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독립했을 텐데.
아빠랑 살기 너무 힘들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엄마.
나는 그냥, 아이가 감기가 심해 방학 때 친정에 놀러 가려던 계획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한 것뿐인데.
통화한 김에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면 결국 엄마의 하소연으로 끝나게 되는 모녀의 대화.
- 엄마, 내 생각한다고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된다.
- ...
- 엄마, 아빠가 행복하면 나도 좋은 거지.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살아야 하고 생각하는 건 없는데 뭘.
- 아니, 그래도 가족끼리 둥글둥글 살아야 행복한 거지.
- 그래. 그렇게 살면 물론 좋겠지만, 같이 살면서 안 행복하면 의미가 없잖아. 엄마가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면 난 그걸로 된다. 자식 생각해서 억지로 그렇게 살 필요 없다는 말이지.
- ... 그래, 애 잘 챙기고 쉬어.
진심으로 내 생각을 전하는 말에, 듣기 싫은 듯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하는 엄마.
나만 아니었어도 혼자 살고 싶다는 말에,
나를 위해 희생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했을까.
힘든 거 알지만 엄마가 참아야지, 하고 토닥거렸어야 했을까.
같이 아빠 욕을 왕창 해줬어야 했을까.
엄마에게 나라는 딸은 어떤 존재일까.
딸 같은 며느리가 허상인 것처럼,
친구 같은 딸도 나에겐 허상이다.
나는, 엄마에게 그냥 딸이고만 싶다.
다음 통화는,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대화가 되기를 바라며 전화를 걸어야겠다.