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지키고 싶단다
얼마 전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며칠이나 지나고 보니 이제는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는 호통 치는 나를 바라보며 네, 네, 하며 주눅 든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주방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며 다 못한 잔소리와 함께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었고, 아이는 냉장고 앞에 서서 대답했다.
냉장고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아이의 행동이 수상해서 앞으로 가보니 아이가 빨간 색연필을 들고 냉장고에 부착된 '우리의 새해다짐' 앞에 서있었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되며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 다짐을 적어보자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우리는 각자 새해를 맞이하여 스스로 지키고 싶은 다짐 한 가지와 다른 가족들에게 바라는 점을 한 가지씩 적었다.
아들은 그 종이에 빨간 색연필로 줄을 긋고 뭔가를 쓰고 있었다.
- 뭐 하니?
가까이 보니 아들이 밑줄을 쳐둔 곳은 내가 쓴 다짐내용.
친절하게도 한번 더 문장을 따라쓰기까지 해놓고서, 별표 두세 개와 '꼭꼭꼭 지켜요'를 써두었다.
절실해 보이는 꼭 꼭 꼭. 세 번.
- 아...하..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너는 엄마가 지켜야 될 것만 체크하고, 네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건 체크 안하냐?' 하고 반문하니, 그제야 자신의 다짐에도 영혼 없이 밑줄을 슥슥 치는 아들 녀석.
그래. 나의 새해 다짐은 이랬지. 해야 할 일, 나의 다짐을 지키는 건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너도 그랬을 텐데 또 이러냐고, 몇 번을 말해야 듣냐고 잔소리 폭격을 퍼부은 나 자신이 머쓱해졌다.
아들은 이번에도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