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딸 혹은 엄친아.
성격, 외모, 학업, 머리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한 이를 부를 때 흔히 쓴다.
주로 부모들이 누구 아들은 의대를 갔다더라, 누구 딸은 부모한테 차를 사줬다더라 등 자식을 다른 친구와 비교하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이는 왜 나의 딸, 아들이 아니라 친구의 딸, 아들일까.
많은 자식들은 엄마에게 귀가 따갑도록 엄친딸, 엄친아의 소식들을 접했음에도 아마 직접 눈으로 확인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유니콘처럼, 신기루처럼.
나의 엄마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엄친딸의 존재를 넌지시 언급하신다. 작은 고모네는 딸만 셋인데 어쩜 그 딸들은 하나같이 효녀인지..
- 걔네들은 고모 운동하라고 수영장도 등록해주고, 통신비며 보험비도 다 내준다고 하더라? 핸드폰도 사주고. 매달 용돈도 그렇게 많이 준단다. 필요 없다고 해도 그렇게 준대. 사위들도 얼마나 다들 잘하는지. 고모는 복이 그렇게 많다.
살짝의 부러움을 한 스푼 담아 무심한 듯 툭.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을 뻔히 알면서 냉큼 그럼 나도 해주겠다고 공수표를 날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나는 그냥 묵묵히 듣고 있는 것을 택한다.
왜 하필 우리 엄마 주변에는 결혼하기 전까지 모은 돈을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며 친정에 전부 주고 가는 딸들에, 장모님에게 차 한 대 멋지게 뽑아주는 잘 나가는 사업가 사위들이 모여있는 걸까.
친정에만 왔다 하면 냉장고를 털어가는 딸이나, 뉴스에서 그렇게나 많이 등장하는 캥거루족 자식들이 엄마 주변에는 왜 없을까.
한 번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에게 들은 고모 얘기를 했더니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다.
- 아이고 마... 고모가 손주들 다 봐주고, 반찬이며 김치며 다 해다 주고 살림 봐주면서 산다.
엄마는 나에게 그 얘기는 왜 안 하셨을까.
모임에서 자식 자랑하는 사람들은 벌금을 내는 법이라도 제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너희 부부는 내가 생각하는 워너비 부부인 거 알아? 멋지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너 볼 때 그 얘기 많이 하시더라. 참 예쁘고 똑 부러지게 산다고, 좋아 보인다고.
아, 내가 누군가의 엄친딸이기도 하구나.
그런데 그 말을 한 친구 역시 아주 성품이 곧고 야무진 친구라, 나의 남편도 내 주변 지인들 중 정말 좋은 사람으로 손에 꼽는 친구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엄친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엄친딸을 좇는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여, 엄친딸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궁금한가?
거울을 보아라. 그 속에 있으니.
나 또한 다짐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