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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heleth Jun 20. 2022

여는 글: 들러리들을 향한 노래

선홍빛 잉크로 눌러쓴 이 글을 그대들에게

주인공으로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다만 적어도 인생의 들러리로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해왔다.


사실 들러리가 주인공에 비해 어디 빠지거나 모자란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하객들이 보기에 용모나 품행에 큰 흠이 있다면, 신랑과 신부는 그를 들러리로 세우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태생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신세와 처우는 전적으로 주인공에게 달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함께 식사하며 선물을 건네받을지, 결혼식 당일에 식권 한 장 못챙겨받아 피로연장 입구에서 멍때리고 있는 신세가 될지는 신랑과 신부에게 달린 것이다.


하나 그것이 정말로 결혼식의 들러리라면, 힘들게 시간내어 구두신고 차려입고 나와서 그런 홀대를 받았다면,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하객으로 온 친구들과 험담 한 번 거하게 하고 연을 끊는 것으로 족할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가정이라면, 나의 생계가 걸린 일터라면, 인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한 부분이라면, 남 좋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식권 한 장에 목매다는 들러리 신세를 순순히 납득하기란 녹록찮은 일이다.




한 때는 들러리 또한 주인공의 아름다운 날을 옆에서 빛내주는 귀중한 역할이라며 자신을 긍정하며 걸어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취제의 내성이 다하는 날, 끝내 남는 것은 주사바늘로 살점을 뚫는 고통 뿐이다. "따끔해요. 금방 괜찮아질거에요!"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직접 겪고 몸부림쳐본 사람은 안다.


결국 남은 것은 산산히 조각난 자존심의 파편들이었고, 그것을 일일이 주워 순간접착제를 발라 수습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가끔 실수로 파편과 파편 사이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그대로 접착제가 굳어 돌이키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긋난 파편은 날카로운 면을 드러내어 수시로 마음을 베어내기를 어려 번. 점점 베어낸 곳에서 흘러나온 선홍빛 방울들이 처음에는 발 아래를 적시더니, 어느 새 무릎과 가슴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끝내 그것이 목에 이르자, 나는 이것들을 어딘가에 사용하여 빼어내지 않고는 숨쉴 수 없는 상황에 처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선홍빛 방울들을 잉크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들러리들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이곳에 나의 또는 내가 만났던 들러리들의 이야기들을 소개하려 한다. 다만 모티브만 실제일 뿐, 그것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은 가공의 것으로 바꾸었다. 혹여나 글에 등장하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되면 그들에게 또다른 베어진 상처가 될까봐, 이름과 성별, 인칭, 때로는 나이와 사는 곳조차도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는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을 써놓았다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중요하겠는가, 우리는 어차피 그 진실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들러리에 불과한 것을.



(표지사진) Katelyn MacMillan, <Group of person standing outdoors>, https://unsplash.com/photos/5VhSc5jCA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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