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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Sep 23. 2024

쓸쓸한 가을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 아니어도 힘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젖 먹던 힘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골고루 낼 수 있어야 건강하다는 생각.

가을바람이 불면 어려서부터 무언가 무서운 마음이 들곤 했다. 

어리디 어린 그 시절에도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이 왜인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고학년 TESOL이라는 토익도 토플도 아닌 새로운 시험이 생겨났다며 나는 새로운 학원에 보내졌다.


원치도 않던 어학원에 보내져서 늘지도 않는 실력으로 꼴찌반만 주구장창 다녔던 나는 영어에 빈정이 꽤나 상해있었다. 그런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엄마의 등살에 또 새로운 영어학원에 새로운 영어시험을 위한 질주를 시작해야 했다. 꼬부랑 언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날 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낯선 동네에 떨어져서 지금껏 배웠던 영어와는 또 다르게 낯선 형태의 시험을 접하고는 꽤나 좌절했다.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만 쉬이 안 채로.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엄마 차를 기다렸던가 학원 차를 기다렸던가 쓸쓸히 서 있는데 얼마나 추웠는지 가을이란 이렇게 겨울보다도 춥게 느껴지는 쓸쓸한 계절이구나 했다. 그 길가에 서서 집에 가는 차를 기다리는 내 안에는 가을바람만 느껴지면 쓸쓸해지는 정서가 깊숙이 배어버렸다. 나의 마음을 이해받지 못한 상처, 원하지 않아도 보내지면 해야만 하는 힘없는 어린이의 입지. 쓸쓸했던 건 가을바람 때문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마음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소통이란 더욱 어려운 것을 느낀다.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난다 해서 소통이 되지도 않는다. 우연히 같은 정서와 사고를 가진 그 누군가를 만나서야 기대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 내가 가을을 쓸쓸히 느낀 것은 이런 학원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게 넣어주면 나에게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소통과 엄마가 원하는 좋은 엄마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그리도 쓸쓸한 가을의 정서를 맞이하게 된 것 같다.


그런 엄마를 아주 오래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엄마도 소통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내게 맞지 않는 선물을 건넸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엄마를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도 참 외로웠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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