난 한심하게 보이는 것이 어쩔 수 없다. 꽃집이 멀지는 않지만 가는 버스가 마땅치가 않아서 가는 길이 참 애매하다. 이럴 땐 어서 다시 운전을 해야 한다고 마음 먹지만, 내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태로울 때 하필이면 운전을 시작해서 사고 날 뻔한 적이 있어서 엄마는 내가 운전하는 걸 못마땅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필사적으로 말린다.


지도를 한참이나 보며 버스 시간을 체크해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그리 멀지도 않은 꽃집에 도착했다. 친한 친구가 동네에서 꽃집을 하지만, 엄마의 취향은 아닌 것 같아 다른 곳에서 사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인스타 스토리에 꽃 사진을 찍어 올렸겠지만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혹은 눈치 보는 마음으로 사진은 나 혼자 간직했다. 최근에 손예진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작약이 예쁘게 나왔다. 엄마는 그 장면을 보며 작약이라는 꽃이 참 예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사장님께 작약을 넣어서 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가 정확히 원하던 작약은 연핑크색이었지만, 코랄 작약만 있다고 해서 그거라도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꽃집 사장님은 처음에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자분이 세 분이나 계셔서 나는 사장님이 안 계신줄 알았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바라봤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짧은 안부를 나누고 지역화폐로 결제를 한 후 꽃다발을 바로 들고 나왔다. 인연이 있는 사장님이라서 혹시나 더 대화를 나눌까 싶어 대화 소재도 생각해갔는데 바빠 보이는 틈에 그럴 시간은 갖지 못했다. 꽃을 사고 나서 그 골목 근처에 한 먹방 유튜버로 인해 핫해진 호두과자를 한 박스 더 사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작약이란 꽃은 바로 만개하는 꽃이라고 해서 얼른 집에 가야 했다.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소지품을 (특히 할 것들을) 챙겨 다니는 게 마음이 편한 기질이라 읽고 싶은 책 두 권을 챙겨 나왔는데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혼자 꽃을 사는 일도 선물하는 일도 많은데 꽃을 들고 다닐 때의 기분도 좋아하는 편이다. 조금 번거로운 일이긴 하지만 꽃을 들고 다니는 기분은 왠지 특별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시선도 좋게 느껴진다. 마을버스에 타서 꽃을 바라보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마침 그 버스의 종점이 거의 다 되었는지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먼저 승객들에게 여기서 내려야 하는 손님들 안 계시냐고 말을 거셨다. 함께 탄 아주머니들은 자기네들은 더 가서 내려야 한다며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막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던 터라 아저씨께 다가가서 여기서 내려줄 순 없냐고 여쭤봤다. 아저씨께서는 다행히도 내려주시겠다 하시면서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지금 꽃을 사면 상하지 않느냐고 걱정하셨다. 나는 그런 관심이 정겨워서 오늘 드릴 거라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왠지 이 꽃을 들고 전해줄 엄마한테서 보다 더 따뜻한 관심을 받은 것 같다는 직감을 했다.



버스를 하나 더 갈아타고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이리저리 예쁜 각을 찾아 꽃다발을 찍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으로 들어가자 점심메뉴로 먹겠다고 했던 잔치국수 냄새가 났다. 나는 들어서면서 "점심 다 먹었어?"라고 물었고, 엄마는 이제 막 먹기 시작했다며 너는 국수 삶아서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곧 올 거니까 내 것도 해놓으라니까"라고 이야기했지만, "너는 너무 대중이 없어서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럴 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가방만 방에 내려놓고, 햅피 패런츠 데이~ 를 외치며 꽃다발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엄마는 나갈 때부터 핀잔을 줬던 게 약간 민망했던지 "이거 사려고 나갔다 온 거야?"라고 하면서 비싸게 뭔 꽃을 사느냐고 하면서 "에그-"한 마디 했다. 방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니 에그 한 마디가 다냐면서 엄마를 나무랐더니 "고마워~" 하며 소극적인 표현을 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작약 좋아하는 것 같길래 일부러 그거 넣어서 만든 거야~"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래 예쁘다"면서 "작약이 예쁘다"라고 했다. 왜 친한 친구 꽃집에서 사지 않고 다른 집에서 주문을 했는지도 이야기했다. 엄마는 여기 꽃이 더 마음에 든다면서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넉넉하게 하지 않았다. "꽃을 사러 갈 거라면 카네이션 한 송이면 충분한데 뭐하러 비싸게 꽃다발을 사 왔느냐"며, 밥을 챙겨주다가 돌연 티브이로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리액션하는 내 모습에 짜증을 냈다. "너는 밥을 먹을 거면 밥만 먹을 것이지 왜 티브이를 보면서 엄마 놀라게 이상한 소리를 내느냐"라고. 나는 오늘 일어나서부터 아니 어제 저녁부터 엄마의 내 모든 걸 통제하려는 태도에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밥 먹는 것부터 방에서 뭘 하는 것부터 나가는 것부터 뭘 사는 것까지 다 잔소리를 들어야 하느냔 말이야. 어버이날이니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서 혼자 상한 마음을 안고 엄마 곁으로 가는 것을 피했다.


나는 정신적 어려움이 극도로 드러났을 때 가족들 사이에 있었고, 가족들은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내 컨디션과 반응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은 걱정을 하는 것일지 몰라도 나는 지나치게 통제받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면 엄마 얘기만 한다. 나의 관계의 불편함의 시작이자, 스트레스의 뿌리이며,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이자, 내게 바라는 것은 수도 없이 많고, 도저히 소통은 되지 않는 관계, 엄마. 나는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관계의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고, 대부분의 상처의 시작은 엄마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가면 그토록 엄마와의 에피소드만 털어놓고 온다. 남들은 아빠가 그런 존재라고 하는데 나는 엄마다. 너무나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왔던 그러나 단 한 번도 소통해본 적 없는 사이가 엄마다. 애증의 시작이고, 미워하지만 맘 놓고 미울 수 없는 존재.


상한 마음은 꽃다발을 정리해서 화병에 내 식대로 예쁘게 꽂는 일로 풀었다.

어버이날에 꽃을   공연히 기분이 상했다. 아마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너무도 달라 서로를 이해할  없는 것인지 모른다. 왜 엄마를 생각하는데 지오디의 모르죠라는 노래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참 내 마음을 모른다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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